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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지하철은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핑궈위엔(苹果园)과 쓰후이둥(四惠东)을 잇는 1호선만 있었는데 8통선과 2, 5, 10, 13호선에 공항고속 지하철과 올림픽 지선까지 복잡하게 됐다. 그만큼 시민들의 교통로서의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개통되는 지하철은 깨끗하기도 하지만, 외부와 내부 모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문화콘텐츠를 담고 있어 기분이 좋다.

얼마전 베이징에 갔을 때 5호선 둥쓰(东四)역에 내렸는데 플랫폼 한가운데 장기(象棋)가 놓여 있어 흥미로웠다. 대리석을 깔고 그 속에 장기판(象棋盘)의 선을 긋고 장기말(象棋棋子)을 새겼으니 정말 한판 장기 전쟁이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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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는 중국역사에서 초한(楚汉)의 쟁투,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두고 경쟁하던 배경을 삼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한가운데 초하(楚河)와 한계(汉界)의 글자가 적혀 있는 땅을 두고 말과 상, 병졸과 사, 포, 차를 움직여 승부를 내는 오락이겠다.

그런데, 번체를 간체로 바꾼 것이야 특별한 것이 아닌데 우리 장기와 알에서 다른 것이 하나 눈에 밟힌다. 바로 이다. 우리는 '장군을 불러' 최종 생포해야 할 적의 우두머리 표시가 인 것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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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운데 초하(楚河)와 한계(汉界)라는 경계가 사뭇 궁금하다.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양분하고 통일전쟁을 치를 때 치열한 전쟁 터이며 양 국의 경계가 됐던 허난성 싱양(荥阳)의 황하 강변의 홍거우(鸿沟)를 말한다. 이곳을 경계로 그들은 소규모전투 40여 차례와 대전 70여 차례를 치르는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중국 장기의 모티브는 여기에서 유래됐으니 베이징 시내 한복판 지하철 안에 또렷이 새겨질 만하다고 하겠다.

장기알이 새겨진 것이 아니라 발로 툭 차면 움직이는 것이라면 어떨까. 아마도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열차를 기다리며 한판 때렸을 지도 모른다. 대리석을 움직이자면 꽤나 힘이 들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하여간, 베이징을 비롯 전국의 도시나 마을에서 장기를 두는 사람들은 별로 보지 못했다. 마작이나 트럼프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 것에 비하면 말이다.

중국발품취재 중에 윈난성 다리(大理)의 창산(苍山) 입구에 커다란 대리석으로 장기알을 둔 것을 본 기억이 났는데 그보다는 약간 심심하지만 그래도 지하철 분위기 반전에는 탁월한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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