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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13회 네이멍구1 몽골족 전통악기에는 말 머리가 새겨져 있다

 

 

1947 5월 신중국 최초의 소수민족자치구인 네이멍구자치구는 남북으로 1700킬로미터, 동서로 2400킬로미터에 이르는 내륙지역이다. 허베이, 산시, 산시, 닝샤, 간쑤 및 동북3성과 모두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몽골과 러시아와도 국경을 이루고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래 초원과 사막을 무대로 성장한 북방 유목민족은 지속적으로 중원으로의 진출을 도모한다. 흉노족, 거란족, 선비족, 돌궐족, 몽골족 등은 끊임없이 남하해 중원의 한족과 충돌한다. 중원에 도읍을 정하고 전 중국을 통치하게 되는데 그 터전이 된 곳이기도 하다.

 

네이멍구자치구의 수도인 후허하오터와 몽골족의 전통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시라무런 초원과 우리나라로 불어오는 황사의 진원지로 알려진 쿠부치 사막으로의 체험을 떠나보겠다.

 

1)  후허하오터 呼和浩特 기러기를 닮은 미인 왕소군을 만나다

 

산시(山西)성 다퉁(大同) 기차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네이멍구(內蒙古) 후허하오터로 간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약간 거리가 먼 경우 기차역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버스에서 인터넷으로 찾은 몽골족 가이드 바털(巴特兒)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허하오터에 도착하니 마중을 나왔는데 아담한 키, 대머리에 귀여우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 전형적인 몽골족이다.

 

한국에서 휴가를 내고 온 직장인 도지(닉네임)와 일행이 됐다. 그는 중국어를 한마디로 못하니 내내 답답했는데 나를 만나 신이 났다.

 

점심을 먹은 후 후허하오터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자오쥔무(昭君墓)로 갔다. '푸른 무덤'이란 뜻의 '청총()'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옛날 산천초목이 다 가물어도 이 무덤만은 언제나 목초가 자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4대 미인 중 한 명인 왕소군(王昭君)을 만나러 가는 동안 도지는 계속 그 동안 궁금한 점들을 묻기 시작한다. 정말 혼자서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데 이곳까지 올 생각을 다 하다니. 오히려 내가 더 궁금한 게 많다. 직장생활의 권태를 벗고 마음을 되잡기 위해 오래 전부터 꼭 가보리라 꿈 꿨던 초원과 사막을 보러 온 아마추어 사진작가 도지. 우리는 쉽게 의기투합했다.

 

왕소군은 '기러기가 내려온 듯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해 '낙안(落雁)'이라 불린다. 중국 역사 상, 양옥환(楊玉環 양귀비), 서시(西施), 초선(貂嬋)과 함께 4대미인의 반열에 든다. 그녀는 서한(西漢) 시대인 기원전 33, 황제의 후궁이던 19살의 나이에 동흉노의 찬위(單于, 흉노의 임금을 낮춰 부른 말)이던 후한야(呼韓邪)에게 화친의 선물이 되어 이곳 '변방'으로 온다.

 

왕소군 무덤(왼쪽 위), 왕소군 공연(왼쪽 아래), 화친동상(오른쪽)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화친동상이 보인다. 흉노 찬위와 왕소군이 사이 좋게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둘이 결혼한 후 찬위는 2년 후 사망하지만 왕소군은 찬위의 본처 아들과 다시 결혼하고 살았다 한다. 후궁으로서 '변방'으로 가게 된 과정을 포함해 그녀의 이런 드라마틱한 삶은 역사적 고증으로서가 아니라 대부분 민간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그녀의 삶은 이백(李白),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 채옹(蔡邕), 왕안석(王安石), 야율초재(耶律楚材) 등 유명한 문인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그녀를 노래한 문인만도 500여 명이고 700여 수의 시, 40여 종의 이야기로 전해온다고 한다.

 

게다가 근 현대에 이르러서도 궈모뤄(郭沫若), 차오위(曹禺), 톈한(田漢), 젠보짠(翦伯贊), 라오서(老舍) 등 문학가들도 그녀를 시와 소설, 연극에 등장시킬 정도로 훌륭한 문학 소재이다.

 

왕소군 무덤은 높이가 33m에 이를 정도로 크다. 민간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왕소군 무덤은 하루에 세 번 신비한 색채를 띠면서 변모한다고 전한다. '새벽에는 봉우리처럼 둥글고, 낮에는 종처럼 높게 보이고, 해질녘에는 평행선처럼 길어 보인다'고 한다. 아마도 무덤 모습이 실제로 변하는 것이 아닐 터이니 왕소군에 대한 흠모의 정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중원에 살다가 변방으로 가는 것을 '추싸이(出塞)'라 합니다. 왕소군은 바로 추사이의 비운의 주인공처럼 회자된다. 하지만 넓고 푸른 초원에서 한평생 살다 간 왕소군은 바로 이곳이야말로 고향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사람들도 이렇듯 웅장한 무덤으로 그녀를 포장해둔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뜻밖에 아름다운 공연을 보게 됐다. 오전 오후 각각 한 번씩 왕소군을 주제로 한 공연을 하는데 입장료에 포함됐으니 공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렇다. 말로만 듣던 몽골족 전통악기 마터우친(馬頭琴)을 처음 보기도 했다. 웅장한 군무도 멋지며 왕과 왕비의 듀엣 무용도 볼만하다.

 

왕소군을 떠올리는 듯 남녀의 사랑을 묘사한 내용이 많다. 병사들의 진군, 왕과 왕비에게 바치는 선물 증정에 이어 향연도 벌어지는 등 다채로운 장면들이 많다. 역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왕소군이 몽고전통 복장을 하고 춤을 추는데 눈 부시게 아름답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 중 몇 명을 골라 전통주로 손님에게 경의를 표하는 징쥬(敬酒)를 한 잔씩 바친다. 함께 갔던 도지가 받아 마셨다. 그리고 공연 소감 앙케트 작성하느라, 저는 통역해 주느라 혼났다.

 

2)  시라무런 希拉穆仁 경마와 씨름으로 몽골족과 친해지다

 

네이멍구 후허하오터에서 북쪽으로 약 90km, 2시간 거리에 시라무런 초원이 있다. 초원과 사막 여행을 온 일행 8명과 함께 1 2일의 여행을 떠났다. 톈진과 베이징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이다.

 

도로를 따라 산 하나를 넘어가야 하는데 잠시 차가 멈춰서 산 아래를 보니 구비구비 산길을 따라 허허벌판이다. 초원 사이를 따라 가는 길에 몽골족들이 생활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예전에는 말을 타고 달렸을 길을 트렉터를 타고 가는 사람들 모습도 보인다.

 

점점 몽골족 전통가옥인 멍구바오(蒙古包)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덧 '황색 강'이라는 뜻을 지닌 시라무런 초원에 도착했다. 후허하오터가 '청색 도시'라는 뜻이니 서로 잘 어울린다.

 

2000년 전 중원에서 온 왕소군도 감탄했을 넓고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있다. 초원 한가운데 몽골족 등 유목민족의 전통적 가옥인 멍구바오가 곧 민박 촌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몽골족 아가씨들이 나타나 징쥬를 따라준다. 이곳에 온 손님은 몽골족 풍습으로 손가락으로 술을 적셔 이마에 살짝 튕기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오늘 하루 밤 묵을 멍구바오에 들어가니 10여명이 누우면 적당해 보이는 공간이다. 천장 위로는 햇살이 들어올 수 있도록 둥근 원형 모양으로 뚫려 있다. 물론 비가 와도 새지 않도록 해두었다. 초원의 6월은 매우 춥다고 하는데 이 큰 방에서 두 사람이 잔다고 하는데 아주 추울 듯하다. 다행히 이불이 아주 많다.

 

방 정면 가운데에는 칭기스칸(成吉思汗, Chinggis Khaan) 초상화가 걸려 있다. 칭기스칸은 성은 '보얼지진'(孛兒只斤, bo er ji jin)이며 이름은 테무진(鐵木, tie mu jin)입니다. 천하를 주무르던 위대한 영웅, 몽골족들의 우상인 칭기스칸은 여전히 그들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보(왼쪽 위), 몽골씨름(왼쪽 아래), 초원 말타기(오른쪽 위), 활쏘기(오른쪽 아래)

 

6월의 초원. 풀이 아직 덜 자라 '땅 반 풀 반'이다.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어 그리 쾌청한 초원을 기대한 것 때문인지 좀 섭섭했지만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과 지평선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이라고 가보니 식당 역시 멍구바오이다. 역시 식당 정면에 칭기스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초원 체험을 본 외국인들이 많다. 점심 주 메뉴는 양고기이다. 큰 양고기 갈비를 들고 뜯어먹어 본다.

 

점심을 먹고 나니 몽골족 전통문화를 보여준다고 모두 초원으로 나오라고 한다. 먼저 경마가 벌어진다. 몽골족 청년들이 모두 말을 타고 대기 중이다. 해맑은 웃음을 짓는 총각들이 순진해 보인다. 모두 출발지점으로 이동하고 잠시 기다린다.

 

손님 중 남녀 한 쌍이 전통복장으로 갈아입고 큰 깃발을 흔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경주가 시작되는데 멀리 초원 위에 10여 마리의 말들이 질주해 달리니 정말 800여 년 전 테무진 부대가 달려가는 듯 착각에 빠진다. 가장 먼저 골인한 1등에게 손님은 100위엔을 하사했다. 이렇게 100위엔을 투자해 전통복장을 입고 경마를 주관하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몽골 씨름도 보여준다. 씨름을 시작할 때 독특한 구호와 함께 몸을 좌우로 흔드는 동작이 특이하다. 우리 씨름과 약간 다른데 그 기술 구사는 비슷해 보이고 샅바는 없다. 오히려 유도와 비슷한 방식이다. 예선을 거치고 준결승을 한 후 최종 결승까지 이어진다. 결승전에 오른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고 허리를 잡고 이리저리 힘을 겨루더니 드디어 모자를 쓴 친구가 이겼다.

 

말을 타려니 1시간에 80위안이다. 너무 비싸다며 계속 협상을 했지만 막무가내로 안 된다고 한다. 우리는 승마를 포기하는 대신, ATV((All Terrain Vehicle)를 탔다. 중국어로는 쓰룬위에예모퉈처(四輪越野摩托車)라고 하는데 '들판을 달리는 사륜 오토바이'라는 뜻이다. 초원이나 사막을 달리는 이 터프한 오토바이는 바퀴가 4개라 아주 안전하다. 운전 조작도 아주 쉬워서 누구나 쉽게 운전할 수 있다.

 

초원을 달리는 동안 길을 따라 달리기도 했고 길이 아닌 곳도 달렸다. 온 사방이 확 트인 벌판, 초원을 달리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일행 중 한 대가 고장 나서 약간 지루하긴 했지만 속력을 줄이라는 요청을 무시하고 신나게 달려도 좋았다.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이나 소도 보였는데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몽골족에게 아주 신령스런 곳이기도 하며 샤머니즘이 담긴 '오보(敖包)'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보'는 몽골어로 '나무와 돌, 흙으로 쌓은 무더기'라는 뜻이다. '오보'는 중국어로 '아오바오’(ao bao)라 발음하는데, 몽골어는 '오보(obo)'라고 한다.

 

'오보'는 우리나라의 서낭당과 비슷해 보인다. 샤머니즘적인 요소도 그렇지만, 동시에 마을과 마을을 구분하거나 씨족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오보 위에 걸린 깃발이 초원의 바람에 휘날린다.

 

몽골족에게는 일종의 군현(郡縣)제도와 비슷한 멍치(盟旗)가 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지도 상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 ''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각각 '' ''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듯하다. '()''()'가 얼마나 크고 작으냐에 따라 제례 내용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ATV 한 대가 결국 고장 나는 바람에 2시간 넘게 초원에서 신나게 놀았다. 결국 고치지 못했는데 덕분에 두발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를 따라온 직원은 고장 난 ATV를 끌고 오게 됐고 대신에 오토바이는 같이 갔던 친구가 탔다. 정말 신나게 타는 모습을 보니 초원에서 오토바이로 정말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아쉽게도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다.

 

다시 멍구바오에 돌아와 우리는 말을 타기로 했다. 날이 저물어가니 50위엔으로 협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곳 초원에서 말을 타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말 잔등 위에 앉았더니 엉덩이도 제법 아프다. 마구 달리면 오히려 아프지 않다는데 위험하다고 말을 달리지 못하게 한다. 말들은 주인 말만 듣고 주인처럼 아무리 중국어로 소리를 지르고 뒷등을 때려봐도 요지부동이다.

 

1시간 동안 초원을 거닐다가 터벅터벅 말을 타고 돌아왔다. 말들도 모두 자기 위치로 돌아간다. 말들은 고개를 젖히고 별로 자라지도 않은 초원의 풀을 뜯느라 정신이 없다. 이렇게 풀이 자라지 않는 계절에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활쏘기를 하는 몽골족 청년들이 있다. 과녁에 대고 활을 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말 달리며 말 등 위에서 활 시위를 날리던 몽골족 전사들의 힘찬 기상을 떠올려 본다. 이제는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며 소외 당하고 살아가는 몽골족이지만 가슴 속에는 용맹한 조상들의 혼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아침부터 초원으로 와서 양고기에 점심을 먹고 초원의 오토바이와 승마로 하루를 즐겼다. 몽골족 청년들의 경마와 씨름도 신선한 체험이다. 이제 날이 서서히 저물어간다. 말들도 어디선가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3)  시라무런 希拉穆仁 몽골족 전통악기에는 말이 새겨져 있다

 

몽골 초원에 저녁이 되면 만찬이 시작된다. 초원 체험을 온 손님들이 모두 멍구바오에 모였다. 이제 초원의 백미인 양고기를 먹으며 전통 공연도 보게 된다. 전형적인 몽골족 아저씨 한 사람이 모자를 쓰고 노래를 하면서 서서히 분위기를 띠우고 있다.

 

양고기 통 바비큐 한 마리가 놓여 있다. 입에는 나무줄기처럼 보이는 풀잎을 물고 목에는 흰 천을 두르고 있는 양고기가 애처롭기도 하고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그런 모습이다. 테이블마다 주문한 양고기 바비큐가 나온다. 전통 술에 곁들여 먹으니 한껏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양바비큐(위쪽 왼), 만찬(위쪽 오른), 칭기스칸(아래 왼), 마타우친(아래 중간), 캠프파이어(아래 오른)

 

한가운데 있던 양고기를 특별히 주문한 손님이 따로 있다. 만찬석상에서 양고기 한 마리를 주문한 부부가 나와서 몽골 전통풍습에 따라 고기를 칼로 베어 주고 있다. 남녀에게 각각 어울리는 부위만 떼어내어 서로 먹여주는 풍습인데 재미있다. 그리고 서로 술을 나눠 마시는데 몽골 아가씨가 노래를 불러주니 박장대소를 하고 웃는다. 노래가사라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아마도 좋은 고기 먹고 술 나눠 마시고 좋은 밤 보내고 아들 많이 낳아라 뭐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공연도 흥미롭다. 마터우친과 전자오르간 반주에 맞춰 전통 민속노래와 유행가가 이어진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이지만 다 함께 하나가 된 듯하다. 스스럼 없이 술을 권하고 받고 하는 사이가 될 수 있는 곳이 초원이기도 하다.

 

요리사가 나와서 칼로 양 한 마리를 자르고 있다. 양고기에 기름기가 많은 부위가 있는데 그냥 먹기에는 좀 부담스럽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즐겨먹기가 쉽지 않은데 술과 함께 먹으면 나름대로 괜찮다. 살코기 위주로 먹으면 나름대로 맛 있다고 배부르게 먹게 된다.

 

저녁만찬이 끝나고 바깥 마당으로 나가니 캠프파이어와 함께 야간공연이 이어진다. 노래와 춤, 마터우친 연주 등 민속 공연이 한 시간 동안 이어진다. 몽골 초원에서 가장 인상에 깊이 남은 것은 몽골족의 전통악기인 마터우친이다.

 

이 악기는 중국 중원의 한족 전통악기인 얼후(二胡)처럼 두 줄 현악기이다. 얼후가 약간 거친 소리를 내는데 비해 마타우친은 오히려 바이올린 소리에 가까운 맑은 소리를 낸다. 말 머리 모양의 문양이 계속 눈길을 끈다. 마터우친은 몽골어로는 추얼(綽爾)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나무와 말 가죽으로 만든다. 광활한 초원에서 현이 떠는 소리는 긴 공명을 따라 멀리 퍼져나갈 듯하다.

 

감미롭고 유쾌한 소리를 들으며 초원의 밤이 깊어간다. 횃불 앞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고 논다. 초원의 향기는 이미 술과 함께 범벅이 됐지만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 됐다. 몽골 초원의 밤,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좋은 추억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