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세 번째가 열렸습니다. 이번 "위기가 영웅을 만든다"에서도 제 인터뷰 내용은 없습니다. 그래서 김용(金庸) 작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정말 예전부터 그에 대해 기사를 쓰고 싶었으나 한가지 이유때문에 망설였습니다. 그건 마지막에 설명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김용은 천재적인 작가이자 정치평론가입니다. 청나라 강희제 때 진사에 급제한 사승(查升)의 후손입니다. 본명은 사량용(查良镛)이지요. 끝 자 '용'을 나누어 '김용'이라 필명을 씁니다. 항주 인근에서 태어난 김용은 항주와 상해 등에서 신문사 근무를 하다가 홍콩으로 건너갑니다. 50년대 중반 등 4편의 무협소설을 발표합니다. 59년에 정치사회평론 잡지 를 창간합니다. 이후 자신의 잡지에 등을 전재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11..
마운틴TV의 "의천도룡기"가 시작됐습니다. 제1장은 약 9분입니다. 월/목 편성, 1장에는 7분 대에 "양양성 전투" 관련 제 멘트입니다. 그냥 "양양성 전투"라 하니 지리적으로 잘 모를 수 있는데...호북성 양양襄阳입니다. 4년전엔가 베이징에서 기차 타고 샹양 도착, 삼고초려의 현장 고융중古隆中과 도교 명산 무당산, 관우가 지키던 형주고성荆州古城 등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장강의 지류인 한강汉江을 따라 조성된 양양성은 삼국시대 형주를 지키던 유표刘表에 의해 성곽으로서 입지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몽골족의 남침을 막는 남송의 보루가 됩니다. 약 7년 동안 성을 지켰지만 결국 석포로 무장한 북방민족의 공세에 난공불락으로 믿고 싶었던 양양성이 무너지고 맙니다. 견고한 '철타铁打'..
이소룡(李小龙) 또는 브루스 리(Bruce Lee), 우리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의 영화를 직접 본 세대는 이미 4~50대이긴 하다. 하지만 시대를 넘어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들이 그렇듯이 그는 어는 한 세대의 흘러간 인물이 아닌 듯하다. 서른을 겨우 넘긴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가 영화 속에 담아낸 독특한 캐릭터는 몇 세대가 더 지나도 늘 회자될 지도 모른다. 그가 사망한 지 35년이 지나 중국CCTV가 제작한 50부작 초대형 드라마 로 다시 부활했다. 지난 10월부터 1달 베이징에 머물렀는데 황금시간대에 CCTV는 물론이고 각 방송채널마다 앞다투어 편성했으니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는 CCTV1 채널을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 8년 이래 최고의 시청율(약간 과장일 듯)을 기록했다고도 전..
지난번 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영화 만청진다이황진지아(满城尽带黄金甲)가 개봉됐습니다. 2006년 12월 14일 중국 전역에서 개봉됐는데, 언론의 대단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개봉 첫날 을 뛰어 넘는 1500만위엔의 관객동원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중국 극장가는 우리처럼 관객동원 수가 아닌 판매된 극장표 금액으로 발표합니다. 1500만위엔을 영화관람료로 환산해야 합니다. 베이징의 경우, 학생은 50위엔, 성인은 80위엔이니 187,500명에서 300,000명 사이가 되겠지요. 우리보다 더 비싼 영화관람료 80위엔(약10,000원)을 내고 개봉 며칠 후 베이징 왕푸징의 신세기 영화관(新世纪影院)에서 직접 봤습니다. 아래 영상은 주제가를 배경음악으로 전체 영화 스토리에 대한 이미지와 자막번역을 엮어..
10월23일 영화 만청진다이황진지아(满城尽带黄金甲, 이하 황진지아)의 공식 블로그(博客)에 영화제작자인 짱웨이핑(张伟平)이 공개한 것은 짱이모와 꽁리의 14년 전 사진. 영화 황진지아는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측천무후의 이야기를 그린 짱이모의 최신작이다. 올해 12월 21일 전 세계 동시 개봉을 앞두고 공식 홈페이자와 블로그를 통해 마케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마흔두살이던 짱이모와 스물일곱살이던 꽁리가 1992년 봄, 만리장성에서 찍은 사진이다. 서로에게 다짐했던 약속이 바로 여황제 역은 꽁리가 한다는 것이었다 한다. 짱이모의 약속은 바로 '중국의 유일한 여황제는 무측천(武则天)이고 오로지 꽁리가 연기할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한 것. 블로그에 올려진 글과 사진의 제목은 '그녀가 돌아왔다'(她回来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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