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망령인가? 6주 만에 30만 명이 학살된 난징의 운명[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장쑤 ① 난징 대학살기념관, 부자묘, 중산릉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난징을 침공해 점령했다. 눈과 귀, 입으로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난징대학살, 중국은 난징다투사(南京大屠殺), 일본은 난징즈껜(なんきんじけん)이라 한다. 대학살을 ‘대도살’과 ‘사건’으로 서로 달리 부르는 만큼의 거리, 즈껜은 ‘사건’의 일본말이다. 같은 시대 세 나라는 서로 달랐다. 그저 ‘사건’은 이듬해 1월까지 6주 동안 무려 30만 명을 ‘도살’했다. 난징은 당시 중국의 수도였다. {계속}
금면왕조 공연, 중원 문명에 대한 자랑은 그저 애교로 봐 줄만[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베이징 문화여행 ⑥ 국자감과 환락곡 원명청 왕조의 수도였던 베이징, 최고학부 국자감을 찾아간다. 내성의 안정문(安定门) 부근에 있다. 공자 사당인 공묘(孔庙)와 붙어 있다. 입장권을 사면 두 곳을 함께 본다. 한나라 무제가 대일통(大一统)을 선포하며 공자 사상에 기반한 왕도정치를 추구하며 유교를 국시로 삼았다. 송나라 이후에는 국교나 다름없었다. 베이징에 수도를 마련한 원나라도 1306년 국자감을 세우고 인재 발굴의 요람으로 삼았다. {계속}
임칙서는 왜 비림 편액에서 삐침을 생략했을까?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산시 ② 시안 비림 시안 시내에서 ‘가볼 만한 곳’ 추천하라고 하면 단연 비림(碑林)이다. 역사와 문화를 좋아하는 여행이라면 말이다. 한나라 시대부터 근대까지 4천 개에 이르는 비문, 천 개가 넘는 비석을 일곱 군데로 나눠 전시실을 운영한다. 북위부터 송대에 이르는 석각 150건은 별도 예술관에서 전시한다. 비림 역사는 천년에 이른다. 당나라 때 세운 공묘가 성곽 남쪽에 있었다. 북송 철종 1087년에 공묘를 옮긴 자리가 현재 비림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계속}
신선거 설두산을 모두 보고 영파로 이동해 하루 숙박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영파의 옛날 모습 그대로의 마을 자성고진慈城古镇에서 오전을 보냅니다. 자성고진은 인구 9만명 정도의 마을로 옛 현아县衙와 공자 사당인 공묘孔庙가 볼만 합니다. 청렴한 관리의 표상인 공생명公生明 비석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원래 에 기재돼 있는 말로 관리의 명철하고 업무처리를 권장하는 문구였습니다. 뒷 면에 새겨져 있는 염생위廉生威와 합쳐 "공정함에서 명백해지고 청렴함에서 권위가 생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대에 관부마다 이를 새겨 관리의 철칙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관리가 부패하면 감옥에 보내고 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전시실도 있었습니다. 진승과 오광의 민란부터 태평천국의 민란에 이르는 역사를 잘 보여주고..
서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땅, 산동(山东). 그 옛날 제(齐)나라와 노(鲁)나라의 영토였다. 중원에서는 동이(东夷)라고도 불렀다. 역사문화 마을이 꽤 풍부한데, 그다지 많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화교 중 상당수가 산동 출신이고 우리 ‘중국집’의 메뉴는 대체로 그들에 의해 걸렸다고 봐야 한다. 배를 타면 산동 연안에 하룻밤에 도착하고 비행기는 칭다오(青岛)까지 채 1시간이면 닿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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