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백과 두보, 11살 차이를 극복한 당나라 판 브로맨스인가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허난 ③ 궁이 두보 고향, 강백만장원 뤄양 동쪽에 궁이(鞏義)가 있다. 오악 중 하나인 쑹산(嵩山)과 황하로 둘러싸여 있어 함락되지 않는다는 공고불발(鞏固不拔)이라 불렸다. 풀 뽑는다는 발(拔)은 거점을 탈취하다는 뜻도 있다. 기원전부터 중원의 요충지였다. 기차역에서 10km 떨어진 난야오완촌(南瑤灣村)을 찾아간다.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아 택시를 타니 20분이 걸린다. 촌민이 겨우 1,700명인 마을이다. 시성(詩聖)으로 대우받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고향으로 알려진다. 2007년에 약 290억원을 투자해 관광지를 조성했다. 녹지를 포함해 25만m2 규모다. {계속}
중원의 옛 도시 뤄양(洛阳)과 허난성 수도 정저우(郑州) 사이에 있는 궁이(巩义). 북쪽으로 황하(黄河)가 흐르고 남쪽에는 소림사가 있다. 당나라 시인, 시성(诗圣) 두보(杜甫)의 고향이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20분이면 난야오완촌(南瑶湾村)에 도착한다. 712년생인 두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이다. 입장료는 65위엔(약 11,000원), 명성만큼 비싼 편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두보와 배시성문(拜诗圣文)이 적힌 석서(石书)와 만난다. (계속)
천안문 서편 중산공원은 문입구가 3개라 했다. 볼거리가 의외로 많아서 여러번 나누어 글을 쓰고 있다. 저멀리 뒤에 보이는 입구는 남문이다. 남문을 들어서면 바로 '빠오웨이허핑팡'(保卫和平坊)와 마주친다. '팡'(坊)은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문 모양의 '파이'(牌)를 말한다. 그럼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바로 청나라 말기 민중들의 자발적 봉기인 의화단(义和团) 진압을 위해 북경까지 들어온 서구열강 중 하나인 독일의 주중공사인 '케틀러'(Klemens von Ketteler)때문에 세워진 것이다. 1900년 '케틀러'는 의화단에 의해 암살 당했고 1901년 굴욕적인 신축조약, 일명 베이징의정서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커린더파이'(克林德牌)였다. 원래 다른 곳에 있었는데, 독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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