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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8회 허베이 2 – 만리장성의 출발 그 이름도 멋진 용머리


 

5) 창리 昌黎 한무제가 다녀간 산에서 조선을 찾아라

 

허베이 창리에는 제스산(碣石山)이 있다. 창리 역에서 삼륜차를 타고 도착한 후 산길을 10분 정도 걸어가니 입구가 나온다.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불교사원 쉐이옌쓰(水岩寺)는 공사 중이라 번잡하다. 건물도 새로 단장해서 너무 깔끔해 보이는 것이 산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니 A4 용지에 복사된 흐릿한 등산지도를 한 장 준다.

 

매표소 아가씨가 2시간 걸린다 했으니 생각보다 힘든 산행이 될 듯하다. 바로 앞에 산 정상이 보이건만 경사가 가파르니 시간이 많이 걸리나 보다.

 

이 제스산은 한나라 무제도 다녀간 명산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110년에 한 무제가 '태산부터 바다를 따라 동진하다가 제스에 이르렀다(行自泰山,複東巡海上,至碣石)'는 기록이 있다. 서기 207년에도 위 무제 조조가 지금의 차오양(朝陽) 지방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산에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으며 당 태종 이세민 또한 여러 번 제스산 관창하이(觀滄海)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이름난 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초입부터 바위마다 서예 솜씨가 난무한다. 바위에 새겨진 붉은색과 노란색 한자들이 곳곳에서 출몰한다.

 

제스산 바센타이(왼쪽), 등산로에 새겨진 글자(오른쪽 위), 제스산 정상에서(오른쪽 아래)

 

올라갈수록 정말 가파른 산이라 생각보다 힘이 든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을 한 자 한 자 보면서 서서히 오르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린다. 산을 오를수록 전망은 점점 넓어지고 멋지게 변한다.

 

거대한 바위를 깎아 계단으로 만든 고개 길은 해탈령(解脫嶺)이라 한다. 천문제일(天門第一)이라는 길도 있고, 입승(入勝)이라 새겨진 바위도 나타난다. 정말 신선이 되어 하늘을 오르는 듯하다. 고개 하나를 오를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광경도 신비롭다.

 

산 중턱에 조그만 정자가 있고 약간 아래쪽에 조조가 바다를 지켜봤다고 하는 관창하이가 있다. 삼국시대의 영웅이 다녀갔다고 하기에는 조그맣고 지저분하다. 그런데 기록과는 달리 이곳에서 바다는 보이지 않고 멀리 호수가 보인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새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앉아서 마치 황제라도 된 듯 앉아있다.

 

대학생들 10여명이 떼지어 정자에서 모여있다. 그 중 몇 명이 산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오고 있다. 정상에서는 바다가 보이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가니 엄청나게 거대한 암석 하나가 나온다. 암석 가운데 바센타이(八仙台)라고 쓰여있어서 가까이 가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날아갈 듯하다.

 

산불이 났었는지 온통 새까맣게 변했고 바위마다 불조심하고 절대 불 피우면 안 된다는 글자를 새겨놓아 명산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다. 쓰레기도 많아서 정말 이 길이 정상에 이르는 길인지 의심스럽다.

 

경사가 거의 60도가 넘는 가파른 길을 엉금엉금 기어올라가니 두 평 남짓한 정상이다. 세찬 바람 때문에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바위에 겨우 걸터앉아 주변을 살펴본다.

 

그 옛날 중원과 북방민족은 이곳을 경계로 치열한 전쟁을 치렀을 지도 모른다. 이 제스산 부근이 옛 고조선의 영토일 지도 모른다는 책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산 아래 평원에서 말 타고 창으로 싸우던 시절을 상상해본다.

 

역사학과 교수 한 분이 제스산에 가면 조선(朝鮮)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관창하이에 들러 살짝 한자로 조선이라 써놓고 내려왔다. 산에서 바라본 호수를 지나 역 앞으로 돌아가 다음 행선지인 친황다오 행 버스를 탔다.

 

6)   친황다오 秦皇島 케이블카 타고 바다 위를 날아 가다

 

허베이 친황다오는 해변도시이다. 한여름에는 베이다이허(北戴河)와 난다이허(南戴河)라는 해수욕장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발해만 연안을 끼고 있어 아름다운 해변이 많은데 난다이허 조금 남쪽에는 황금해안(黃金海岸)이라 불리는 해안이 있다. 마치 우리나라 동해안처럼 잘 조성돼 있어 바캉스 시즌이면 발 디딜 틈도 없다. 더 남쪽에는 페이추이다오(翡翠島) 해수욕장이 있는데 한적하고도 바닷물도 깨끗할 뿐 아니라 해수욕장 옆에 사막도 있다.

 

오후 늦게 난다이허 해변 모래사장에 발을 디디니 가슴이 뻥 뚫린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무수히 많은 발자국들이 모래 위에 흔적을 남겨 놓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을 오가는 케이블카가 운행을 마치려고 하나 보다. 바다 위를 날아가는 케이블카를 보니 빨리 타고 싶어진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해변을 걸었다. 날이 저물자 저 산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다에서 보는 석양은 왠지 더 선명해 보이고 운치가 있다. 호텔도 많고 아파트 형 콘도도 많다. 한 여름 성수기를 위해 건물을 계속 짓고 있는데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도 거리마다 나부낀다.

 

저녁시간이 되자 해변가 식당마다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싱싱한 해산물을 아주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수조 속에 있는 조개, 바닷게, 새우, 물고기들이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중국은 날 것으로 잘 먹지 않고 삶거나 데쳐서 먹는다. 맥주 한잔 곁들여 몇 가지 종류의 해산물을 주문해 맛 있게 먹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다시 바닷가로 나섰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밤이면 북새통이던 톈마(天馬)광장 앞은 인적 없이 한산하다. 밤새 청소도 마친 뒤라 도로에는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니 정말 이렇게 상큼한 아침 바다는 정말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햇살이 다소 강하긴 해도 바닷바람과 파도소리는 마음을 들뜨게 한다. 모래사장으로 가니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나와 있다. 모래톱 위에서 조개를 잡는 것인지 모래를 파기도 하고 모래 위에 그림이나 글씨를 써두기도 했다. 1시간 가량 모래사장 위를 걷다가 또 앉았다가 하면서 한껏 여유를 부렸다.

 

시원한 파도소리를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시선을 두니 멀리 섬 하나가 보인다. 바로 센뤄다오(仙螺島)라고 하는 인공 섬이다. 해안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1만 평방미터 규모이다. 당시 중국에서 유일하게 바다 위를 날아가는 케이블카라고 한다.

 

케이블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몇 년 전에도 이 케이블카를 탄 적이 있는데 오후 늦게 갔다가 돌아오는데 마침 노을이 지고 있는 환상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이번에는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바다를 날아가는 것은 또 어떤 재미가 있을 지 기대만발이다.

 

난다이허 해변(위쪽 왼), 센뤄다오(위쪽 오른), 바다 위 케이블카(아래쪽)

 

8시부터 운행을 시작한다. 표를 끊고 잠시 기다리니 섬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타고 간다. 두세 명씩 줄을 섰다가 빠져나간다. 곧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한다.

 

일부러 혼자 탔다. 혼자 타야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괜히 중국사람이랑 함께 탔다가는 분명 '어디서 왔냐? 너 중국말 좀 하네. 여행 혼자 왔어?'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다 보면 바다를 날아가는 감미로운 비행을 방해 받았을 것이다.

 

신선 선자와 소라 라자로 지은 이름 센뤄다오로 향해가는 비행은 온 사방을 다 둘러봐도 다 멋지고 환상적이다. 노를 저어가는 배를 공중에서 보는 느낌도 색다르다. 섬으로 다가갈수록 섬 안에 있는 거대한 번지점프 시설, 유람선, 식당, 공사 중인 노동자들이 서서히 나타난다.

 

15분 정도면 섬에 도착한다. 섬 안에는 분수대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 인어와도 비슷한 자태로 서 있는 선녀와 소라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상의 이름은 소라선녀라는 뜻의 하이뤄센즈(海螺仙子)이다. 민간 전설에 의하면 이 소라선녀와 어부 사이에 좋은 인연으로 맺어진 로맨틱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분수에서 물이 뿜어나오니 소라선녀가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살아난다.

 

섬 주위를 둘러보니 나룻배 하나가 파도를 따라 조금씩 움직이고 있으며 유람선도 서서히 운행을 하려나 보다. 건물을 더 지으려는 지 공사현장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높이 70미터에 이르는 전망대가 있는데 번지점프를 할 수도 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돌아가려고 기다리는데 육지 쪽으로 보는 풍경도 참 재미있다. 멀리 떠났던 새가 육지로 되돌아오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해변가에는 어느덧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아침 바다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날아오른 듯 멋진 비행을 한 난다이허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7)   산하이관 山海關 만리장성의 출발 그 이름도 멋진 용머리

 

허베이 성에 꼭 가볼 만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산하이관이 으뜸이다. 시간이 없어서 택시를 탔다. 멍장먀오(孟姜廟)를 보고 난 후 라오룽터우(老龍頭)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그런데 약삭빠른 운전수가 데려다 준 곳은 멀리 떨어진 멍장먀오가 아닌 라오룽터우 바로 옆 창청치관위엔(長城奇觀園)이었다.

 

이 창청치관위엔에도 창청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의 고단한 노역 장면이 있다. 애절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 멍장뉘(孟姜女)에 관한 조각상이나 벽화들이 전시돼 있기는 하다. 만리장성을 쌓다가 죽어간 사람들의 고통을 나름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어설퍼 보여 그다지 사람들이 많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전시실마다 불을 껐다가 관람객이 들어서면 불을 켜주곤 한다.

 

운전수는 친절하게도 자기가 티켓팅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라오룽터우 후문에 내려주더니 유람선 타는 비용이 포함된 티켓을 사준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당한 것이다. 배를 타지 않으면 더 싼 티켓이 있다. 아무리 관광지라고 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두 번이나 속은 것은 산하이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하여간 라오룽터우 정문으로 들어오면 보기 어려운 톈허우궁(天后宮)을 보게 됐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 해신 마조(媽祖)의 사당인 것이다. 마조는 중국남방인 푸젠(福建)성의 명문귀족 출신 여장부인 임묵(林默)을 말한다. 바다의 신으로 불리며 중국민간신앙에서 추앙 받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수많은 톈허우궁이 있다.

 

이곳도 바닷가인지라 모래사장도 있으며 해변을 따라 승마도 할 수 있고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서둘러 라오룽터우로 갔다.

 

톈허우(왼쪽 위), 바다 끝 라오룽터우(왼쪽 아래), 만리장성의 시작 라오룽터우(오른쪽)

 

라오룽터우는 그야말로 만리장성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바다에서부터 쌓기 시작한 창청의 출발지점이니 서북쪽 자위관()까지 연결되는 멀고도 먼 방어벽의 동쪽 끝자락인 것이다.

 

라오룽터우는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그 자체였다.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으며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명나라 시대 처음 세워졌는데 청나라 강희제와 건륭제 때에도 다시 손을 본 것이다.

 

라오룽터우 안으로 들어가니 맨 끝에 징루타이(靖鹵台)가 있다. 만리장성의 시작 중의 시작으로 1565년에 설치됐다고 한다. 적정을 살피기 위해 병사가 주둔하고 무기창고로도 쓰였다.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라오롱터우(龙头), 용의 머리라니 만리장성을 용이라 생각했나 보다. 정말 길고도 위대한 것이 용이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 후 만리장성의 서쪽 끝자락인 자위관에 올라 라오룽터우를 생각했다. 그러나 자위관에는 용의 꼬리라는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다.

 

8)   산하이관 山海關 변방 요새를 수비하던 장수들을 위한 사당

 

산하이관 역에서 다음 행선지 기차표를 미리 예약하려다가 재미난 사건이 있어서 소개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기에, 20여분 기다렸다. 이제 바로 앞 사람만 지나면 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불쑥 창구 앞에 끼어들더니 표를 사려고 한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는데 간혹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너 뭐 하는 거냐?' 했더니 빨간 수첩을 보여준다. 공산당당원증이 아닌가? 권위주의라면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지라 따지려는데 표 판매소 유리창에 노약자, 어린이, 군인과 경찰 등과 함께 공산당원은 신분증이 있으면 우선 판매한다고 써 있는 것이 보였다. 중국 곳곳을 다녔어도 이런 특혜를 본 기억이 없어서 오기가 났다.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몰라' 했더니 뒤에 줄을 섰던 사람이 '원래 규정이야'라고 한다. '그 규정 어디 있어?' 하고 싶었지만 여기까지만 해야 한다. 당당하게 표를 사더니 바쁜 듯 사라진다. ‘세상에 공산당만 바쁜가? 나도 더워 죽겠다. 죽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어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다.

 

중국사람들과 현지에서 말다툼할 필요는 없다. 간혹 혈기를 부려 끝까지 가려는 사람들을 보는데 절대 그러지 않길 바란다.

 

산하이관은 요새로 꾸며진 관청답게 웅장하다. 이곳 저곳 살펴보는데 무슨 행사가 있는 지 주변이 아주 시끄러웠다. 지시나 명령을 뜻하는 글자인 링()자가 적힌 빨간 깃발과 녹색 깃발을 양손에 들고 한 아주머니 지휘자가 바쁘다. 깃발로 신호를 보내면 북과 징, 꽹과리 악기를 든 사람들이 열심히 두드리기 시작한다. 온 동네 떠나갈 듯 시끄러운 타악기 소리가 라오룽터우 너머 바다까지 번져갈 기세이다.

 

산하이관 관청의 사당(왼쪽 위), 용무영(왼쪽 아래), 산하이관 관청 밖(오른쪽)

 

옛날 그대로 모습대로 관청을 꾸며 두고 있다. 관청은 대부분 장수들의 가옥을 겸하니 부엌도 있고 잠 자는 방도 있다. 우물도 있고 마구간도 보인다.

 

감옥도 있으며 해전을 하던 선박도 하나 전시하고 있다. 병영의 이름은 용무영(龍武營)인데 그 앞에 창을 든 보초병 2명이 나란히 서서 감시하고 있다. 물론 조각상이다. 병사들을 훈련하는 지휘부인 장대(將台)도 있고 작전 회의하는 모습의 조각상도 있다. 작전회의 중인 조각상 뒤로 맹호 한 마리가 걸려 있다.

 

산하이관에서 시작해 베이징 외곽을 거쳐 다퉁과 란저우를 거쳐 실크로드 위에 있는 자위관에 이르는 창청의 각 관문들을 적은 옛날 지도를 보니 정말 멀긴 멀다라는 생각이 든다. 관청을 공격해오면 어떻게 싸울 것인지 보여주는 공방도(攻防圖)도 흥미롭다.

 

밖으로 나오니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놀고 있다. 눈빛이 맑고 귀엽게 생긴 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말을 붙였다. 너무 수줍어해서 공연히 미안했다. 그래서 가지고 다니던 한국문양의 책갈피를 주니 고맙다고 받고 난 후에야 웃는다. 그 모습이 정말 해맑아서 기분이 좋다.

 

산하이관에서 기차와 택시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긴 했다. 하지만 정말 오래 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라오룽터우와 산하이관 관청을 다 보고 났더니 온 보람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문양을 선물로 주고 아이들의 맑은 미소까지 담았으니 기분이 더더욱 좋아졌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