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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천안문 광장 남쪽, '치엔먼'(前门) 부근에 고급스런 공연장소인 <라오쓰어>(老舍) 차관이 있는데, 필자의 오랜 단골이다. 경극, 잡기, 곡예, 상성, 변검 등 각종 공연이 어우러지는 곳이기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 공연을 본다는 즐거움에 2002년부터 줄곧 다녔으니 말이다.

차이나TV도 이 공연을 카메라에 담아 방영했기도 하지만 외국에 꽤 많이 알려진 곳이어서, 공연때면 발딛을 틈 없이 사람들이 꽉 차곤 한다.


외국 원수들에게 중국전통문화를 보여주기에 안성마춤인가. 부시(아버지)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지도자들이 많이 방문해 관람했다. 입구에 전 세계 지도자들이 방문한 사진들이 즐비한데 '한국인'는 아직 없다.



옛날 청조 말 시기에 이르러, 낮에는 차를 팔고 저녁이면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는데, 이런 유형의 차관이 북경에 많았다 한다.


<라오쓰어>차관도 그런 차관 중 하나일 것이다. 차와 문학이 연결되었으며, 사람들에게 역사의식과 함께 오락을 제공하던 차관이었다.


'라오쓰어'(老舍)는 중국 현대문학계에 유명한 소설가이면서 극작가로 알려져 있다. 본명은 서경춘(舒慶春)이며 만주족인데 북경 태생으로 1988년에 태어나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6년까지 살았다고 전한다.


지금의 차관은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1988년에 '윤성희'(尹盛喜)란 사람이 만들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개구장이 인상을 한 사회자가 나타나 분위기를 잡는다. 이 사회자는 구수한 진행과 미소로 관객을 잘 사로잡았는데, 최근에는 보이지 않고 여자 사회자가 진행하는데, 영 감칠 맛이 많이 떨어진다.


매일 7시 40분에 시작해 1시간 30분 가량 공연이 진행되는데, 미리 예매하는 것이 좋다. 비용은 80~250위엔 정도 하는데 앞자리로 갈수록 비싼데, 100위엔 정도면 무난하게 볼 수 있다.



5년 가까이 무려 열 번 이상 찾았으나 이 공연 장면은 한번도 바뀌지 않는 것같다. 중국민속악기들로 합주를 하는 '민락연주'(民乐演奏)이다.


이 공연으로 여전히 산만한 중국사람들을 제 자리에 앉도록 하니 나름대로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왼편에 있는 줄 두개로 연주하는 '얼후'(二胡)가 마음에 든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 싸구려 얼후를 사라고 떼 쓰는 사람들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입에 악기 두 개를 들고 불고 있는 이 사람, 정말 재미있다. 아주 고음의 악기소리는 당연하지만, 정작 흥미를 끄는 것은 맨목소리로 무지 고음을 낸다는 것이다.


악기소리와 사람소리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음을 내는 것은 고도의 훈련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목소리로 새소리 찍찍거리는 소리도 거뜬히 소화해내니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한다.


공연 시작과 함께 전체 분위기를 휘어잡는 힘이 있다.



이 공연은 '단씨엔'(單弦)이라 하는 것인데, 한손에 '빠지아오구'(八角鼓)를 들고 박자를 맞추면서 노래한다. 옆에 앉은 사람의 3현 악기가 반주를 맞추는데, '쓰어피씨엔'(蛇皮線)이라 하는 이 악기의 통은 뱀껍질로 만들었다고 한다.


뱀을 먹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악기로도 활용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단씨엔'은 이 차관의 단골메뉴이다. 몇년에 걸쳐서 찾아가니 노래하는 가수도 바뀐다.


현악기와 타악기의 앙상블도 멋드러지고 가락소리가 멈춘 사이 사이 노래같기도 하고 빠르게 말하는 화술같기도 한 '단씨엔'은 듣을수록 리드미컬하다.



'징윈따구'(京韵大鼓)라 부르는 이 공연은 '단씨엔'과는 조금 다르다. 옆에 보이는 북을 치는 것과 반주는 유사하지만, 노래라기 보다는 목소리로 읊조리는 듯 화술에 가까운 것 같다.


청나라 말, 북경에서 민간에서 유행하던 것이라 한다. 북경 지방의 옛 이야기 소재를 가지고 구성지게 지저귀는데, 북경어 특유의 '얼'화 현상이 두드러지니, 영 알아듣기 힘든 편이다. 오른편으로 자막이 있어 한자를 아는 사람들은 조금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라오쓰어> 차관에는 없어서는 안될 공연이 있는데 바로 경극(京劇)이다. 경극은 워낙 유명해 북경 극장이나 식당 등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경극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쓸 생각이다. 하여간, 경극의 시작은 북경이 아닌 안후이 성이다. 청나라 때 건륭황제 80세 생일잔치에서 공연한 이래 북경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한다.


경극은 워낙 레퍼토리가 많아서인지, 차관에 갈때마다 그 내용이 바뀐다. 장군과 첩자가 어두운 방에서 싸우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멋드러진 포즈가 아닌가. 경극을 보면 창(唱)도 좋지만 활발하게 움직이다가 탁 멈춰, 일순 정지화면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인상에 더 남는다.


장국영 주연의 영화 '패왕별희'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경극의 주제는 아주 다양하다. 우리에게 낯익은 관우, 장비의 삼국지도 있고, 손오공, 저팔계의 서유기도 있지만, 우리가 배운 역사에는 없는 어려운 중국역사도 많다.


경극을 통해 중국역사를 배우는 재미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경극의 무대 연출의 기예나 요소들은 唱, 念, 做, 打 4가지라 한다. 각 요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활력을 준다하니 자세히 살펴보면 4가지 요소가 곳곳에 스며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이다. 온갖 재주를 부리며 경극을 표현하고 있으니, 아이들도 아주 좋아할 듯하다.



중간에 사회자가 나타나 재미난 연기를 하기도 한다.



이 재미난 사람들의 공연 제목이 무엇인지는 까먹었다. 처음에 나타나서는 한참을 만담을 주고 받더니 한 사람이 밀가루를 두 눈에 바르고 머리엔 귀엽게 걸쳤다.



바로 이 장면을 위해서이다. 앞사람은 온몸으로 강연하듯 연기를 하고 있는데, 말은 뒷사람이 다 한다. 사람들 모두 뒤로 넘어질 정도로 웃기는 장면은 그들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나타난다.


뒷사람이 갈수록 표현의 난이도가 높아지거나 한다면, 앞사람은 당황할 것이다. 이 점이 이들을 인기있게 하는 키포인트라고 보면 된다.


이 장면은 우리나라에서도 코미디 소재로 가끔 본 기억이 나지 않는가. 이들의 연기는 아주 뛰어난 콤비를 과시하고 있는데, 5년 전 처음 파트너가 지금은 바뀐 것으로 봐서, 한 사람은 은퇴를 했을 성 싶다.



<라오쓰어> 차관의 주 종목은 경극과 변검인데 '샹셩'(相聲)도 제법 인기가 있다. 말로 먹고 사니 얼마나 재미있게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하겠는가.


'샹셩'에는 혼자 하는 '단코우'(單口), 둘이 하는 '뒈이코우'(對口), 여럿이 하는 '쥔코우'(君口)가 있다. '샹셩'은 북경에서 시작되어 전국에 퍼진 기예라고 한다.


말로 하는 만담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차관의 하이라이트는 사천성의 유명한 기예인 변검인데, 이는 따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곳 차관에서는 변검만 유독 사진촬영금지이기 때문이다.


웃기는 일이지만, 이해도 간다. 모두들 사진만 찍어댄다면 집중력이 떨어져 변검의 참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 종목 몇개를 빼면, 대체로 잡기나 무용들로 이뤄진다.



초록빛을 주조로 몇명의 예술단이 등장해 전통무용을 선보인다. 아마도 소수민족의 무용인지 싶다. 중국에서는 춤추는 것을 '우다오'(舞蹈)라 하니 차관에서도 그렇게 소개한다.


하늘거리는 곡선이 눈요기로 나쁘지 않지만, 왠지 차관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선녀처럼 등장해 전통피리를 부니 무협영화 '천녀유혼'에서나 등장할 법한 장면이다.


전통가락을 선보이는 것은 좋으나 좀 지루한 면이 있긴 하다. 그때는 차를 마시면서 한 호흡 쉬어가도 좋겠다.



이 사중주는 좀 특이하다. 사진만 보고 아 그렇구나 느끼면 아주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이다.


네사람 모두 악기 하나씩을 다루고 있는데, 문제는 각 사람의 손이다. 한 손은 자기 악기,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쉬울 것 같은면서도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거기다가 합창까지 하니 참 일사불란하고 연습도 많이 했을 것 같다.



잡기, 즉 서커스 공연도 꼭 하나씩 있다. 이 귀엽게 생긴 아가씨는 누운 채로 우산이나 방석 등을 여러개 떨어뜨리지 않고 돌린다. 손과 발로 말이다.



가끔은 군무가 등장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기도 한다. 중국사람들에게야 향수를 자극하는 지 몰라도, 외국인들이 보면 섬찟하다.


고급스런 공연장이라던 <라오쓰어> 차관에 가끔 이런 장면이 등장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하여튼, 젊은 배우들의 날렵한 몸매와 휘어지는 허리, 그리고 군무답게 활기차고 재빠른 동작들은, 다소 지루한 공연 분위기를 한순간에 깨우긴 한다.



2002년 처음 갔을 때에는 없던 '마술'이 어느 때부턴가 등장했다. 최근 2006년 5월에 갔을 때도 이 마술사가 있었으니 장수하는 셈이다. 마술이라 해봤자 그게 그건데, 특이한 건 꼭 외국인 중에서도 서양인을 무대로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무대장치가 등장하고 큰 보자기 속에서 두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나는데 특히 마술도우미인 묶여있던 아주머니가 옷을 바꿔입게 된다. 몇번 봤더니, 비밀을 알겠더라. 마술이란게 눈 속임이니 조금만 관찰하면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하하~



이 아저씨도 3년 동안 봤으니 꽤 장수하는 편이다. 갖가지 도자기를 머리 위에서 가지고 놀면서 표정도 늘 웃는다.



공연을 보면서 차는 원없이 마실 수 있다. 철관음과 같은 녹차를 주는데 맛이 아주 좋고 차 외에도 과자류, 죽이나 과일도 제공된다.


공연장 왼편에는 관광상품을 파는 곳이 있는데 최근에는 올림픽 기념상품도 같이 팔고 있다. 공연을 하는 차관 뿐아니라 식당도 있으며 차만 마시는 전문차관도 같은 건물에 아주 고급스럽게 꾸미고, 최근에 문을 열었다.


바야흐로 유명세를 탔으니, 점점 사업이 확장일로에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너무 유명해져서, 손님들의 관전태도가 갈수록 불량하다는 것이다. 올해 갔을때는 '인민은행' 직원들 100여 명이 단체로 관람을 왔는데 몇명을 술도 마신 채 들어와서, 공연 내내 시끄럽게 떠들기도 했다.


같이 갔던 중국친구 왈, '인민은행이 저 정도니 참 큰일이다'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조만간, 공연분위기를 좀 잡지 않을까 싶다. 부디, 전통문화를 고급스럽게 연출하는 <라오쓰어> 차관으로 남아주길 바란다.



입구에 전 부시대통령이 1994년에 방문했다는 걸 자랑하듯 아예 동상까지 세워두었다. 별로 반갑진 않은 동상이나 방문했다는 증거라도 남기려고 사진 하나 찍었던 걸 올린다.



수차례, 아마 열다섯번 정도 갔나보다. 처음 우연히 알게 돼 갔지만, 한국에서 손님이 오거나 중국친구들이랑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자주 갔더니만 요즘은 가고 싶어 병이라도 생기나 보다.


2004년인가, 겨울에 아들 녀석이 친구랑 북경에 왔을 때 데리고 갔더니 아주 좋아했다. 쉴 사이없이 차도 엄청 마시고, 진지하고도 재밌게 내내 자리를 지키며 보더라. 말도 알아 듣지 못하건만 뭐가 그렇게 재밌냐 했더니 '재밌잖아?'라고 반문하니 또 할 말이 없다. 나라고 말을 알아듣고 재밌어 했으랴.


노래와 음악, 몸동작과 기예가 어우러지고 경극과 변검이 있으니 어느덧 <라오쓰어> 차관은 정겨운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