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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山东省)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잡은 해안도시 룽청(荣成)은 우리나라 인천항과 평택항에서 배가 오고 가는 곳이다. 웨이하이(威海)와는 40분 거리이고 옌타이(烟台)와는 1시간30분, 칭다오(青岛)와는 약3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룽청에는 진시황이 다녀갔다는 청산터우(成山头)라고 하는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온갖 동물들을 다 볼 수 있는 거대한 션디아오산(神雕山) 야생동물원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의미있는 관광지는 바로 청해진 대사 짱빠오가오(张保皋, 장보고) 기념관이 있는 츠산(赤山) 풍경구라 할 수 있다.

룽청에 자주 갔었지만 한번도 찾지 못한 것은 그동안 공사중이었기 때문. 이번 연초 출장에서 소원을 풀었다고나 할까.

산동반도 최동단에 위치한 츠산 풍경구는 약12.8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이곳은 한국,중국,일본 3국 문화교류의 현장이기도 하다. 중국 민간 신(神)인 츠산밍션(赤山明神)이 있고 일본 천태종의 고승인 위엔런(圆仁)이 순례 중 머문 곳이기도 하며, 한국의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는 곳이니 3국의 역사와 문화가 한 곳에 어우러져 있는 셈이다.

이 지역 기업체(斥山水产集团)이 3.2억위엔을 투자해 조성한 풍경구 입구이다. 아담한 산자락에 햇살도 많은 이곳 츠산 풍경구는 한겨울 날씨임에도 밝고 따뜻하다.

풍경구 입구 광장에 서있는 이동차량이 조용하게 서 있다. 연한 하늘색과 빛바랜 벽돌색이 잘 어울린다. 우리를 안내한 룽청방송국 아나운서가 관리사무실에 잠시 간 사이 이곳저곳 훑고 있는 중이다.  

관리사무실 건물 너머로 햇빛을 받은 험준한 산자락이 보인다. 광장 중심에 우뚝 선 나무 줄기도 겨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따스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서기 824년에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곳은 이 지역 최대 최초의 불교사원으로 유명하다. 장보고는 당시 신라 및 일본의 고승들에게도 많은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승려 위엔런(圆仁)은 구법순례(求法巡礼)를 위해 당나라에 온 이후 이곳 츠산(赤山)에 머물렀으며 법화원 뒤 위엔런 입당구법관(圆仁入唐求法馆)에 머물렀다 한다. 그는 일본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하는데 그가 지은 저서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礼行记)는 동방3대여행기 중 하나(东方三大旅行记之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법화원 내 지장전이다. 여느 불교사원처럼 마당에 촛대가 있고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법화원 한편에는 칭하이쩐(青海镇) 대사 장보고 공적비가 자리잡고 있다. 그 옆에는 공적비 건립추진위원회 회원 명단과 기념비 성금 회원 명단이 있는데, 모두 장(张)씨 성이어서 특이하다.

법화원 서편 츠산찬위엔(赤山禅院) 뒷쪽에는 거대한 관음 불상이 놓여 있다. 불상 주위에는 음악 분수가 있어 한 여름에는 물이 솟구치는 쇼를 벌인다고 한다. 엄청나게 큰 규모도 놀랍지만 조각도 매우 섬세했다. 2800만위엔을 투자해 꾸몄다 하니 이 지역 최대이며 유일한 불교사원에 걸맞아 보인다.

불상 뒤편 벽에는 천수관음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아주 세심하게 기교를 부렸고 은은하게 묻어나는 단아한 모습이 중국의 여느 다른 곳에 자주 보기 힘든 인상을 남긴다.

츠산 풍경구에는 불교 천태종 사원과 당나라 시대의 역사, 그리고 장보고의 그림자가 길게 묻어나고 있다.  

저멀리 산 언덕에 츠산밍션(赤山明神)이 보인다. 중국이 세계 최대 단조 동상이라고 자랑할 정도로 높고 크다. 아담한 산 정상에 바다를 향해 웅장하게 서 있는 해신(海神) 조각상. 츠산 풍경구 어디서라도 그 자태가 보이는 츠상밍션에도 역사의 인물 장보고와 관련이 있다.

츠산밍션에는 3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진시황이 6국을 병합한 기원전 219년 천하를 순행하다가 동진해 이 지역에 이른다. 장생불로(长生不老) 약을 찾아 청산터우(成山头)에 이르는데 마침 병을 얻게 된다. 이에 승상 이사(李斯)는 말을 타고 이 츠산밍션을 참배한 후 처방을 구해 황제의 목슴을 살렸다고 전한다.

당나라 때 장보고는 공을 세워 성공한 후 이곳 츠산에 이르러 밍션의 비호 아래 한 중 일 삼국 해상무역을 장악해 '해상 무역왕'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아마도 지역 토속신인 츠산밍션에게 예를 올리며 민심을 등에 업고 자신의 해상 무역을 성공으로 이끌었을 것이니 이렇게 전해오는 것일 게다.

서기 847년, 당나라에 구법을 위해 왔던 일본 승려 위엔런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풍랑을 만났는데 돌연 츠산밍션이 나타나 설법을 하니 풍랑이 가라앉았다 한다. 위엔런이 귀국 후 입적하자 유언에 따라 제자들이 츠산찬위엔(赤山禅院)을 수건(修建)하고 츠산밍션에게 예를 갖추고 봉공했다고 전한다.


조각상의 높이는 33.8미터에 이른다. 조각상 바로 밑에서 거의 수직으로 올려다보며 찍었는데 막상 사진으로 보니 그렇게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제작비가 4500만위엔이 투자돼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 관광자료를 보니, <후한서>를 빌어 츠산밍션은 중국민간의 보호신일 뿐아니라 일본, 한국, 심지어 페르시아(波斯), 아라비아(阿拉伯) 등지의 수호신으로 소개한다.<他不仅是中国民间的保护神,也是日本、韩国,甚至波斯、大食(阿拉伯)等诸多国家民间的保护神> 우리나라에서 밍션을 섬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들의 자료를 믿기 힘들다. 옛 고서가 실제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알아볼 일이다.

츠산밍션 바로 밑에서 아래를 내려보면 가파른 수백개의 계단이 보인다. 양 사방이 다 확 뚫려 있어 시원하기 그지 없다.

츠산밍션 아래 네 구석에는 수호 장군들 조각상들이 있다. 삼국지의 짜오윈(赵云)과 꽌위(关于)가 떡 버티고 서 있다. 청룡언월도를 든 꽌위 뒤로 마을이 보이고 멀리 바다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인다.

츠산밍션에서 내려다본 장보고 전기관(传记馆)이다. 츠산 풍경구 곳곳에 장보고의 흔적이 깃들어 있지만 이곳이야말로 장보고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한눈에 보이는 기념관 모습이 참 아름답다. 회색과 붉은 단청색이 서로 어울리고 주위 초목과도 조화롭게 자리잡은 장보고 기념관으로 가볼 참이다.

'장보고 대사의 도전정신을 기리고 배우고자' 세운 한국청소년 연맹의 해상기행 방문기념비가 입구에 있다. 아마도 드라마의 영향이 '해신을 꿈꾸며'라고 했나 보다. 따지고보면 츠산밍션이 바로 바다의 신이 아닌가.

이 지방의 상징적인 신의 존재인 츠산밍션은 신화 속에 살아있고 바로 살아있는 신이야말로 바로 장보고가 아닌가 싶다. 우여곡절 끝에 당나라에 와서 성공하고 3국의 해상무역을 주도한 장보고를 '신'이라 부르는 것은 그의 영웅적 삶과 정신적 가치를 높히고자 하는 게 아닐까.

장보고 전기관, 그의 일생을 기념하는 곳이다. 그 입구 길은 아주 소박하다. 화려하지 않고 푸른 나무에 그저 둘러쌓인 건물이어서 마치 어느 한적한 시골 집을 다니러 간 느낌이 든다.

장보고 전기관 담벼락 역시 소담하다. 츠산밍션을 가릴 듯 말 듯 얼핏 햇살을 머금고 빛나는 나뭇가지들도 정겹다.

입구 맞은 편이다. 신화 속의 밍션(明神)은 복을 주고 사해(四海)를 보우하며 역사 속의 따스(大使) 장보고는 삼방(三邦)의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삼방이란 3국 한 중 일을 말함일 것이다.


장보고 전기관의 휘호가 참 부드러워 보인다. 화려하지 않고 아담하게 꾸민 소박한 집의 모습이라는 느낌이 든다.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인공호수가 있고 물고기 먹이를 1위엔에 팔고 있다.

드디어 아담한 집 마당에 들어서니 8미터 높이의 장보고 동상이 우뚝 서서(矗立) 반갑게 맞이 하고 있다. 햇살을 등지니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영웅의 풍모와 당당한 기품이 확연히 전해진다.

의젓하고 당차게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모습이다.

장보고전기관(张保皋传记馆)에는 장보고에 관한 일대기를 소개하고 있는 곳이다. 그가 당나라로 온 배경이나 무녕군(武宁军)에 참전한 사실, 츠산 법화원을 건립했으며 칭하이쩐(清海镇)을 설립했고 해적을 소탕(扫平海盗)하고 노비 매매를 금지했으며 해상무역을 발전했다는 내용들이 설명돼 있다.

대체로 평이한 내용들이나 특이한 점은 '이사도의 난'을 평정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사도'는 산동반도에서 고구려 유민의 나라를 세운 이정기 가문의 후예다.

당나라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런 반역의 집단이겠지만 북방에서 내려온 고구려 민족에게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장하고 산동지역에 오랫동안 자신의 터전을 마련하고 지켜온 역사이기도 하다.

신라인 장보고가 당시에 중국 무녕군에 참가해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것이 아이러니일지는 모르나 당시 장보고에게 오늘날의 민족의식이나 국가관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에서 기증한 장보고 인물화라고 한다.

장보고 동상 앞에 서니 그 큰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장보고의 정신과 출중한 능력과 지혜로부터 우리나라 역사의 한 장을 담당하고 있는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장보고 전기관에서 바라본 츠산밍션이다. 넘치는 햇살에 동상의 모습이 마치 신화처럼 흐릿하다.

살아있지 않은 신화와 살았던 인물이 서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현실과 신화 속을 오가고 있다는 감상은 나만의 것인가. 밍션보다는 낮은 곳에 가깝게 뒷모습을 보여주는 장보고 동상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신을 봤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관광상품이겠지만 중국 땅에서 우리의 문화를 보면 문득 그리워진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가 말이다.  

장보고를 만나고 돌아나오는 길이다. 앞 쪽 두사람은 우리 일행이고 뒤에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람은 중국인이다. 장보고에 대한 기억이나 느낌은 서로 다를 것이다. 생각해보고 알아보고자 하는 열정으로부터 기쁨을 느끼는 만큼 장보고는 각자에게 살아있을 것이다.

참 찾고 싶었던 곳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올 한해 기분 좋은 일이 많을 듯하다.

산동성 웨이하이(威海) 지역 룽청(荣成)에 전설로, 역사로, 인물로, 평화로 살아있는 장보고를 만나볼 것을 추천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금빛모래사장을 가진 웨이하이 국제만 해수욕장과 CCTV 어린이셋트장, 도교적 분위기의 섬 유공도, 야생동물원, 진시황의 청산터우(成山头)까지 3~4일 코스의 한여름 휴가코스로 나쁘지 않다.

웨이하이를 가게 되면 장보고를 잊지 말고 꼭 찾아보시길 바란다.

글|사진^여우위에 newonoff@한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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