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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18회 칭하이 1 춤 추고 노래한 아이들에게 상처 준 것은 아닐까
 


칭하이 성은 평균 해발이 3천 미터에 이르는 칭장고원의 동북에 위치한다. 창장, 황허의 발원지이며 동서로 1200킬로미터, 남북으로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광활한 고원지대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염수호인 칭하이호가 있으며 오랫동안 라마불교를 숭상한 티베트민족의 터전이었다.


칭하이 성의 수도인 시닝을 제외한 나머지 광활한 영토는 티베트민족과 몽골족의 자치주가 대부분이다.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저(氐)족과 강(羌)족의 기반이었으며 한족 중심의 중국에서 지금도 30여 민족들이 저마다의 문화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1) 시닝 西寧 양고기 순대를 파는 재래시장을 가다


간쑤 성 란저우에서 칭하이 성 시닝까지는 기차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일찍 아침을 먹고 출발했더니 12시도 안돼 시닝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여느 중원 땅과 다른 도시인 시닝의 번화가가 궁금해졌다.


공예품도 팔고 먹거리도 있는 재래시장인 쉐이징샹(水晶巷)을 찾았다. ‘샹’은 골목이란 의미로 베이징에 있는 골목길 ‘후퉁(胡同)’과 비슷한 느낌이다. 골목에 있는 재래시장인 셈이다. 골목 입구에 컨더지(肯德基), 즉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KFC가 자리잡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정말 세계적 먹거리 프랜차이즈들은 중국 지역 곳곳에 없는 곳이 없다.


시장 입구에 ‘해방사상, 개혁개방, 쾌속발전, 부민강시’라고 쓴 현수막이 붙어있는데 역시 사회주의 국가답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공예품은 중국 전역 어디서나 비슷비슷해 특별한 것은 없다. 하지만, 중국 서북쪽으로 오니 실크로드(丝路)나 티베트민족을 떠오르게 하는 공예품들이 많다. 시장 이곳 저곳을 즐겁게 돌아다녔다.


역시 재래시장이어서 그런지 과일이 아주 싸다. 잉타오(櫻桃, 앵두), 타오즈(桃子, 복숭아), 멍궈(杧果, 망고)와 양귀비가 즐겨 먹었다는 리즈(荔枝)까지 15위엔을 주고 잔뜩 샀다.


맛있게 구운 오리구이인 카오야(烤鴨)를 보니 군침이 돈다. 한 마리에 20위엔인데 살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먹고 싶었는데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아 결국 참았다.


대신에 시장 골목 한 켠에 우리나라 순대와 비슷한 먹거리가 있어서 한 접시 주문을 했다. 양으로 만든 순대로 양창(羊腸)이라고 하는데 순대와 달리 기름에 달달 볶아낸 것이다. 종업원 아가씨가 우스운 듯 해맑게 웃는다. 외국사람이 거리 좌판에 앉아 맛있다며 음식 이름도 묻고 제조방법도 묻고 하니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양고기꼬치(왼쪽 위), 양 순대(왼쪽 아래), 시닝의 후이족(오른쪽 위), 티베트공예품가게(오른쪽 아래)


정말 먹을 만 하냐고 거듭 물어보는데, 사실 그다지 확 입맛을 당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맛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매번 맛 있다고 ‘하오츠(好吃)’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구두 닦는 이도 있고 칼 가는 이도 있다. 아기자기한 장신구를 파는 가게도 많다. 길거리에는 양고기꼬치인 양뤄촬(羊肉串)을 구워 파는 후이족(回族)들이 많다. 서쪽으로 갈수록 신선한 양고기가 많아서인지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오징어를 데치고 야채를 넣어 볶는 요리를 파는 곳 앞에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섰다. 오징어를 꼬치에 꼽아 양념을 듬뿍 발라 연신 불에 굽는 게 아주 신기하다. 게다가 기름을 부을 때마다 불꽃이 확 살아나는 모습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난다. 5위엔에 3개 사서 먹어보니 정말 오징어 살이 물컹 살아 있으면서 쫄깃한 게 아주 맛 있다.


닭 파는 것은 자주 봤지만 비둘기 파는 곳은 드물다. 비둘기 고기 요리를 음식점에서는 가끔 먹었지만 시장에서 파는 것은 처음 본다. 처음 비둘기 요리를 먹었을 때 ‘이렇게 맛 있는 것을 왜 안 먹지?’라던 기억이 났다.


시장에서 오후 내내 있다가 숙소가 있는 기차역 앞으로 돌아왔다. 뒷산으로 서서히 하루 해가 저물고 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갈 생각으로 거리를 걷다 보니 진저우(錦州) 비자산에 본 적이 있는 융밍즈줘화(用名字作畫)를 또 만났다.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꽃, 새, 물고기, 곤충 등의 형상들이 서로 꼬여 있듯 엮어지고 서서히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붓은 보통 금속으로 만드는데 다양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 그 사이에 스펀지를 끼워 만든다고 한다.


이 스펀지가 바로 형형색색, 변화무쌍한 그림의 마술을 부리는 것이다. 하나 그리는데 5분 정도 걸리는데 한 장에 5위엔을 받는다.


기차 역 앞에서 사람들 오가는 모습을 한참 보다가 후이족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후이족 식당에서는 술을 팔지 않아 섭섭했다. 오후 내내 시닝의 재래시장을 돌아다녔더니 피곤이 몰려온다. 다행히 날씨가 맑고 공기도 좋은 편이라 서쪽 지방이 자꾸 좋아지기 시작한다.


2)   칭하이후 海湖 당나라 공주가 티베트 왕에게 시집 가다


중국 여행객들과 함께 일일 투어를 떠났다. 중국에서 가장 넓은 호수인 칭하이호로의 긴 여행이 시작된다. 가이드와 기사를 포함해 일행이 8명이다. 참 단출한 여행이 될 듯싶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래 마음이 마구 설레기도 한다.


시닝에서 약 서쪽으로 2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는 1300여 년 전 당나라 태종의 딸인 문성공주 사당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멀리서 기차가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먼저 가나 내기 하는 듯 했는데 기차가 그만 굴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멀리 설산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완만한 고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문성공주 사당 앞에 도착하니 수많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고 티베트민족에게 친근한 동물인 야크가 목에 고리를 매단 채 서 있다. 기념사진 촬영용이다. 낙타 2마리도 빠질 수 없다는 듯 어슬렁어슬렁 거린다.


장족 복장을 하고 사당을 소개하는 가이드 아가씨 모습이 좋아 보여 사진을 찍었다. ‘찍지 마세요’ 하길래 ‘예뻐서’ 그랬더니 옆에 있는 중국사람들이 ‘당연하지. 그래 맞아’ 해서 모두 웃었다. 대체로 중국 가이드들은 함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당연한 서비스라 생각하는 편이다.


사당 안으로 들어서니 향불이 피어 오르고 있다. 향이 사람 키보다도 더 커서 기름통에 있는 기름을 먼저 묻힌 다음 불꽃이 있는 다른 깡통에 향을 넣어 불을 지피고 있다. 기름을 묻혀서 그런지 향에서 불꽃이 일어난다.


문성공주의 사당인 공주당(公主堂) 안에는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서 예를 올리고 나온다. 문에는 천으로 가린 키 작은 돌 조각상 하나가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머리를 만져 반질반질해졌다. 아마도 머리를 만지면 복이 오거나 뭐 그럴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티베트민족인 장족(臧族)의 자치주이다. 옛날부터 티베트민족이 자신의 민족문화를 꽃피워오던 곳이다. 사당 옆에는 당번고도(唐蕃古道)라는 표시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적어도 당나라 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티베트민족과 중원 한족의 영토 경계선이었을 것이다.


당 태종이 아꼈던 문성공주는 장한단결(藏漢團結)의 선물로 장족의 토번(吐蕃) 왕인 쑹첸깐부(松贊干布)에게 보내진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長安)에서 라싸(拉薩)로 가는 길에 공주가 가장 오래 이곳에 머물렀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당 태종이 이곳까지 배웅을 했다니 공주를 보내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했지 싶다. 이곳에 오래 머물며 선행을 많이 한 마음씨 착한 공주를 위해 티베트민족들이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예쁜 가이드(왼쪽 위), 르위에산(왼쪽 아래), 야크의 수난(오른쪽 위), 문성공주 상(오른쪽 아래)


티베트민족이 영물로 숭상하고 있는 동물인 야크 동상이 보인다. 야크는 중국어로 마오뉴(犛牛)라고 하는데 동상에는 르위에산 션뉴(神牛)라고 새겨 있다.


해와 달을 상징하는 정자 2개가 산봉우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는 르위에산에 있는 문성공주의 조각상이 하얀 돌로 세워져 있다. 석상을 지나 정자로 올라가니 고원의 풀을 뜯는 양떼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게다가 온통 산에 총천연색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이 르위에산은 해발이 무려 4877미터이다. 게다가 목초지와 농경지의 경계이기도 한데 초원의 유목생활에 익숙한 티베트민족과 농경생활을 주로 하던 한족의 상징적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곳에 두 개의 봉우리를 각각 해와 달을 상징하는 정자를 세운 것도 참으로 기가 막힌 발상으로 보인다.


이 산은 원래 츠링(赤嶺)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주변의 토양이 붉은 빛을 띠니 당연히 그렇게 불렀으리라 생각이 든다.


정자 안에는 문성공주의 생애를 벽화로 만들었는데 채색이 예쁜 당삼채로 만든 것이라 아주 보기 좋다. 정자 앞에는 야크에 올라타 서로 사진을 찍으려는 중국사람들이 다소 밉상이다. 야크가 제 할 일을 끝냈다며 자리에 꿇어 앉는 모습이 안돼 보인다.


모든 산에 해와 달이 뜨겠지만 해와 달을 이름으로 한 산은 많지 않다. 이 양지 바른 고원에 당나라 공주의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티베트민족에게는 한가로이 노니는 양떼보다 더 친근한 야크가 관광객들에게 수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3)   칭하이후 海湖 소수민족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


칭하이 성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염수인 칭하이후(青海湖)가 있다. 이 호수이름은 원래 몽골어로는 ‘쿠쿠눨(庫庫諾爾)’, 티베트어로는 ‘춰원보(錯溫波)라 하는데 그 뜻이 모두 ‘푸른 바다’이다.


강의 길이만도 100킬로미터가 넘고 둘레만도 360킬로미터에 이르는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이다. 해발고도 3천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에 이렇게 바다 같은 호수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 호반을 따라 만들어진 도로를 한 바퀴 도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리이다.


주변의 높은 산들의 단층 함몰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이며 원래는 담수였으나 지층의 융기로 인해 서서히 염수로 변했다.


버스를 타고 칭하이호 근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창문에서 바라보니 바깥 호수 풍경이 마치 바다를 보는 듯 착각에 빠진다. 가게 주인이 파라솔을 꺼내 세우고 있으니 영락 없는 바다 해변이다.


호수 옆으로 조성된 도로를 차들이 빠르게 다니고 있다. 이름과도 흡사하게 호수는 푸른 빛을 띠고 있으며 수평선이 마치 한 없이 멀게 느껴진다. 수평선 위로 구름이 호수 위를 떠나지 못하고 머문 듯 보이고 하늘도 마냥 푸르다.


점심을 다 먹은 후 호수를 둘러볼 요량으로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통복장을 입고 예쁘게 포즈를 취하는 것이 너무 예뻐 옆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목에 두르고 있는 아이들 2명이 볼수록 귀엽다.


노래하고 춤 추는 티베트 아이들(위쪽), 티베트 아이들(왼쪽 아래), 창문으로 본 칭하이후(오른쪽 아래)


사람들이 좀 모여들자 두 아이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옆에는 아이들을 지키는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그러더니 사진을 찍던 사람이 아이들에게 5위엔을 건네준다. 그래서 돈을 받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는구나 알았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모습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5위엔 주면 되겠다 싶었다. 계속 사진을 찍으니 ‘아저씨 노래할 테니 돈 주세요’ 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 가이드가 한 말이다.


문제는 그 누구도 사진 찍는데 얼마라고 하지 않았고 게다가 1장만 찍어야 한다고도 말해주지도 않았기에 발생했다. 춤 추는 예쁜 모습을 당연히 영상으로 담기까지 했으니 사정이 꽤 복잡해진 것이다.


아이들도 순진하고 곁에 섰던 아주머니도 별반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돈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가이드가 왔다. 출발해야 하는데 제가 오지 않으니 찾으러 온 것이다. 그래서 얼른 5위엔 주고 가야지 하고 돈을 내미는데 아이들이 받지를 않는 것이다.


가이드가 한참 설명을 듣더니 ‘이 아저씨 몰랐어’ 하면서 그냥 5위엔 받으라고 하는 듯 했다. 아이들이 난감해 하는 표정이다. 다른 관광지라면 아마 생떼를 쓰고 곤혹스러웠을 지도 모른다.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도 그냥 웃으며 넘어가는 듯 했다.


시간 없다는 가이드의 재촉으로 버스에 올랐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자꾸 아이들의 해맑은 눈망울과 몸짓이 떠올랐다. 돈을 더 줬어야 했나 계속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경솔했던 마음이 드는데 아이들의 맑은 표정이 그립기도 하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