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자를 만난 공자가 산비둘기를 데리고 간 까닭은?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제노 문화 ③ 취푸 공자가 노자를 여러 번 방문했다. 예(禮)에 대해 물었고 무위(無爲)라 답했다. “사기”, “좌전”, “공자가어” 등이 기록하고 있다. 노자 고향으로 추정되는 루이(鹿邑)에 가면 도관인 명도궁(明道宮)에 문예정(問禮亭)이 있다. 당시 최고의 석학인 노자를 찾아 문답하는 장면이 조각돼 있다. 오른손 검지를 곧추세우고 설명하는 노자다. 셋만 모이면 반드시 배울만한 스승이 있다고 공자가 말했다. 전국을 주유하던 공자가 노자를 만난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계속}

‘천년 고도’와 ‘금수강산’이라 자랑하는 저장 서부 넨바두고진 저장성 서쪽에 장산(江山) 시가 있다. 상하이에서 고속철로 2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기차역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진 거리에 독특한 이름의 옛 마을이 있다.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지나니 만추의 들판과 봉긋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2010년 8월 유네스코는 6곳의 ‘중국 단하(丹霞)’ 지형을 묶어 세계자연유산으로 올렸다. 그중 하나인 강랑산(江郎山)이다. 지금은 도로가 잘 뚫렸지만, 옛날에는 험준한 선하령(仙霞岭)이 가로막고 있었다. (계속)
진시황의 망령인가? 6주 만에 30만 명이 학살된 난징의 운명[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장쑤 ① 난징 대학살기념관, 부자묘, 중산릉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난징을 침공해 점령했다. 눈과 귀, 입으로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난징대학살, 중국은 난징다투사(南京大屠殺), 일본은 난징즈껜(なんきんじけん)이라 한다. 대학살을 ‘대도살’과 ‘사건’으로 서로 달리 부르는 만큼의 거리, 즈껜은 ‘사건’의 일본말이다. 같은 시대 세 나라는 서로 달랐다. 그저 ‘사건’은 이듬해 1월까지 6주 동안 무려 30만 명을 ‘도살’했다. 난징은 당시 중국의 수도였다. {계속}
금면왕조 공연, 중원 문명에 대한 자랑은 그저 애교로 봐 줄만[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베이징 문화여행 ⑥ 국자감과 환락곡 원명청 왕조의 수도였던 베이징, 최고학부 국자감을 찾아간다. 내성의 안정문(安定门) 부근에 있다. 공자 사당인 공묘(孔庙)와 붙어 있다. 입장권을 사면 두 곳을 함께 본다. 한나라 무제가 대일통(大一统)을 선포하며 공자 사상에 기반한 왕도정치를 추구하며 유교를 국시로 삼았다. 송나라 이후에는 국교나 다름없었다. 베이징에 수도를 마련한 원나라도 1306년 국자감을 세우고 인재 발굴의 요람으로 삼았다. {계속}
칠채다채 여행 2.14 - 3 건수 문묘 원나라 이후 운남 남부의 중심이던 건수고성에서 즐깁니다. 모든 고성이 그렇지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합니다. 문묘는 공자사당입니다. 건수에 있는 문묘는 곡부의 공묘와 비견되는 멋진 자태를 지녔습니다. 수사연원洙泗渊源 패방, 석조와 목조의 조화는 환상입니다. 공자의 사상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공자가 강의한 행단을 지나 본전인 선사전에 이릅니다. 황제 어제 편액도 화려하고지만 문의 목조예술은 가히 명불허전입니다. 원숭이의 해학조차 '대성' 앞에서 예술입니다. 햇살이 너무 강렬한 오후입니다. 향 연기까지 더워보입니다. 더워서 반팔, 반바지로 다니는 중입니다.
원나라 이후 윈난 남부의 정치, 군사, 경제, 문화의 중심인 건수建水고성에는 과거시험장이던 학정고붕学政考棚과 공자사당인 문묘文庙가 있습니다. 학정고붕에는 용문龙门과 지공당致公堂, 계신당戒慎堂 등 건물이 있는데 과거제도에 대한 다양한 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원시 향시 회시 전시로 이루어지는 과거제도를 통해 생원, 거인, 공사, 진사가 생겨나며 황제 앞에서 치르는 전시를 통해 장원状元, 방안榜眼, 탐화探花 급제를 합니다. 건수고성 문묘를 들어서면 멋진 패방이 나타납니다. 그 중에서도 수사연원洙泗渊源 패방이 정말 화려합니다. 삼중 처마와 두공이 조화를 이루고 용, 기린, 사자, 코끼리 등 석상과 무릎을 꿇고 있는 석인이 인상적입니다. 수많은 편액이 화려함을 더하고 있으며 영성문棂星门과 행단杏坛을 지나 본전에..
여행이란 일상의 구속, 매일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는 기쁨 여행(旅行)이란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일이다. 어디를 가고 어떻게 가며 또한 무엇을 하고 돌아와야 하는지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여행 계획을 짜는 시간이 가장 흥겹고 돌아와서 사진 보며 추억 바라는 때 역시 우쭐하다. 여행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가끔 중국사람은 왜 ‘여유(旅游)’라고 할까 궁금하다. 여행을 주관하는 기관은 여유국이다. ‘유’자에 어떤 묘미가 있어 보인다. 문득 ‘소요유(逍遙遊)’가 떠오른다. 절대 자유를 추구한 『장자(庄子)』의 ‘곤붕(鲲鹏)’처럼 물고기와 새가 되어 유유히 헤엄치고 훨훨 날아오르는 일, 그런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여행에도 철학이 있다면 ‘소요’야 말로 제 격이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
서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땅, 산동(山东). 그 옛날 제(齐)나라와 노(鲁)나라의 영토였다. 중원에서는 동이(东夷)라고도 불렀다. 역사문화 마을이 꽤 풍부한데, 그다지 많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화교 중 상당수가 산동 출신이고 우리 ‘중국집’의 메뉴는 대체로 그들에 의해 걸렸다고 봐야 한다. 배를 타면 산동 연안에 하룻밤에 도착하고 비행기는 칭다오(青岛)까지 채 1시간이면 닿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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