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2] '계림'과 '황소'로 인해 망한 당나라 ① ▲ 당나라 말기 절강 섬현에서 사염 밀매로 생계를 유지하던 구보는 상산에서 살신의 정신으로 민란을 일으켰다. 사진은 구보의 고향과 아주 가깝고 20세기 국민당의 장제스의 고향이기도 한 절강성 계구 마을의 시장. ⓒ 최종명 "당(唐)은 황소(黄巢)로 인해 망(亡)하고 그 화(祸)는 계림(桂林)에 있다." - 당나라 말기 최대 농민전쟁인 황소 민란이 일어나기 전 그 화근이 된 사건을 계림에서 봉기한 방훈(庞勋) 민란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방훈보다 10년 앞서 절강 일대에 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구보(裘甫)가 있었으니 당나라를 침몰시킨 진정한 화근이자 최초의 항거였다. 당나라 말기 혼란, 피 끓는 전쟁의 서막이다. 당나라 말..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0] 수나라 민란 장백산과 와강채 ① ▲ 중국은 그냥 산이라고 하는 것도 산맥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장백산은 협의로는 백두산이지만 백두산을 포함한 기나긴 산맥을 광의로 장백산이라 부르는 것일 뿐이다. 산동의 장백산은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계획으로 인해 발발한 민란의 근거지이다. ⓒ 최종명 백두산, 중국은 장백산(长白山)이라 부른다. 장백산이라 불린 것은 12세기경 여진족의 금나라가 중원을 장악하고 있을 때부터였다. 북위 때에는 도태산(徒太山)이었고 당나라는 태백산(太白山)이라 불렀다. 서안 남쪽 진령산맥(秦岭山脉)의 주봉을 태백산이라 한다. 우리나라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과 이름이 같다. 당나라 시대에는 지금의 백두산이 태백산이기도 했다. 산 이름만 놓고 보면 역사 이야..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6] 도교와 황건적의 민란 ① ▲ 도교는 노자의 을 종교화했으며 백성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도교사원의 최고 신앙인 삼청전에는 옥청, 상청, 태청이 봉공돼 있다. 이중 태청인 도덕천존은 노자를 우상화하고 있다. 사진은 산서 면산 도교사원 대라궁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지점에 있는 태청 도덕천존의 조각상. ⓒ 최종명 장강은 동쪽으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풍랑에 휩쓸려 영웅은 간 곳 없네.성공과 실패를 허공에 묻겠는가? 청산은 의구하고 석양은 언제나 붉네.백발의 어부와 나무꾼은 은거하며 추월과 춘풍에 젖어가니탁주 한 사발에 주거니 받거니 고금의 온갖 풍상을 웃음 담아 이야기하네. 나관중(羅貫中)은 에서 낭만적인 송나라 곡조인 을 앞세워 영웅의 서사를 암시하고 있다. 120회 마지막..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5] 녹림과 적미, 농민의 야망이 되다 ② ▲ 적미군의 초기 근거지 태산 정상 부근의 석벽 조각. '노신판화상'을 수상한 유명 서예가 라이샤오지(赖少其)의 작품. 약간의 의역을 붙이면 "태양이 환하게 나타나니, 산들이 모두 동요하네. 검을 빼들고 미친 듯 노래하니, 뜻을 세워 크게 나아가리."는 의미이니 참으로 '민란' 정서와 맞다. ⓒ 최종명 에 따르면 신나라의 '법령은 괴로울 정도로 가혹했고, 백성들은 온갖 금지령에 손사래를 쳤으며, 생계를 잇기조차 힘들었다. 노역도 몹시도 고달픈 지경이었으며 논에는 메뚜기조차 가물었으니 부자나 빈자 모두 다를 바 없어 구분조차 힘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왕망이 통치하던 서기 14년, 낭야(琅琊) 군 해곡(海曲, 일조日照) 현성에서 허드렛..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4] 녹림과 적미, 농민의 야망이 되다 ① ▲ 왕망의 고향 한단의 황량몽 사원. 한단지몽 주제의 벽화.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주공의 나라를 흠모해 개혁을 도모했으나 '하룻밤의 꿈'처럼 허무한 실패의 길을 걷고 있었다. ⓒ 최종명 왕망, 주공을 꿈 꾸다 중국 역사에서 칼부림 없이 황제를 찬탈 또는 선위로 역성혁명을 이룬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왕망(王莽)과 무조(武曌)다. 무조는 당나라 시대 7세기경 주周(역사에서 무주武周)를 국호로 통치한 여성 황제 무측천(武則天)이고 왕망은 1세기경 한나라를 앞뒤로 나누며 신(新)나라를 세워 좌지우지했다. 무측천이 수렴청정의 지위를 이용해 양위를 강제해 나라를 세웠고 권력을 잃고 태상황으로 물러난 후에도 황후로서 장례를 치렀다. 이렇듯 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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