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02) 11월 12일, 100만 명에 이르는 주권자 인파가 직접 청와대를 향해 시선을 직시했다. 대통령은 성난 ‘민란’의 함성을 듣고도 ‘나 몰라’로 일관하면 여파는 해일이 돼 다시금 전국을 ‘민주’의 깃발로 뒤덮을 것이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에 모인 국민의 날카로운 주인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현장에서 어깨를 스치며 지나치고 무언의 눈빛으로 공감한 국민의 마음은 모두 하나였다.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당도 민중총궐기의 대의명분을 그냥 마냥 눈 돌리기 어려웠나 보다. 지역구까지 적은 깃발에는 왠지 기회주의자의 냄새가 나고 곧 엄중한 결단의 시기에 이르면 그 펄럭임은 파도의 포말로 부서져 ..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2] '계림'과 '황소'로 인해 망한 당나라 ① ▲ 당나라 말기 절강 섬현에서 사염 밀매로 생계를 유지하던 구보는 상산에서 살신의 정신으로 민란을 일으켰다. 사진은 구보의 고향과 아주 가깝고 20세기 국민당의 장제스의 고향이기도 한 절강성 계구 마을의 시장. ⓒ 최종명 "당(唐)은 황소(黄巢)로 인해 망(亡)하고 그 화(祸)는 계림(桂林)에 있다." - 당나라 말기 최대 농민전쟁인 황소 민란이 일어나기 전 그 화근이 된 사건을 계림에서 봉기한 방훈(庞勋) 민란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방훈보다 10년 앞서 절강 일대에 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구보(裘甫)가 있었으니 당나라를 침몰시킨 진정한 화근이자 최초의 항거였다. 당나라 말기 혼란, 피 끓는 전쟁의 서막이다. 당나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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