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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 51]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창장 케이블카와 멋진 야경

7월13일 베이징에서 다시 중국발품취재의 길을 떠나 충칭에 도착했다. 캠코더 고장으로 베이징에서 며칠 묵으면서 겨우 마음의 여유를 회복하고 다시 장비를 완비했다. 덕분에 몇군데를 포기한 것이 영 안타깝다.

역시 더위가 예사롭지 않다. 숙소를 정하고 근처 식당에서 돼지고기 튀김 백반과 닝멍 쥬스를 곁들여 먹고 망고와 포도를 사서 돌아왔다. 메신저로 손이사와 대화했다. 오늘 밤 충칭을 거쳐 주자이거우(九寨沟)로 가는 여행을 온다. 그의 숙소에서 서로 만나기로 약속했다.

중국비즈니스포럼 회원으로 지난 창춘(长春)과 옌지(延吉)에서 한방을 쓰면서 친해졌다. 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 처음 만나서 금세 친해지기 어려운데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다정해졌던 사이다.

  
▲ 충칭 공항 캠코더 고장으로 일정을 약간 수정하고 베이징에서 충칭으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
ⓒ 최종명
충칭

11시30분, 손이사 일행이 묵는 호텔에 도착했다. 1달 겨우 지났는데도 반가워 서로 포옹하고 일행들과도 인사했다. 준비해간 망고와 포도, 복숭아를 꺼냈다. 호텔 방에서 진한 술잔을 기울이고 새벽에서야 헤어졌다.

한국소주와 인스턴트커피 한 박스. 고맙습니다. 손이사님! 벗이라 하기엔 연배가 위지만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시니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듯하다. 벗이란 게 반드시 시간이 '오래된’ 관계는 아니다. 손이사를 만나면서 '벗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란 생각을 새롭게 가지게 된 것이 너무 기쁘다.

벗이란 인간과 인간의 만남

새벽에 돌아와 한숨 자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서둘러야 한다. 중경임시정부를 찾아갈 예정. 인터넷을 뒤져 알아둔 지명을 적어서 나왔다. 문제는 서두른 탓에 ‘롄화츠’ 라고 한글로 적은 것이 탈이었다. 깜박 잊은 것이다. 간자체를 생각지 못했던 것은 역시 간밤에 마신 술 때문이었을까.

우선 내일 청두(成都)행 버스를 알아보려고 터미널로 갔다. 30위엔을 부르는 호텔 앞 헤이처(黑车)를 뿌리쳤다. 택시는 13위엔에 도착이다. 사람들을 헤집고 매표소에 가니 '내일 가면 내일 사'라고 한다. 그만큼 버스가 많다는 이야기이니 안심이다.

택시운전사에게 ‘롄화츠 가자’고 했다. 정확한 성조도 없이 대충 말했더니 역시 모르겠다고 한다. ‘한국임시정부 가자’, ‘193-40년대 항일운동 하던 한국정부’. 다 소용 없다. 다 모른다. 지도를 샀다. 도대체 어디 붙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일단 뉴러우몐(4위엔) 하나를 먹고 다시 지도를 꼼꼼하게 살폈다. 역시 배가 좀 부르니 제 정신인가 보다. 깨알 같은 글씨로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표시를 찾았다. 그리고 롄화츠(莲花池)도 건졌다.

택시 운전사에게 물으니 또 모른다. ‘여기 지도에 있어’ 한참을 들여다보더니만 잘 모르지만 가보자고 한다. 그래 찾아보자. 지도에는 씬민지에(新民街)가 가장 가깝다. 허핑루(和平路)에 내려주더니 알아서 찾아가라고 한다.

  
한글과 한자, 영어로 써 있는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건물 입구
ⓒ 최종명
충칭

씬민지에는 언덕길이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찾기 힘들어 보인다. 길거리에서 과일 파는 청년에게 물었더니 안다며 길을 알려 준다.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서 허핑루 부근에서 골목길로 가라는 것 같다. 지방사투리와 보통화를 섞어 말하니 헷갈린다.

다시 내려가서 마작을 하는 젊은 아주머니들에게 물었더니 다 모른다고 한다. '행궈?' 하면서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한국을 행궈 또는 옛날 개그맨 이름처럼 '행국' 뭐 그렇게 들린다.

다시 택시에서 내린 곳까지 갔다가 다시 또 올라왔다. 가만 생각하니 조그만 골목이 하나 있다.

워낙 좁고 지저분한 곳이라 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 이르러 다시 한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웃으면서 어제도 너 같은 한국사람 혼자서 와서는 똑같이 길을 물었다고 한다. 그 한국사람도 몇 번 왔다 갔다 헤맸을 듯 하니 웃음이 나왔다.

골목길을 다 지나니 큰 도로가 나온다. 다시 아래 동쪽 방향으로 한 50미터 정도 내려가니 길 옆에 드디어 간판 하나가 보인다. 정말 힘들게 찾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전시관이다.

정말 힘들게 찾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전시관

민셩루(民生路) 큰길에 있는 표지판을 보고 골목으로 약간 들어가면 있다. 아담한 옛집 분위기이다. 중국에서 AA급 관광지이다. 시급 문물보호 유적지인 것이다. 뭐 복원이라도 된 것이 다행이겠지만 좀 서운했다. 중국 곳곳에 있는 항일 역사 관련 유적지들이 꽤 잘 복원되어 있고 잘 관리되는데 비해 말이다.

지킴이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으며 두루 둘러봤다. 백범 김구의 동상과 태극기, 임시정부 인사들 기념사진이 반겨준다. 태극기를 비롯해 우리 역사를 만나는 일은 대체로 항일운동과 관련되거나, 장보고와 같이 중국에서 활약한 인물 전시관이거나 아니면, 당나라 이후 사신으로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 정도일 것이다.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전시관에 있는 태극기
ⓒ 최종명
충칭

산둥(山东)에 있는 장보고기념관이 관광상품으로 활성화된 반면, 이곳 충칭의 임시정부 건물과 전시관은 너무도 초라하다. 다녀가는 사람도 대부분 한국사람이며 게다가 젊은 청년학생들은 잘 찾지도 않는다고 한다.

혼자 배낭 메고 조용히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하는 것이 약간 특이해 보였는지 할아버지는 계속 따라 다니며 눈인사를 한다. 한 곳에 이르러 텔레비전을 틀더니 10분 정도니 비디오를 보라고 한다.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에이콘 앞에서 한번쯤 앉아서 볼 만하다.

당시 임시정부의 모습을 재현했다니 차곡차곡 당시 흔적과 역사의 상상력으로 돌아봤다. '니먼더주씨'(你们的主席)라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는 곳은 주석 집무실이다.

인사를 하고 나와 문 밖에서 다시 되돌아섰다. 왠지 그냥 갈 발걸음이 아니었다. 좁으나 깊은 문 안에는 가파른 계단을 따라 바삐 움직이며 오르고 내리고 하는 임시정부 주석과 각 요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걸려 있는 정부요인들 사진
ⓒ 최종명
충칭

중국에서는 캉짠셩리(抗战胜利)라 하고 우리는 광복인 50주년이 되는 해인 1995년에 복원됐다. 한중수교(1992년 8월)가 되고 나서야 복원된 셈이니 참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리라. 2000년 9월에 시 문물보호 유적지로 공포되었고 1,700평방미터의 너비에 진열된 전시품이 468건이고 문물자료가 150건이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1층에서부터 2층까지 조용히.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와 정돈이 잘 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함도 풍긴다. 다른 중국 유적지들이 조금 산만한 것에 비하면 아주 관리가 잘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우선 조용하다. 주변 아파트 숲에 푹 파묻혀 조금 답답한 것만 빼면 아담한 옛집에 방문한 기분이 든다. 지킴이 할아버지. 카메라 앞에서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듯, 그래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옛날 모습 그대로 재현한 회의실
ⓒ 최종명
충칭

착찹한 심정과 억울한 느낌이 한데 섞인 슬픈 참관이었다. 게다가 2층 유리창 하나가 깨져 있다. 이것도 복원된 것은 아니겠지. 어디서 돌이라도 날라온 것일까. 굴러온 돌, 미국의 앞잡이 이승만에게 나라의 앞날을 뺏기고 항일투쟁과 망명 독립정부의 정통성을 이어가지 못한 서러운 민족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금이 간 유리처럼 말이다. 어서 나라의 통일이 되어야만 저 깨진 유리창을 보는 마음도 편할 듯했다.

거리를 나와 시내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이 제팡베이(解放碑)이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흥청거린다. 이제 창쟝(长江)을 건넜다 되돌아 올 계획이다. 제팡베이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쒀다오(索道) 타는 곳이 나온다. 왕복4위엔. 황토색 물줄기를 이어 가는 창장 위를 날아가는 기분이 꽤 좋다. 전망도 넓고 강 양쪽 편을 두루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강 상류와 하류도 모두 볼 수 있다.

  
충칭 창장 케이블카
ⓒ 최종명
충칭

창장의 노을을 안주 삼아 술 한잔!

쒀다오에서 내려 창장 가까이에 내려가 봤다. 창장은 티벳 고원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상하이(上海) 앞 바다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3번째로 긴 강이다. 충칭 역시 창장을 물류수단으로 잘 이용하고 있다. 선박들이 강 곳곳에 정박해 있고 이동하기도 한다.

  
고층 아파트 옆을 지나는 창장 케이블카
ⓒ 최종명
충칭

창장을 바라보고 전망이 좋은 곳은 여지 없이 훌륭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창장의 노을을 안주 삼아 술 한잔을 해도 좋겠다 싶다. 다시 쒀다오를 타고 거꾸로 되돌아왔다. 태양이 여전히 드높고 햇살도 따가운데 저녁 무렵이 가까워지는가 창장에 약간 붉은 빛이 감돈다.

충칭 시내 제팡베이 거리는 아주 번화하다. 그래도 티엔진(天津), 상하이(上海)와 함께 중국의 3대 직할도시가 아닌가. 쇼핑을 했다. 반팔 티셔츠를 50위엔에 2개 샀다.

발품취재를 다니면서 옷을 빨고 또 빨고 하다 보니 티셔츠는 금방 낡아 보인다. 좀 산뜻하게 다니고 싶은 마음. 싸긴 해도 새 옷이라 느낌이 좋다. 예전에 카이펑에서 산 옷은 이제 안녕해야지.

중국의 대부분 도시 중심에는 씬화슈디엔(新华书店)이 있다. 참 이상하게도 이름이 다 같다. 그래서 지도에서 이 책방을 찾으면 대체로 시 중심이다.

씬화슈디엔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서 있다. 가만히 보니 재미있는 장면이 보인다. 쟈쟈오(家教)라고 팻말을 들고 있는 학생들은 가정교사를 하고자 한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시내에 왔다가 가정교사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과 같다. 이런 장면을 처음 보는 것이라 흥미롭게 지켜봤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낯선 모습일 것이다.

  
충칭 번화가인 제팡베이 광장
ⓒ 최종명
충칭

중국 여행을 다니다 보면 참 몸매가 예쁜 아가씨들을 가끔 본다. 물론 다른 나라 아가씨들에 비해 단순 비교하기가 좀 그렇지만, 중국 아가씨들은 늘씬한 다리 하나는 정말 타고난 듯하다.

중국 곳곳의 시내는 대체로 다 다녀봤는데, 아마도 충칭(重庆) 시내가 그런 늘씬한 아가씨들이 가장 많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여행 길에서 만난 한국 남학생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모두들 ‘충칭이 어디에요? 거기 갈래’ 하더라. 하여간, 7월 14일 위쭝취(渝中区) 번화가를 기분 좋게 걸었다

조금 더 걷다가 한 길거리 가게에서 고기볶음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허기를 채우니 다시 기운이 생겼다. 간밤에 마신 술이 영향을 미치는가 보다. 충칭의 유명한 야경을 보러 강변을 향해 갔다.

충칭에 밤이 오면 강변에는 조명이 하나 둘 켜진다. 충칭 시내 북쪽을 따라 흐르는 쟈링장(嘉陵江) 다리를 건너면서 본 건물 야경은 참으로 휘황찬란하다. 중국사람들이 도시 야경 중 하나로 손꼽는 충칭 야경이다.

배가 다니고 강변 도시철도도 지난다. 철교다리 위를 바쁘게 달리는 차량을 따라 강을 건너니 강물에 비친 야경이 더욱 빛난다. 도시 야경을 따라 유람선이 오가는 모습이 참 평화롭기조차 하다. 강변북로를 1시간 가량 걸으며, 다리는 무지 아팠지만 눈 부신 조명 하나는 실컷 본 셈이다.

  
▲ 야경 충칭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멋진 야경
ⓒ 최종명
충칭

이 멋진 야경에 취해 다리를 건너게 됐는데 이것이 고생의 시작이었다. 다리도 무려 30분이나 걸어야 건널 수 있는 긴 다리여서 발품 진하게 했는데, 다리를 내려서니 강변길이 또 유혹이었다.

사람들이 어두워지니 서늘한 강변에 나와 산보를 즐기는 것이다. 건너편 야경을 구경하러 나온 것이다. 오늘 종일 걸어 다리가 영 후들거리기 시작이다. 택시라도 잡으려 하는데 도통 없다. 빈 차가 없는 것이다. 그래 멀어야 얼마나 멀까 하면서 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걸었다. 유람선이 강을 따라 오르내린다. 강 한가운데를 휘젓는 유람선이 꽤 화려하다.

  
유람선이 있는 충칭 쟈링장 강변의 야경
ⓒ 최종명
충칭

1시간을 더 걸어가니 새로운 다리가 나온다. 더 이상은 걷기 힘들 정도다. 야경은 멋지건만 교통편이 영 불안하다. 겨우 남북을 가르는 도로로 나오니 차들이 좀 다닌다. 마침 택시 하나가 반갑게 다가온다. 딴 소리 할까 봐 무조건 탔다. 호텔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