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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3회 허난 1 줄줄이 이어진 중원 도시로의 시간여행

 


중국의 젖줄인 황허()의 남쪽에 위치하며 주()나라 이래 중원(中原)의 고도인 뤄양(洛陽), 정저우(鄭州), 카이펑(開封), 샹츄(商丘), 안양(安陽)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 허난이다.

 

<서경> 우공구주도(禹貢九州圖)의 예주(豫州)를 말하며 주나라 이래 북위(北魏), 북송(北宋)과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까지 수 많은 왕조의 도읍이 자리잡고 있다. 농경과 상업, 의학과 종교, 무술과 민속 등 모든 부분에서 중원문화(中原文化)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유교상인(儒商)인 자공(子貢)과 춘추전국시대 월왕 구천을 도운 범려(范蠡), 진나라 시대의 여불위(呂不韋) 등 이름 난 상인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지금은 중국에서도 낙후된 곳이다. 심지어는 짝퉁 생산지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다. 장편소설인 <양의 문>(羊的門)에서 진짜 담배에는 진짜 독이 있지만 가짜 담배에는 가짜 독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 듯 해 보이는 이 궤변을 보면 허난 사람들의 마인드를 느낄 수 있는 비유이기도 하다.

 

고도가 자리잡고 있어 가는 곳마다 수천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으며 소림사의 무공까지 중원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1) 위청虞城 전설인가 역사인가 뮬란의 사당을 찾아가다

 

허난 성 상츄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1시간 20분 정도 떨어진 위청(虞城) 현이란 곳에 들어섰다. 가난한 농촌 마을 촌구석에 사당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아담한 정원에 비석 몇 개가 있고 나무와 풀들이 잘 정돈돼 있다.

 

꼬마 아이들 셋이 쪼르륵 옆으로 다가오니 엄마들도 덩달아 따라온다.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니 참으로 순박하게 웃고 떠드는데 시골 아이들이라 그런지 해맑다. 학생들 몇 명이 사당 앞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불꽃이 남아있는 종이에 향을 태우려고 하는데 자꾸 재가 부서지며 연기와 함께 날아가 버린다.

 

효성스럽고도 용맹한 장군의 사당이라는 뜻의 효열장군사(孝烈將軍祠)라는 간판이 눈길을 끈다. 바로 이곳이 뮬란의 사당 무란츠(木蘭祠)인데 지방 현지(縣誌)에 따르면 뮬란의 성이 위()씨라고 한다. 전쟁 중에 모병이 있었는데 스스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화살을 어깨에 걸고 자루 메고 연로한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을 대신했다고 한다.

 

12년 동안이나 남장을 한 채 말을 타고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니 황제가 그 공을 치하하고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정중히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황제는 그녀의 공을 기려 시호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당나라 시대에 '효열장군(孝烈將軍)'을 추서했다고 한다.

 

위청 현에 있는 이 사당은 당나라 시대에 처음 세워졌다. 재미있는 것은 뮬란이 전설로 내려오는 것이라 정확하게 어느 시대 사람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성이 위씨라고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북위 시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당시의 모병이 바로 흉노족의 침입 때문이라는 점도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뮬란의 전설을 통해 우상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당을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뮬란 사당 여학생(왼쪽 위), 뮬란고향 비석(왼쪽 아래), 뮬란 조각상(오른쪽)

 

뮬란이 실제 인물인지 애매하자 중국에서 자기 고향 출신이라고 우기는 곳이 몇 군데 되는데 심지어 북방계로 보이는 뮬란을 창장(長江) 남쪽 자기 고을이 그녀의 고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산시(陝西) 옌안(延安)에도 뮬란의 능원이 조성돼 있다.

 

디즈니 만화영화 역시 이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양의 시각에서 본다면 유럽 역사에서 가장 잊고 싶은 기억인 훈족, 즉 흉노족을 악마로 묘사한 것이야말로 디즈니 자본의 침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계사에서 배운 '훈족의 대이동'과 뮬란은 역사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이다. 무란츠 곳곳을 둘러 보는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뮬란에 담긴 효와 용맹은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

 

사당 안에는 뮬란과 가족의 동상이 나란히 서있다. 벽에는 전설을 그려 놓긴 했지만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인지 아직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으려면 어설픈 면을 많이 고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따스한 햇살만큼 포근한 정원이 멀리까지 온 보람을 느끼게 한다. 시골로 갈수록 더 순박해진다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2) 상츄商丘 중국 상업의 발원지에서 냄새 지독히 나는 두부를 먹다

 

허난(河南) 성 상츄(商丘)를 왜 상업의 발원이라 할까. 상 나라에 이르러 상업이 생겼다니 벌써 2,600여 년 전 일입니다. 상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주왕(紂王)이 애첩 달기(妲己)와의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나라를 잃었다는 정도이다.

 

오후 늦게 시내 남쪽에 있는 상츄고성에 들어서니 온통 시끄럽다. 중국의 고성을 가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생활공간이 곧 관광지이다 보니 서민들의 활기찬 모습을 직접 접하기에 아주 좋다는 것이다.

 

고성의 골목골목을 훑기 시작했다. 갖가지 길거리 먹거리에 손과 입이 따라다녔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게에도 눈길과 발길이 이어졌다. 한 아주머니가 양념 국물 속 고기를 건져서 찐빵 속에 넣어 만든 바이지모(白激)를 파는데 중원의 햄버거라 할만하다. 쌀 국수로 보이는 미피(米皮)를 파는 가게 앞에는 흰 가운을 입은 총각이 반갑게 눈인사를 한다.

 

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훈툰(餛飩) 가게가 있다. 길가에 앉아 한 그릇 후루룩 비웠다. 만두 국과 맛이 비슷해서 먹는데 부담이 없다. 훈툰은 원래 북방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나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음식으로 완전 밀봉된 만두 형태라 구멍이 전혀 없다는 의미로 훈둔(混沌)이라 불렀다가 발음이 비슷한 훈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상츄고성의 처우더우푸(왼쪽), 고성 모습(오른쪽 위), 고성에서 본 마을(오른쪽 아래)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듯 코를 마비시키는 냄새가 나서 찾아가 보니 일명 똥두부라 부르는 처우더우푸(臭豆腐)이다. 지독한 발 냄새보다도 더 지독하다고 해야 할지, 썩힌 홍어 같다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냄새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머리까지 아플 지경이다.

 

외국인들이 먹기에 힘들다고 하지만 용기를 내 도전해 볼 생각이다. 마침 골목길을 헤집고 다녔더니 허기도 찾아왔으니 말이다. “한 접시 얼마에요? (一碗多少錢?)” 하고 물으니 “량콰이(兩塊), 한 접시 4개”라고 한다.

 

소스 뿌려? 하고 물어보길래 ‘부야오(不要)’라고 했다. 괜찮다, 필요 없다고 하고 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코 막고 눈 감고 하나 먹고, 두 번째 먹을 때는 한번 눈으로 살펴보고, 세 번째 먹을 때는 맛을 음미했고, 마지막 녀석을 먹고 나니 포만감까지 느껴졌다. 사람을 사귈 때 동고동락처럼 좋은 방법이 없는데 눈 코 입, 온몸으로 익숙해지면 점점 중국과 친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들도 중국에 가시면 한번 도전해보면 좋겠다.

 

샹츄는 삼상의 발원(三商之源)이라고 한다. 즉 상족(商族), 상나라(商朝), 상업(商業)을 삼상이라 한다. 상나라 시대 상족의 우두머리이던 왕해(王亥)는 과잉 생산된 물품을 이웃나라와 교역했던 최초의 사람이라 전한다. 그래서인지 이 고성 상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그냥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고성 성벽 위에 오르니 마을에 점점 어둠이 몰려오고 날이 저물어간다. 시골 장터에서 놀다 보니 해 지는지도 몰랐다. 포근한 정서로 잘 진열된 정감 어린 상업의 현장에 푹 빠진 하루였다.

 

3)   카이펑開封 비싼 입장료 아깝지 않은 중원문화의 종합선물세트

 

카이펑에 있는 칭밍상허위엔(明上河園)은 종합오락시설이자 전통문화를 담은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80위엔이나 하는 비싼 티켓을 사려고 길게 늘어선 것을 보고 의아했는데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칭위엔(줄여서 이렇게 부른다)에 들어서자마자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느껴졌다.

 

칭위엔의 이름은 북송시대 장택단(張擇端)이라는 화가가 수도인 카이펑을 배경으로 그린 청명상하도(明上河圖)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공연 스케줄과 상세 지도를 보니 그 규모와 내용에 감탄하게 된다. 이 많은 공연을 다 보려면 하루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민속거리도 여러 군데 조성돼 있는데 각종 토속적인 먹거리가 입맛을 당긴다. 전국의 민간공예를 다 모은 듯한 볼거리 역시 눈길을 사로 잡기에 충분하다.

 

종이부채와 가면, 인형, 유리공예품들이 인상적이라 좀 만져보려니, ‘하나 사라고 성화가 대단하다. 입으로 불어 동물을 만들어내는 추이탕(吹糖)과 판 위에 흘리면서 그림 그리듯 동물을 만들어내는 탕화(糖畫) 모두 설탕을 소재로 한 민간기예라 달콤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호응이 좋은 편인데 10위엔을 내면 즉석에서 만들어주니 맛도 보고 솜씨도 직접 볼 수 있다.

 

조금 더 가니 길 옆에 추이빙()을 팔고 있는데 빙은 과자라는 말이다. 아마도 불어서 만두만한 크기로 만든 빵을 말하나 보다. 그런데 큰 소리로 "추이~"을 외치며 호객하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라 생각됐다.

 

그런데 이 추이빙은 우다랑(武大)이 처음 만든 것이라 한다. 우다랑은 바로 수호지의 주인공인 우얼랑(武二) 무송(武松)의 친 형인 무식(武植)을 말하며 <금병매>의 주인공 반금련(潘金蓮)의 남편이다. 수호지에도 등장하는 반금련은 섹시심벌이면서 부도덕한 아내를 상징하니 그다지 좋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우다랑과 반금련으로 변장해 추이빙을 팔고 있는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종이우산을 쓰고 입 가리개를 한 채 서 있는 반금련에게 시선이 갔지만 그녀는 말이 없다. 아니 말할 자격이 없는 지도 모르겠다.

 

서커스는 기본이고 마술, 불 쇼도 펼쳐지고 있다. 마차도 등장하고 낙타와 손오공도 아이들을 즐겁게 한다. 손오공과 삼장법사가 이끌고 가는 염소도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다.

 

청명상하원 추이빙(왼쪽 위), 마츄(왼쪽 아래), 청명상하원 모습(오른쪽)

 

대나무 뗏목을 타고 호수를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시원하다. 호수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서 지도 책을 보니 겨우 반 왔다. 정말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운동장이 보이고 관중석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이다. 바로 경마장이다.

 

북송시대 여자들이 즐기던 마츄(馬球)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먼저 기마 묘기를 선보이는데 경쾌한 진군나팔 소리에 맞춰 말 위에서 올랐다 내렸다 하고 말 위에서 깃발을 들고 질주하는 멋진 대행진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 박수소리가 이어지고 곧이어 말을 타고 골을 넣는 마츄 시합이 벌어진다. 북송 시대에 격국(擊鞠)이라 불리던 경기로 티베트인 토번(吐蕃)에서 전해져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 유행하던 것이라 한다.

 

사방형 가옥인 쓰팡위엔(四方院) 안마당에서는 간단한 시험이 치러지고 황제가 내린 상을 주기까지 코믹하고 풍자가 넘치는 공연이 벌어지는데 사람들이 모두 배꼽 잡고 웃고 있다.

 

칭위엔을 다 둘러보는데 4시간이나 걸렸다. 그나마 동선을 따라 보이는 공연만 보는데도 꽤 오랫동안 시간이 지났다. 한번 더 돌아볼까 고민하며 아쉬움에 출구를 나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4)   카이펑開封 야시장의 길거리 가수 5위엔에 노래 한 곡

 

숙소로 돌아오면서 보니 시내 한복판에 야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이펑 시내 한복판에 밤이면 야시장이 형성돼 만두와 같은 간단한 요기를 판다. 하지만 야시장 최고의 먹거리는 양고기꼬치이다. 카이펑의 옛 지명이기도 한 볜징(汴京)의 이름을 딴 맥주와 함께 먹으니 금상첨화라 할만 하다.

 

어디선가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아마추어 여가수에게 노래 두 곡을 신청했다. 대만출신의 인기가수 런셴치(任賢齊)의 신타이루안(心太軟)과 대륙 출신의 인기가수 팡롱(龐龍)의 량즈후디에(兩只蝴蝶, 나비 두 마리)를 주문했다. 한 곡에 5위엔인데 나름대로 서정적인 목소리가 야시장의 운치와도 잘 맞았다. 처음 중국어 배울 때 이 신타이루안 노래 가사가 쉽고 단조롭고 친근한 느낌이 들어 많이 불러 봐서였기에 조용히 따라 불러본다.

 

양고기꼬치(위쪽), 마라룽샤 파는 가게(아래 왼쪽), 앙꼬치 굽는 회족아가씨(아래 오른쪽)

 

아이들도 신이 났다. 수줍은 듯 보다가 도망친다. 주위의 다른 손님들도 덩달아 노래를 듣게 되니 모두 기쁜 일이다. 작은 손으로 다소곳하게 기타 줄을 튕기며 맑은 목청의 노래 가락이 한낮의 피로를 씻어준다. 기타에는 자신이 동경하는 듯한 한 여가수의 스티커 사진이 붙어 있는 게 눈에 띈다.

 

9년 전인가 베이징에 처음 간 날 새벽 12시가 넘어 민물가재인 마라롱샤(麻辣龍蝦)에 맥주를 마시며 허름한 한 식당에서도 이렇게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도 여대생이라던 아가씨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오른다.

 

외로운 여행길을 이렇듯 길거리에서 현지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속으로 흠뻑 빠지게 된다면 베개 속으로 푹신하게 빠져 쉽게 잠을 이룰 수 있을 듯하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