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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 (05)

 

민란은 새로운 세상을 바꾸는 열쇠다. 독재와 가렴주구는 봉기의 깃발을 불러내고 민란과 토벌이 부수고 지키는 전투를 벌인다. 현실의 모순은 변화를 갈망하고 질적 전환을 이룬다. 2016 12 9, 역사적인 탄핵의 아침이 밝아온다. 이제 박근혜 정부의 침몰 이후 새롭게 여는 아침은 어떤 세상일까? 봉건의 시대, 민란의 역사는 간혹 뜻밖의 지도자가 등장하고 새로운 왕조를 열고 통치자로 군림한다. 진승(陈胜)과 오광(吴广)의 민란이 그랬다. 역사는 교훈이기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라는 명대사를 남긴 진승과 오광은 기원전 209 7, 홍수로 인한 범람으로 지정된 시일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불가능해지자 900여 명의 농민과 함께 안휘 성 북부 태택향(大泽乡)에서 봉기했다. 진시황의 객사 이후 비정상적인 후계구도를 설정하고 국정을 농단하던 환관 조고(赵高)와 승상 이사(李斯)전횡을 일삼고 있었다. 백성은 도탄에 빠져 살길이 막막했다.

 

머슴이자 소작농으로 겨우 풀칠이나 하며 연명해 왔지만, 현실을 보는 눈만큼은 냉정했다. 진승과 오광은 반란을 일으키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데 의기투합했다. 무릎 꿇고 죽느니 일어나 싸우다 보면 살아갈 길도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지혜도 빌리고 명분도 살려야 하며 희망도 엿보여야만 농민들이 모두 따르고 그것이 곧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직감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농민반란의 두 주역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2천 년 역사상 가장 분연히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진승과 오광은 명분을 얻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다. 오광은 몰래 생선 속에 진승왕글자가 새겨진 비단을 넣어두었고 배를 가른 취사병이 호들갑을 떨며 하늘의 뜻이라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파하도록 유도했다. 왕이라는 글자보다 진승이라는 인물에 더욱 낯설고 놀라지 않았을까? 고대에는 맹수나 뱀, 조류나 물고기까지 신통한 토템이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세상이었다. 은나라 시대에는 거북이 등껍질 귀갑()이나 신비스런 풀인 시초(蓍草) 점을 치기도 했다. 물고기 배에서 천자의 메아리가 들릴 줄 상상조차 못 했던 사람들에게는 기절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기()>고스란히 기록될 정도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희한한 이벤트였던 셈이다.

 

진승과 오광은 한발 더 나아가 사당 부근에 숨어서 대나무로 불을 피우고 여우 울음소리를 흉내 내 대초흥, 진승왕(大楚兴, 陈胜)이라고 교묘한 음운으로 소리를 질렀다. ‘위대한 초나라가 크게 부흥할 것이니, 진승이 출현해 왕이 되리라는 여섯 글자는 전략적 구호로 각인됐다. 사마천(马迁)도 신기했던지 귀신까지 동원한 계책을 대나무 불과 여우 소리라는 뜻의  구화호명(篝火狐鸣)'이라 언급했다. ‘거사를 도모하다라는 뜻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소작농이던 진승은 평소에 포부가 남다르고 의리도 많아 훗날 크게 부유해진다면 가난했던 시절의 형제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늘 호기를 부렸다. 봉건제 신분사회에서 허풍치고는 꽤 인간적인 면모였다. 주변 사람들이 당연히 비웃었을 것인데 그때마다 어찌 제비나 참새 따위가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까?”라고 했다. 기러기와 고니처럼 고귀하고 원대한 포부인 홍곡지지(鸿鹄之志)진승의 캐릭터였다. 당시 농민반란이 가져온 사회적 영향이 폭풍과도 같았기 때문에 흥미로운 고사성어가 수없이 등장했다. 대형사고를 친 인물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을 남기고 싶었던 까닭이 있다. 진승의 민란으로 인해 혜택을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의 어린 시절을 영웅스토리로 담았을 것이 분명하다.

 

진승과 오광이 봉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가담항설(街谈巷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거리나 마을마다 번져 말()은 말()보다 빨랐다. 진나라에 핍박을 받던 식민지 땅 중원에 회오리바람이 불었고 초나라 땅에 민족주의의 불길로 타올랐다. 전국시대 6국의 열혈 귀족은 농민군을 규합해 떨쳐 일어났으며 진승의 봉기군과 연합해 점점 세력이 늘어났다. 군중들은 진승이 초나라 사직을 복구한 공을 인정해 왕으로 옹립하겠다고 요청했다.

 

진승은 때맞춰 합류한 장이(张耳)진여(陈余)에게 의견을 물었다. 장이와 진여는 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며 서둘러 군대를 서쪽으로 진격해 진나라를 제압한 후 먼저 6국을 재건할 것을 제안했다. 수도 함양(咸阳)을 기반으로 제후를 파견하고 천하를 호령해도 늦지 않을 것이며 독자적으로 왕이 된다면 천하가 분열될지 모른다고 충언했다. 하지만 진승은 서둘러 왕을 자처했다. 전국시대의 후손을 복위해 연합하자는 장이의 전략과 상충했다.

 

 

진승은 민란을 일으키기 전 쌀 한 톨 없이 가난한 시절이 있었는데 아사지경에 이르렀을 때 한 농사꾼 집에 들렀다가 할머니와 딸이 봄나물을 넣고 끓여준 쌀죽을 대접받은 적이 있다. 너무도 맛있게 먹고 기운을 차린 진승은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았는데 왕을 자처한 이후 갑자기 모녀가 생각나서 찾았다. 궁으로 초청한 후 다시 그때의 죽을 먹고 싶었던 진승에게 모녀는 예전처럼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훤초(萱草)를 넣고 죽을 끓여 올렸다. 죽을 먹은 진승은 쓰기만 할 뿐 그다지 맛이 없다고 실망했다.

 

노파는 배가 고플 때는 향기로웠지만, 산해진미를 즐기게 되면 쓴 맛만 느끼게 된다고 해서 망우초(忘忧草)라 합니다.” 고 아뢰니 진승은 부끄러워했다. 창피를 당한 진승은 망우초 대신에 황화채(黄花菜)라 부르라고 했다. 이 풀은 민간에서는 우울한 기운을 싹 가시게 해 준다는 산나물이자 한약재로도 쓰이는 원추리를 말한다. 힘든 시절의 근심을 망각한다는 풀을 등장시켜 진승과 연관된 이야기를 지어냈던 것은 민란의 실패를 아쉬워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봉기가 성공해 가난한 사람들의 꿈을 지켜줄 것을 기대한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고사일 것이다.

 

진승이 왕이 된 후 전국은 다시 춘추전국시대처럼 혼란이 거듭된다. 옛 제후의 영토마다 서로 앞을 다투어 왕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왕이 되고자 했던 민란의 주역들은 모두 일찌감치 목숨을 잃었다. 토벌군과 싸우는 와중에 민란 주력은 각자 살길을 찾으려고 분열했으니 모두 힘을 잃고 동력을 상실했다.

 

진승은 민란을 일으킨 대택향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곳까지 후퇴한 후 후일을 도모하며 부대를 다시 모으던 중 자신의 수레를 몰던 부하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간질의 유혹에 빠져 주군을 사살하는 천추의 죄를 짓게 됐다. ‘배신은 민란의 역사에도 비일비재한데 도원결의처럼 의리와 충성을 계속 관리하는 지도자의 덕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진승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진승 사후 민란은 뜻하지 않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항우(项羽)와 유방(刘邦)의 초한 전쟁의 시작이었다. 진승의 인간해방선언은 전국을 혼란 속에 몰아넣었고 폭정에 숨죽이고 있던 위대한인물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2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비록 6개월 만에 진승과 오광은 세력을 잃었지만 작은 현의 정장에 불과하던 풍운아 유방이 한나라를 창업하는데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초한쟁패(汉争霸)>의 멋진 서사를 우리에게 남겨준 일등공신이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진승을 영웅으로 묘사한 사람은 바로 유방이었다. 유방 역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조그만 마을의 촌장이었는데 호송 중이던 포로를 석방한 대역죄를 짓고 산적이나 하면서 평생 살았을 운명이었다. 두주불사 술꾼이 산천초목이나 뜯으며 산적 노릇에 갑갑해 하던 유방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농민 출신의 진승이 민란을 일으키자 천하가 혼란에 빠진 것이다. 혼란을 등에 업고 천하를 움켜쥐었으니 유방에게는 하늘에 내린 선물이나 다름 없었다.

 

유방보다 지위가 높던 숙하(萧何)와 조참()이 유방을 혁명군수령으로 옹립했다. 진나라의 위세가 여전한 상태에서 민란 군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곤란한 처지에 처했던 그들은 유방을 끌어들여 일종의 보험을 드는 양다리 계책을 내놓았다. 유방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반란주모자는 100% 사형이므로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죽을 목숨인 유방을 찾아가 대장으로 호출한 것은 현실적인 정치적판단이었다.

 

 

산에서 내려온 유방은 왕을 자처하지도 그렇다고 왕을 옹립하지도 않고 항우에게 머리를 숙이며 소위 잘 나가는 집단에 의탁해 힘을 기르는 현명한 지략을 발휘했다. 반진 전투 3, 초한 전쟁 4년을 거쳐 불과 7년 만에 평민에서 황제가 됐으니 기적의 영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2 3, 232만 개의 촛불이 타올랐다. 항쟁의 횃불로 진화하고 있는 민중총궐기의 함성은 세상을 뒤바꾸고 있다.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정세를 오판해 분열의 나락으로 치닫는 정치인은 반드시 솎아내야 한다. 해체의 대상으로 지적된 새누리당은 면피와 탈출의 칼춤을 추고 있다. 칼날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 줄 모르고 뒷구멍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다. 일부 야권 정치세력도 기회를 틈타 정권을 잡아보려고 이합집산이다. 총궐기의 현장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선후보가 땅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구역질이 날 정도다.

 

민중총궐기는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21세기 민란이다. 민주주의를 피붙이처럼 이해하고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세력이 나서야 할 때다. 지속적으로, 전국적으로 더 큰 함성과 횃불로 민주주의의 진보를 노래할 것이다. 지도자는 그 노래 속에서 자연스레 분출되고 검증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직접 뽑은 지도자가 나서야 한다. 전 민중의 희망을 실천하는 머슴 같은 지도자는 반드시 나온다. 역사의 교훈이자 증명이다


  • 민란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은 졸고인 <,>(2015, 썰물과 밀물)에서 인용하고 일부 내용을 고쳐서 기재한 것임을 밝힌다. ‘중국민중의 항쟁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은 중국 방방곡곡을 취재하면서 느낀 소회와 얻은 자료를 기초로 집필된 이야기 책이다민란의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미래를 눈 여겨 볼 수 있는 잣대로서 읽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