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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1회 산둥 1 역사의 해신으로 우뚝 선 장보고 



중국 중원의 동쪽 산둥 성 끝자락은 우리나라 서해와 닿아있는 아주 가까운 곳. <서경>에는 우공구주도(禹貢九州圖)라는 춘추전국 시대 이전의 중국 지도가 있다. 태산을 기준으로 서남부를 연주(兖州)라 하고 동부를 청주(青州)라고 기록돼 있는데 이 두 곳을 합치면 지금의 산둥 땅이다.


주(周)나라 시대 강태공(姜子牙)의 봉읍을 제(齊)라 했고 무왕의 동생 주공(周公)의 봉토를 노(鲁)라 했는데 이 두 제후국의 영향을 받아 ‘제노문화’의 성지라 일컫는다.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며 북송 시대에는 <수호지> 양산박의 거점이었으며 명나라 때에는 항저우와 베이징을 잇는 운하의 조운지로서 번창했다. 청나라 말기에는 맹자의 68대 후손인 맹낙천(孟洛川)이 베이징에 비단가게인 루이푸샹(瑞蚨祥)을 세워 산둥 상인들이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 서구 열강의 개항지이던 칭다오를 중심으로 중국 경제성장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 룽청(成) 신화가 아닌 역사의 해신으로 우뚝 선 장보고


룽청시 스다오(石島) 진에 장보고의 흔적이 있다. 드라마 <해신>의 장보고는 당나라 무녕군에 참전해 공을 세우고 청해진을 설립했으며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무역을 발전시킨 역사적 인물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츠산(赤山)에 불교사원인 법화원을 세워 일본 승려를 배려하는 등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장보고기념관은 바로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 산자락에 조성돼 있다. 아침부터 아주머니들과 학생들이 동원된 가운데 요란하게 개관식이 열렸다. 이미 일반인에게 공개되긴 했지만 외국인 이름의 기념관이라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기에 뒤늦게 공식행사가 열린 것이다. 행사가 끝나자 축포소리 때문에 귀가 따갑다. 전쟁영화 속의 음향효과처럼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종이꽃가루가 폭설처럼 내린다. 하늘을 다 가릴 듯 휘날리는 꽃들이 수북하게 다 떨어지고 나서야 겨우 기념관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기념관 마당에 전통공연과 서커스가 벌어지고 있다. 사자 가면 춤을 추는 사람들 옆에 가오챠오(高蹺)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긴 막대 중간에 다리를 걸치고 말처럼 움직이는 가오챠오는 사람을 목마 태우기도 하고 북을 치며 걷거나 뛰어다니는 민속놀이이다. 중국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되면 높을 고 자에 발돋움할 교 자, 중국어로 가오챠오라고 기억하시면 된다.


아담한 마당 안에는 8미터 높이의 장보고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과일과 생선을 차렸으며 사람 키만큼이나 큰 향을 태워 연기를 피우며 예를 올리고 있다. 동상 위로 노랗고 붉고 파란 깃발들이 만국기마냥 휘날리고 있다. 바람 부는 대로 깃발은 이리저리 흔들리건만 장보고 동상의 시선만큼은 늠름하게 바다 너머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 장보고 시선이 머무는 산 정상에 엄청나게 큰 동상 하나가 역시 바다를 향해 있다. 높이만도 33미터가 넘는 이 청동 주조 동상을 밝을 명자를 써서 명신(明神)이라 부른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 지방사람들 전설 속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이다. 산꼭대기에까지 이 거대한 동상을 세우기 위해 꽤나 공을 들인 듯하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신화 속 해신인 명신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걸출하게 살았던 해신 장보고의 우렁찬 기상이 새삼 떠오른다. 신화보다는 역사의 얼굴을 더 마음에 담는 것이 진정한 칭송이 아닐까 싶다. 산둥 동쪽 끝자락 룽청에 있는 장보고야말로 신라인으로서, 중국에서 성공한 역사적 인물이다.


2) 웨이하이(威海) 청일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는 한나라 황족의 피난처


깔끔한 해안도시 웨이하이 시 앞바다에 류궁다오(劉公島) 섬이 있다. 배를 타고 약 20분을 가야 한다. 바다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이 시원해 보인다. 섬 북쪽은 절벽이어서 가파르고 남쪽은 완만하고 동서 4.8킬로미터, 남북 1.5킬로미터에 이르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작은 섬이다.


이 섬을 류궁다오라고 부르는 이유는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와 관련이 있다. 초패왕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나라를 통일하지만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에 의해 패망하게 되는데 이때까지를 서한 또는 전한이라 한다. 다시 황족인 광무제 유수에 의해 나라를 복원하니 이를 동한 또는 후한이라 한다. 동한 말기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게 돼 역사는 삼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동한이 망하자 황족이던 유공 일가가 도피해 온 곳이 바로 이 섬이다. 황족이었지만 지역민들과 조화를 이루고 살았고 존경 받았던 인물이었다고 전한다.


바다의 성인이란 뜻의 하이성뎬(海聖殿)은 유씨 일가의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다. 2천 년이나 지난 인물들의 조각상과 벽화이어서인지 신비롭고 신화적으로 구성돼 있다. 섬 곳곳은 전통가옥으로 잘 꾸며져 있으며 문과 창살마다 중국 문양과 현판글씨가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남아있다. 작은 정원 한가운데 커다란 용머리가 있다. 줄줄 떨어지는 물을 튕기면 피아노 음계 소리가 나는데, 몇 년 전 왔을 때에는 물에서 노래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었는데 이날은 물이 나오지 않아 아쉽게도 듣지 못했다.


이 섬은 청나라 말기 북양군벌의 해군기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북양군은 안후이 출신의 이홍장이 만든 군사조직으로 갑오년 청일전쟁 당시 가장 강력한 군대였다. 북양군은 이곳은 근거지로 동해와 만주에서 일본군과 싸웠지만 전쟁에 패한다. 그래서 청일전쟁에 대한 기억과 자취를 전시한 갑오전쟁기념관이 있다. 북양함대 표시가 있는 큰 닻도 있고 전쟁 당시 상황과 역사를 전시하며 영화도 상영한다.


갑갑한 실내 분위기가 싫어 밖으로 나왔더니 잔디 위에서 뒹굴며 노는 꼬마 아이가 아는 체를 한다. 여행 중에 개구쟁이 아이들과 함께 놀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중국 아이들의 맑고 투명한 발음을 들으면 저절로 귀속에 쏙쏙 들어와 중국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배를 타고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중국에도 이런 유서 깊은 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3) 칭다오() 청아한 해변을 걸었더니 토끼를 오려 주네


칭다오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숙소를 찾아갔다. 해변이 너무 아름다워 서둘러 해변으로 나섰다. 시원한 해변을 끼고 발달한 도시 칭다오는 해안도로에 자전거 통행이 금지돼 있어서인지 다른 도시처럼 번잡스러운 느낌이 없어서 참 좋다. 한적하기도 하고 바다 바람도 상쾌하니 산보하기에는 제격이다. 해수욕장 도로를 따라 걸으니 주변 풍광이 정말 마음에 든다. 해수욕장 하나를 지나 또 다른 해수욕장으로 가는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다. 아담하고 조경이 예쁜 집들이 모여있기도 하고 자그마한 카페가 있어 하루 종일 차를 마셔도 좋겠다 싶다.


해변을 걸어가다 보면 바다관(八大關)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지금은 부유층 별장 마을이자 고급호텔이 자리잡고 있지만, 원래 이곳은 20세기 초에 한 독일 건축가가 설계해 러시아, 영국, 프랑스, 미국, 스페인 등 서구열강의 사옥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바다관은 만리장성의 관문 8곳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한 블록마다 만리장성의 관문을 넘는 느낌이다. 샤오관(韶關), 자위관(嘉峪關), 한구관(涵谷關), 정양관(正陽關), 린화이관(臨淮關), 닝우관(寧武關), 쯔징관(紫荆關), 쥐융관(居庸關)을 넘듯이 걸어본다. 거리 이름을 왜 관문을 따서 지었을까? 아마도 만리장성을 넘듯 중국 본토로 들어온 서구열강의 흑심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다시 바다로 나오니 신랑 신부들이 예복을 곱게 차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비가 살짝 내리는데도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화사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볼수록 부럽다. 결혼사진 찍는 곳으로 해변도 참 색다른 멋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낚시도 하고 조개도 줍고 물장난도 친다. 심지어 아직 4월인데 수영까지 한다. 모래사장에서는 배구도 하고 연인들은 데이트도 즐긴다. 한여름 해수욕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긋함과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이 도시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해변 끝자락에 있는 루쉰공원에 이르렀다. 정문의 글자체는 문학가이자 민족주의자 루쉰이 쓴 글에서 채집한 것이라고 한다. 루쉰 조각상도 멋지지만 저서 <눌함(呐喊)>을 책 모양으로 만든 것도 인상적이다. 1912년 신해혁명과 1919년 5.4운동 시기의 사회상을 담은 소설집인데 ‘광인일기’와 ‘아Q정전’이 담긴 책이니 루쉰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해변을 다 벗어난 곳, 조그만 사당 옆에 공예품 상가가 있다. 민속박물관이라 써 있지만 상품 파는 곳이겠지 하며 들어섰다가 아주 마음씨 넉넉한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종이를 오려서 여러 형태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중국 민간예술 중 하나인 젠즈(剪纸) 공예가이다. 중국 공예품 가게 어느 곳에서나 늘 보이는 이 종이공예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것이 대부분이다. 뜻밖에도 민간예술인 호칭을 받는 리원링(李文玲)여사의 시연을 볼 수 있었다.


나이와 띠를 물어보더니 5분도 되지 않아 가볍게 삭삭 가위로 오리더니 귀여운 토끼 한 마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선물로 준다. 졘즈를 본 것만으로 고마운데 여행 중에 고이 간직하라는 덕담까지 들으니 정말 너무나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해변 끝까지 걸었던 덕에 친근하고 달콤한 민간공예와의 만날 수 있었나 보다.


4) 칭다오() 이름난 산에는 도교도 불교도 있다


칭다오에서 해안도로를 달려 동쪽으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라오산(嶗山)이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의 절경을 이리저리 바라보는 사이, 10 분도 안돼 산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옛말에 ‘태산 구름이 비록 높다 하나 동해 라오산만 못하다(泰山雖雲高, 不如東海嶗)’고 했다. 도교를 숭상한 인물들이 왜 이곳에서 수도를 했는지 짐작이 가는 신비한 산세다. 진시황과 한무제도 순행 중에 이곳의 모습을 경탄했다고 한다. 해발 1133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도교의 흔적이 많다. 가장 번성했을 때는 암자가 일흔두 개나 있었다고 한다.


동굴 암자인 밍샤둥(明霞洞)에는 목련과 백일홍 고목이 둘러싸고 있다. 커다란 암석 사이로 동굴 입구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도 닦기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늑하고 조용했다. 마당에는 먼산을 바라보며 향을 피울 수 있다. 하나에 10위엔이니 커다란 향 하나 다 탈 동안 연기를 따라 먼 산을 바라보며 고뇌를 다스려 본다 해도 좋을 듯하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내려오니 점심 시간이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점심 먹는 일이 난감한데 마침 젊은 연인 한 쌍이 보인다. ‘같이 앉아서 밥 먹어도 돼?’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고향이 산시(陕西) 성 시안이며 둘이 여행을 다니는데 아주 다정해 보였다. 여자친구는 성격이 발랄하고 귀여운데다가 한국드라마를 아주 좋아한다고 해서 금방 화제가 생겼다. 인터뷰 좀 하자고 했더니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여자친구가 정말 귀엽다. 남자친구는 다소 수줍어하는데 한국 배우 중에 권상우와 장나라를 좋아한다. 이 남자친구와는 몇 달 후 시안에서 다시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버스로 다시 해안을 따라 20분 더 동쪽에 있는 화옌쓰(華嚴寺)에 도착했다. 명나라 때에 세워진 불교사원인데 자료에 의하면 산둥반도의 재력가들의 헌납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화옌쓰는 라오산 고대건축의 최고봉이라 일컬어도 되는 화려한 사원건축의 백미이다. 사원 오르는 길은 평탄하고 바위마다 멋진 필체의 서예가 조각돼 있다. 단청처럼 맑고도 아름다운 색채를 담고 있다.


도교와 불교가 한군데 어우러진 명산을 볼 수 있는 즐거운 하루였다. 길거리에서 만났지만 전생에 인연이 있었지 싶은 친구들도 사귀게 됐다. 해안도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이 내내 좋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기자)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