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쩌민 전 주석이 방문한 장완과 휘주 최초의 무과 장원을 배출한 리컹 명나라 이후 상업이 활발하게 일어난 지역이 있다. 황산 남쪽 일대 휘주(徽州)다. 풍부한 물산을 기반으로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부(富)를 쌓았다.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곳곳에 골고루 나누도록 마을을 형성했다. 대체로 집성촌이다. 모든 마을이 다 한때 잘 나가던 거상의 흔적이 있다. 물이 곧 복(福)이라는 관념도 생겼다. 그래서 지붕을 뚫어 하늘이 그대로 드러나고 비도 햇볕도 집안에 모았다. 부를 일으킨 덕분에 조형미가 뛰어난 건축이 남게 됐다. 독특한 휘주 문화가 생겨났다. 장시성 우위안(婺源)의 휘주 마을을 찾아간다. 고속철을 타면 상하이에서 3시간이면 도착한다. (계속)
장쩌민 전 주석이 왔어도 밥그릇 들고 환호했을 사람들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강서 휘주문화 우위엔 ③ 왕커우와 장완 우위엔에서 휘주부로 가는 길에 왕커우(汪口)가 있다. 마을 앞으로 융촨허(永川河) 수로가 이어진다. 1110년 송나라 때 처음 마을이 형성됐다. 주위가 높고 움푹 들어간 지형이라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고였다가 강으로 퍼져나가는 형세다. 넓은 웅덩이라는 뜻으로 왕커우라 했다. 중국 성씨 중 1, 2등을 다투는 왕씨, 그러나 왕커우는 유(俞)씨 집성촌이다. {계속}
장완江湾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조상이 오랫동안 살던 마을이다. 소강萧江씨가 강씨로 변한 것이다. 장완 마을 입구에는 소강종사萧江宗祠가 우뚝 서 있다. 일명 영사당永思堂이라고 부른다. 영사당 앞에는 종사의 차례 상차림이 펼쳐져 있다. 채소, 과일, 생선, 간식, 술 등을 순서대로 차렸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강씨의 시조인 강동江董의 신위를 비롯해 조상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밖으로 나오면 멋진 '장완' 패루가 마을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옆에는 멋진 희대戏台 하나가 마련돼 있다. 장쩌민 전 주석이 방문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휘주마을 장완이다.
휘주문화 마을 장완江湾의 아침 거리를 걸어본다. 장완은 우위엔에 있는 유일한 5A풍경구인데 아마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조상이 살았던 곳이어서 편의시설 등이 개선됐기 때문인 듯하다. 불을 피우고 우물에서 설겆이도 한다. 한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장쩌민 전 주석이 찾았던 인증 사진도 보여준다. CCTV 등 방송에서 소개된 농가집에 들어서니 마중물로 물을 퍼올리는 펌프가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한 아주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는지 바쁘다. 골목도 운치 있고 집들도 모두 개방돼 있어 구석구석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마을이다.
휘주문화의 또 하나 멋진 마을 장완江湾을 찾았다. 전 국가주석 장쩌민江泽民의 조상인 소강萧江 씨족이 살았던 고향이다. 소강씨는 곧 지금의 강씨이다. 11세기 소강씨가 이전에 마을을 조성한 후 점점 거대 씨족 마을로 성장했다. 청대 학자인 강영江永 기념관을 비롯 건축 가옥은 모두 휘주문화를 잘 담고 있다. 정자, 문, 다리, 우물 등도 자리를 지키도 있다. 빗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있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거울보다 맑은 물에 비친 대문과 대련의 색감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잠시 머물며 한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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