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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 54] 라싸 포탈라 궁과 조캉사원

청두(成都) 공항으로 데려다 줄 봉고차에는 이미 외국인 대학생 2명이 타고 있다. 그런데, 서로 여행의 즐거움을 공유할 정도로 마음이 편하지 않은가 보다. 아침 6시부터 서로 귀찮게 할 일도 없지 않은가. 나중에 함께 라싸 도착하면 인사나 하지 그랬는데, 막상 공항에 도착해 만날 수가 없었다.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는 서둘렀다.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이다. 이미 다른 여행객들은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봉고차가 좀 늦었나 보다. 이탈리아에서 온 중년 부부와 셋이서 나란히 티켓을 받아 들었다. 정신 없이 서두르다 보니 입경허가서 즉 퍼밋(permit)도 확인하지 못했다.

  
라싸행 비행기 티켓
ⓒ 최종명
라싸

동북공정이 있듯이 서남공정도 있다

사정은 이렇다. 물론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에는 외국인이 라싸로 들어가려면 허가서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반드시 여행사를 통해서만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전 준비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까탈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몇 달 전 외국인들의 티베트 독립 시위 때문이다.

중국의 변강(边疆) 정책 중 하나인 서남공정(西南工程)은 씨장(西藏) 장족(藏族) 자치구, 윈난(云南) 성, 꽝씨(广西) 장족(壮族) 자치구에 있는 소수민족의 이탈을 방지하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역사와 문화를 한족 중심으로 평가하고 왜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동북공정이 헤이롱쟝(黑龙江), 지린(吉林), 랴오닝(辽宁) 3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며 중국의 서남공정을 비판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연계한 시위를 했으니 당연히 라싸로 들어가기 까다롭다. 여행 목적 이외에는 허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결국 여행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행기 값도 할인이 되지 않고 여행사만 웃는 일이 벌어졌는데, 결국 공항에 집결했다가 티켓팅 후 다시 해산하는 웃기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만났던 많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된 시스템이긴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티베트의 산천은 아름답다. 양쪽 산맥을 끼고 가운데 흐르는 강을 따라 비행기는 점점 라싸로 향했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니 바로 밖이다. 공항 활주로에 내려서 본 산과 하늘은 감동 그 자체였다. 파란 하늘의 느낌이 그 어느 곳보다 달랐고 신선했다.

공항에 있는 버스를 타고 1시간 20여 분 달려 라싸 시내 포탈라궁(布达拉宫) 동쪽 바로 옆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내 거리를 걸었다. 배낭을 메고 숙소를 찾는 것인지 거리를 활보하는 것인지 그저 걸었다. 날씨는 무척 더워 섭씨 30도는 넘는 듯하다.

  
라싸 시내 베이징둥루 거리의 건물과 하늘
ⓒ 최종명
라싸

왜 거리 이름이 베이징루(北京路)일까. 베이징동루를 걷다가 자전거 차를 세웠다. 숙소를 찾는다 하니 100여 미터를 더 가더니 동춰(东错) 유스호스텔(青年旅舍)에 내려준다. 하나에 100위안짜리 독방을 잡았다. 일단 푹 쉬려면 도미토리보다는 낫겠다 싶다. 짐을 풀고 빨래도 하고 텔레비전도 봤다.

점심을 먹으러 나오니 바로 옆에 조선족 동포가 하는 식당이 있다. 거기서 비빔밥을 먹고 나와 포탈라 궁으로 갔다. 정말 파란 하늘에 웅장한 자태로 산 높이 서 있는 것이 위압적이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라싸의 숙소이던 동춰 유스호스텔
ⓒ 최종명
라싸

세계문화유산인 포탈라 궁은 라싸 시내 어느 곳에서도 잘 보인다. 아예 산을 통채로 밀어 그 위에 지은 궁전이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100위안이고 입장허가를 받으면 그 다음날 궁에 들어가서 관람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하루에 입장객을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진과 영상을 찍는데 돈을 받는다고도 한다.

포탈라 궁 주변에서 순례하는 사람들, 오체투지로 기원하거나 또는 구걸하는 사람들, 포탈라 궁 앞 대로를 마구 달리는 차량들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는 포탈라 궁의 웅장한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포탈라 궁은 해발 3700미터에 위치한다. 포탈라 궁은 서기 641년 장족인 투판왕(吐蕃王) 쏭첸감포(松赞干布)가 라싸로 천도한 후 당나라 문성공주와 결혼 후 공주를 위해 처음 세웠다고 한다. 중국정부가 집착하는 서남공정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는 포탈라 궁.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장족의 전통문화와 종교문화를 대표한다는 포탈라 궁을 바라보며 나라를 잃고 힘들게 살아왔던 일제 식민지 시대가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라싸 포탈라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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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고산병, 이렇게 고통이 뒤따를 줄이야

  
라싸 조캉사원 앞 빠코르 광장을 거니는 장족 사람들
ⓒ 최종명
라싸

포탈라 궁을 보느라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더위를 먹었나 보다. 아니면 고산병인가. 머리가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한 두통이 거의 24시간 동안 지속됐다. 저녁도 못 먹고 침대에 누웠다. 아까 점심 먹을 때 옆자리의 한국 친구들이 고산병 때문에 3일 동안 꼼작 못하다가 지금 겨우 밥 먹으러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고통이 뒤따를 줄 몰랐다.

시내를 돌아다닐 때 약간 호흡이 곤란하긴 해도 이 정도면 괜한 걱정을 했구나 안심했는데 의외로 두통이 생긴 것이다. 두통 역시 고산병의 일종이라 하는데, 심한 경우 비행기로 후송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한국 학생들 몇 명이 나무춰(納木措) 호수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고 하다가 응급실로 후송돼 고생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밤새 앓았다. 밤 12시가 되자 잠도 오지 않아 노트북을 켜고 침대에 엎드려 취재기를 썼다. 그런데 5분도 안돼 노트북이 팍 꺼지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뭔 일일까. 다시 부팅을 했다. 또 몇 분 지나지 않아 돌연 꺼졌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취재기를 써서 보내야 하는 놈까지 고장이라니. 캠코더 고장으로 한동안 스트레스 받았는데 이제 노트북까지. 두 개 다 같은 브랜드네.

중국에 워낙 먼지가 많아 가끔 노트북의 냉각 팬 기능이 마비되기도 하는데 하필 라싸에서 고장이 난다 말인가. ‘노트북도 고산병이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나중에 평지에 내려가니 노트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말 해발이 높으니 사람도 컴퓨터도 다 제 정신이 아니다.

다음날 7월18일, 오전까지 계속 머리가 쑤시는 듯 아팠다. 게다가 호흡도 정상이 아닌 듯하다. 겨우 씻고 나와서 바람을 약간 쐬니 다소 안정이 된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니 조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겨우 1주일 일정으로 어렵사리 온 라싸에서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

겨우 힘을 내 포탈라 궁으로 다시 갔다. 정문으로 가서 내일 입장권을 사러 왔다고 하니 서쪽으로 가면 후문이 있는데 거기서 예매한다고 한다. 다시 포탈라 궁 앞 넓은 광장을 따라 걸어가니 오늘 발매할 입장권은 다 끝났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한다. 정말 복잡하다.

장족들이 불교 성지라 일컫는 곳 '라싸'

조캉사원이나 가자. 약간 두통이 남아 있긴 했지만 느릿느릿 이곳 장족들처럼 걸으면 되겠지. 라싸 시내에는 또 하나의 유명관광지인 조캉사원이 있다. 따자오쓰(大昭寺)라 하는 조캉사원 앞은 빠코르(八角) 광장이다. 사원을 중심에 놓고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순례자의 길이 있다.

  
라싸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 하는 장족. 그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표정이 재미있다.
ⓒ 최종명
라싸

순례자의 길을 따라 걸었다. 티베트 불교를 숭상하는 장족들은 늘 이곳에 나와 종교의식을 치르고, 오체투지를 하며, 순례자의 길을 돈다. 순례자의 길 옆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수많은 가게들이 있다. 대체로 골동품, 민속공예품, 미술품, 책자 등 각양각색이긴 하지만 각 가게마다 물건이 대동소이하니 특이한 점이 별로 없다.

정말 이상한 것은 물을 파는 가게를 거의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목이 말라 물 한 병 사느라 꽤 헤맸다. 멀리 포탈라 궁 모습이 보이는 조캉사원 빠코르 광장과 순례자의 길에는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이 같이 따라돈다.

  
조캉사원 안에 있는 달라이 라마 초상화
ⓒ 최종명
조캉사원

장족들이 불교의 성지라 일컫는 말이 곧 라싸(拉萨). 바로 조캉사원과 빠코르 광장 일대가 바로 '라싸'이기도 하다. 역시 시기적으로 당나라 때 만들어진 조캉사원 내에 있는 석가모니 불상은 문성공주가 티베트에 올 때 가져온 것이라 하는데 엄격하게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아쉬웠다. 달라이 라마(达赖喇嘛) 초상화가 놓여 있어 살짝 사진을 찍었다.

달라이 라마는1959년 라싸를 떠나 인도 북부의 다란싸라(达兰萨拉)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다란싸라를 샤오라싸(小拉萨)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14세(世)이다.

칭장고원 일대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투판(吐蕃)은 주변국들과 영토 전쟁을 벌였는데, 청나라 시대 중앙집권적 만주족 정권에 복속된 이후 청나라 말기 13세(世) 달라이 라마는 청나라와 영국의 틈새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해 1894년 드디어 친정(亲政)을 이룩했다.

하지만, 신중국이 성립된 후 마오쩌둥 정부의 비호와 견제를 견디지 못해 라싸를 탈출하게 된다.

라싸로 들어가는 것도 그렇지만 라싸 시내에서 다른 지방 도시로 가려면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적어도 거주와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측면에서 지금 라싸는 식민지이다.

조캉사원 내부는 좁은 틈마다 불교의 향연이 가득하다. 여행객들로 발 딛을 틈도 없는데다 감시하는 보안들과 관리인들까지 합세해 복잡하기 그지 없다. 2층과 옥상으로 올라가면 넓은 전망과 함께 사원 주변과 부속 건물들의 이모저모를 잘 훑어볼 수 있다. 그 색채와 구조가 아름답기에 조캉사원에서 티베트의 향수 또는 색감을 느끼기에 만족할 만하다.

게다가 씨장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라 그런지 포근하다. 옥상에서 보면 멀리 포탈라 궁의 모습도 보이고 빠코르 광장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2층에서 본 조캉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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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캉사원

그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여전히 두통이 있긴 하지만 조캉사원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서부터 서서히 컨디션이 회복되는 듯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더위를 식혔다. 잠시 침대에도 누웠다. 호흡곤란과 두통. 사람마다 고산병 증세가 다양하지만 나에게는 이 두 가지가 문제였는데, 금방 괜찮아질 듯한 느낌이 든다. 그나마 하루만에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굉장히 운이 좋은 것이다.

저녁 늦게 밥이라도 좀 먹을 생각으로 나왔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날씨는 여전히 덥다. 식당을 찾느라 왔다 갔다 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친구가 서 있다. 씨안에서 만났던 현수다. 몇몇 다른 일행과 거리에서 양고기 꼬치를 사서 먹는 중에 만난 것이다. 아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라싸 시내 곳곳에는 동냥하는 라마승들이 많다.
ⓒ 최종명
라싸

현수는 라싸에 온 지 꽤 되고 내가 17일경에 온다고 했으니 연락이 되지 싶어 방금 전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핸드폰을 숙소에 두고 나왔네. 현수와 이미 일행이 된 리아씨와 함께 맥주를 한잔 했다. 그렇게 친해져서 우리는 싸미에의 7인을 결성하게 됐다.

리아씨는 아리랑로드라는 회사를 차려 실크로드처럼 중국과 서역, 인도와 유럽까지 잇는 무역을 하는 아가씨로 이번에 라싸에 온 것은 티베트 석청 사업을 하기 위해 여행 겸해서 온 것이다. 예전에도 라싸에 온 적이 있기도 했지만 도무지 두려움이라고는 모르는 과격한 행동주의자, 용맹불패의 맹렬여성이었다.

우리는 7월 19일 아침을 먹기 위해 다시 식당에 모였다. 현수와 리아씨 그리고 혼자 라싸로 여행을 온 4명의 학생들. 한 친구가 뒷문으로 들어가면 포탈라 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두 여학생과 함께 포탈라 궁을 본 후 다시 만나 오후 늦게 리아씨가 만나보자고 제안한 장족 아이를 조캉사원에서 찾기로 했다.

포탈라 궁 후문을 통해 올라가는 것을 막고 있었지만, 내려오는 사람들 틈에 끼어 살짝 올라갔다. 불교를 숭상한 쏭첸감포의 '정교합일' 정권의 중심이던 포탈라 궁은 청나라 시대를 거치며 그 원형이 변했으며 신중국이 성립된 후 1985년에 고대문물 보호를 위해 사상 최대규모의 투자라 일컫는 대규모 공사를 거쳤고 1989년에도 다시 한번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후문쪽에서 올라가서 본 포탈라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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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백궁과 홍궁, 모두 다 보지는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살짝 뒷문으로 올라가서 본 포탈라 궁이었다.

저녁 무렵. 한 장족 아이를 찾기 위해 빠코르 광장을 다시 찾았다. 아침에는 오체투지를 하고 저녁에는 장족 민속 춤을 춘다는 6~7세 정도의 여자아이.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루 종일 비가 조금씩 내려서인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를 찾으며 기다리다가 저녁 무렵 순례자들의 행진을 좀더 가까이에서 바라봤다. 묵묵하게 걷는 사람, 여럿이 어울려 대화도 나누며 걷는 사람, 오체투지 하는 사람, 남녀노소, 티베트 승려들, 외국 여행객들, 어른 아이, 장애우 등. 티베트 빠코르에서 그들을 보노라면 뭐라 말하기 힘든 복잡한 '머리'와 형언하기 힘든 심장 뛰는 '가슴'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