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 아래에서 바라본 장강 케이블카도 멋지고 장강 케이블카를 타고 바라본 장강도 역시 멋지다. 노을 지는 하늘과 장강이 어울리니 충칭(重庆)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광경이기도 하다. 충칭 일일여행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쿵중여우(空中游)라 하니 타볼 만하다. 장장 1,166미터의 거리이고 도시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건설되어 산성(山城) 또는 강성(江城)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보이고,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화물선도 보인다. 장강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강 주변을 따라 조성된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도 눈요기로 좋다. 노을 지는 강은 누런 장강을 불그스레하게 바꿔준다. 색이 조화를 이루니 더욱 붉은 빛을 띠는 듯하다. 붉은 듯 누렇고, 누리끼리하면서도 붉다. 어떻게..
충칭(重庆) 시에는 두 개의 강이 흐른다. 시내 중심인 위중구(谕中区)를 남쪽으로 감아 도는 장강(长江)과 북쪽으로 지나가는 창쟝 지류인 자링강(嘉陵江)이다. 그래서 충칭량쟝(重庆两江)이라 하고 중국의 야경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야경투어가 있기도 하다. 두 강 모두 케이블카가 있다. 시내 중심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창장숴따오(长江索道)를 타러 갔다. 케이블카(缆车)가 시내에 시 남부를 연결하는 대중교통로인 것이다. 강 수면에서 약100미터 정도 높이이니 꽤 높다.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가끔 정전 등으로 고립되기도 한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정말 멋지다. 연간 20만 명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지만 대부분 관광객들이라 한다. 1987년부터 운행이 되었으니 꽤 오래됐다. (쟈링쟝 케이블카는 19..
우루무치(乌鲁木齐)에서 캠코더 고장으로 ‘우울 무지’하다가 시안(西安) 거쳐 베이징(北京) 들러 캠코더 수리 맡기고, 다시 충칭(重庆)에 왔다. 7월14일 오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다. 택시기사들은 대부분 어디에 있는 지 모른다. 5대 모두 다시 택시에서 내렸다. 그래서 지도를 샀다. 인터넷에서 롄화츠(莲花池)라는 곳에 있다고 본 기억이 나서 지도에서 열심히 찾았다. 꼼꼼히 보고 또 10분이나 지나서야 겨우 발견했다. 택시도 잘못 내렸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 겨우 이곳을 아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어제도 똑같이 묻는 한국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후후 나랑 똑같이 헤맨 사람이 있었구나. 하여간, ‘渝中区 莲花池街’만 보고 찾기에는 약간 고생스럽다. 민셩루(民生路) 큰길에 있는 표지판을 보고 ..
[중국발품취재86] 수저우 1 - 줘정위엔, 스즈린, 산탕제 10월 1일 수저우(苏州)에 도착한 때는 정오가 약간 지난 시간이었다. 터미널에 내리니 여행을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들로 발 내디딜 틈도 없다. 1주일 연휴가 시작됐으니 한바탕 혼잡을 각오해야 한다. 마침 하천을 건너 터미널 맞은 편에 내가 찾는 호텔이 보였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방이 있을까. 염려와 달리 빈 방이 하나 있다. 다만, 오늘 하루뿐. 내일은 오래 전에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짐을 풀고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수저우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 받은 정원을 군락처럼 형성돼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줘정위엔(拙政园)을 먼저 찾았다. 걸어서 20분 거리다. 산뜻한 거리이면서 차분한 모습이 격조가 높다. 입구를 들어서니 연꽃이 핀..
공장지대이던 베이징 다산즈, 798 예술의 거리 사진 스케치 앞으로 베이징올림픽이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올림픽을 전후해 베이징의 역사와 문화, 생활과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넘쳐날 것이다. 나는 베이징에 있을 때 가장 베이징답지 않으면서도 가장 즐겨 갔던 곳이 다산즈(大山子)에 있는 798예술의 거리이다. 이곳은 이미 우리 언론에도 보도된 적이 있고, 베이징올림픽 환경 미화 차원에서 철거가 예정됐으나, 이곳에 입주한 가난한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항의와 시위가 벌어져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1960년대 이후 냉전의 산물, 군수공장지대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겸 갤러리로 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이곳에 간 것이 2005년, 그때는 사진작가 시에하이롱(谢海龙)의 '희망공정..
후배가 지어준 약을 먹으며 한여름 중국발품취재를 했다. 모두 25가지 중국 약재를 써서, 직접 달여 주었는데 배낭에 넣고 다니며 꾸준히 마셨다. 정말 쓰러지지 않고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여름을 잘 견딘 듯하다. 내가 지은 이름 ‘한국의 화타’라 부르는 후배. 정말 약재 하나하나마다 그 효능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말로만 듣던 많은 약재들을 눈으로 직접 보니 재미있다. 이것들을 달여서 약재를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것들이 모두 합쳐지니 까만 약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이렇게 좋은, 편하게 약재를 만드니 사람의 생명을 구하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도 느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약재는 그 관리에서부터 유통까지 아주 엄격하게 통제하기에 약재의 질이 좋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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