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3] 진승과 오광의 대규모 기층 민란 ② ▲ 진승 민란군은 수도로 진격했으나 려산의 죄수까지 동원한 진의 마지막 장수 장한 부대와 싸워 패퇴했다. 려산은 한나라를 건국한 후 수도로 정한 장안(지금의 서안)에 있는 진시황 능원과 병마용 뒷산이다. 병마용은 지금 '진시황과 무관하다'는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 최종명 왕을 자처하고 망우초 죽을 먹다 진승과 오광이 봉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가담항설(街談巷說)'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거리나 마을마다 번져 말(言)은 말(馬)보다 빨랐다. 진나라에게 핍박 받던 식민지 땅 중원에 회오리 바람이 불었고 초나라를 중심으로 민족주의의 불길로 번지기 시작했다. 전국시대 6국의 열혈 귀족은 농민군을 규합해 떨쳐 일어났으며 진승의 봉기군과 연..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2] 진승과 오광의 대규모 기층 민란 ① 하염없이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기원전 209년 7월, 대규모 범람으로 회수(淮水)는 온통 습지로 변했다. 900여 명의 농민들은 폭우 속에서 계속 더 진군하는 것은 무리였다. 안휘 성 북부 태택향(大澤鄉)에 이르러 푹푹 빠지는 속도로는 북경 밀운(密雲) 근처 어양(漁陽)까지 명령대로 도착하긴 불가능했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했고 호송 무관들의 호령은 이미 저승사자 고함조차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 없다. 더 이상 걸음조차 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몸 하나 가눌 움막 찾아 쉬어가기로 했다. 농민들의 대장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머슴이자 소작농으로 겨우 풀칠이나 하며 연명해 왔지만 현실을 보는 눈만큼은 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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