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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58] 따리 창산과 바이족 공연, 천룡팔부 영화성

7월 31일 오후 쿤밍(昆明)에서 버스를 타고 따리(大理)로 가는 길. 밤이 되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다시 따리구청(大理古城)으로 이동해 숙소를 잡고 고성의 분위기에 빠졌다. 따리구청은 기대한 것보다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8월이다. 예상과 달리 비가 내리지 않아 따리구청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창산(苍山)을 트레킹하기로 했다. 창산은 10킬로미터가 넘는 산악 트레킹 등산로가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또한, 해발 3500미터 이상의 산맥이기도 하다. ‘몹시 덥고 뙤약볕이라 해도 눈이 녹지 않는다(炎天赤日雪不容)’는 눈 덮인 설산이 있다. 그 입구에 아담한 사원이 있으니 바로 깐통쓰(感通寺)이다.


깐통쓰에 오르는 길에 서서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계단마다 빗물이 거울을 만들기 시작했다. 깐통쓰에 들어서니 뿌연 연기가 진동을 한다. 향을 피웠는데 비가 내려서인지 그 연기가 사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원 옆에서 아주머니들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있다.


  
창산 초입의 사원 깐통쓰에서 불공 드릴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 최종명
창산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 오르고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운치 있게 서 있는 이 아담한 사원이다. 안개인지 연기인지 온통 사원은 하얗게 물들어 있다. 서기 9세기 경에 처음 세워졌다 하니 역사가 깊다. 나중에 하나의 왕조국가인 대리국이 된 남조(南诏)시대의 이름난 사원이다.


숴다오(索道)를 타고 올랐다. 10분 정도 올라가니 한쪽에 커다란 돌로 만든 장기판이 인상적이다. 이 지역의 돌인 흰색의 대리석으로 만든 장기 알이 멋지다. 장기판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창산(苍山)은 이름만큼이나 멋진 4가지 색다른 풍경이 돋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눈, 구름, 샘, 돌이 모두 하얗다고 한다.


한여름이라 비록 해발 4122미터 최고봉 부근에 흰 눈도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억수같이 퍼붓는 빗줄기 때문에 정상으로 오르기에는 무리다. 그러니, 창산의 유명한 설경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눈이 녹아내려 계곡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물을 보면 정상부근의 겨우내 눈이 얼마나 장관일지 가늠이 된다.


구름은 그야말로 창산 전체를 수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빗물 때문에 더욱 짙게 피어나는 안개에 쌓여 영롱한 구름의 변화를 다 보진 못했지만, 간혹 스카이라인을 따라 보이는 구름의 향연을 빗물도 막지 못한다. 해발 2600미터 고지에 펼쳐진 등산로를 윈여우루(云游路)라 하고 이 라인을 옥대(玉带)라 하니 명성에 걸맞다. 남쪽 셩잉펑(圣应峰)에서 북쪽 샤오천펑(小岑峰)에 이르는 16킬로미터 길이의 구비구비 산 계곡 길이다.


샘 역시 창산의 별스런 모습이다. 계곡을 따라 눈 녹은 물과 빗물이 폭포처럼 내리꽂다가 어느덧 자그마한 샘을 형성하는데 그 샘물이야말로 새하얗다 못해 시릴 정도다. 창산에는 18곳의 아름다운 시냇물이 있는데 그 중 칭비씨(清碧溪)에는 한가운데 살포시 불상이 떠 있기도 하다.


  
창산의 칭비씨 계곡에 있는 연못 한가운데 있는 불상
ⓒ 최종명
창비씨


창산은 풍부한 대리석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리석이 바로 이곳 따리(大理)에 있는 돌을 말함이니 그 색 역시 창산의 4색을 구성하고도 남는다. 빗속에서 걷는 산악 트레킹은 정말 환상이다. 가파른 계곡을 돌면 또 색다른 계곡이 다시 나타나고 구름도 절벽도 풀들도 생생하고 시원스럽다.


가끔씩 비가 멎으면 산 아래로 마을이 보이고 파란 하늘 사이로 구름도 빠르게 옮겨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등산로 옆으로 생기 넘치게 피어난 이름 모를 풀잎 마다 빗물인지 눈 녹은 물인지 모르지만 물기를 머금고 있는 모습도 눈을 맑게 해준다.


  
해발 2천6백미터 고지, 16킬로미터에 이르는 험준한 창산 등산로
ⓒ 최종명
창산


이렇게 파릇파릇한 기운을 느끼며 구비구비 돌고 돌아가는 길을 3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게다가, 곳곳에 있는 폭포와 샘을 구경하려면 더욱 시간이 많이 걸린다.


등산로 중간 지점에 있는 휴게소 겸 식당에서 맛 있는 국수를 먹고 기운도 냈다. 나무통에 궐연을 넣고 피는 담배가 너무 맛있어 보인다. 처마로 떨어지는 빗물 사이로 앞집에 우리나라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되고 있다. 이렇게 오지인 이곳에서 우리 드라마를 얼핏 보니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경치가 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다.


  
▲ 파라솔과 돼지 해발 2천6백미터 고지의 창산 등산로에서 빗길에 만났다
ⓒ 최종명
창산

이곳에서 치롱뉘츠(七龙女池)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이 지역의 호수인 얼하이(洱海)를 다스리는 용왕의 일곱 공주가 매년 여름이면 보름달이 뜬 날 이곳에 와서 목욕을 하던 곳이며 공주들이 용궁으로 돌아간 후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선율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폭포수가 떨어져 모두 7군데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으니 그 작명이 제격이다.


다시 모퉁이 길을 돌아 걷고 있는데 빨간 파라솔이 보였다. 그 밑에 돼지 한 마리가 마치 비를 피하듯 꾹꾹 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줄로 돼지를 목을 매달고는 파라솔 밑에 둔 것이다. ‘파라솔과 돼지’


창산을 등산하면서 멋진 자연에 흠뻑 취했지만 이 모양만큼 웃기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은 없었을 듯하다. 돼지가 불쌍해 보이는 것인지 행복해 보이는 것인지 알 듯 모를 듯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등산로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하산 길에 있는 중허쓰(中和寺)를 지났다. 남조(南诏) 시대인 8세기 경에 처음 세워진 도교사원으로 청나라 강희 황제가 하사한 ‘전운공극(滇云拱极)’ 편액이 걸려 있어서 흥미로웠다.


‘전(滇)’과 ‘운(云)’은 모두 이 윈난 지역의 왕조와 지역을 뜻하고 있으며 ‘공극(拱极)’이란 ‘최상의 예를 다해 절을 한다’는 의미이니, 아마도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청나라의 영토로 편입한 후 지역민들의 정서에 맞춰 통치하겠다는 의사가 담겨 있음직하다.


  
창산 중허쓰 도교사원에 걸린 강희황제의 편액
ⓒ 최종명
창산


내려오는 길에 또 다른 숴다오, 즉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창산을 오를 때는 불교사원을 봤고 내려올 때는 도교사원을 봤다. 등산로 양 끝에 서로 다른 사원이 있으니 나름대로 볼거리가 풍성하지 않은가.


날씨가 맑으면 따리 시내에 있는 호수와 하늘 그리고 구름이 장관이라 한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내려오는 풍경도 나쁘지 않다. 보일 듯 말 듯 구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니 환상적이라 할 만하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따리 고성 내에 있고 한국사람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숙소인 ‘넘버3’. 마침 한족 남자직원이 한국말을 꽤 잘한다. 이곳에 온 지 채 1주일이 안됐다 하는데,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1년 했다고 한다. 그 친구가 재미있는 공연을 추천했다.


따리(大理) 고성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쌰관(下关) 시내에 소수민족 중 하나인 바이족(白族)의 대형가무극인 후디에즈멍(蝴蝶之梦) 공연이 있다. 후디에는 나비이니 '나비의 꿈'이란 뜻인데, 화려한 의상과 전통 가무, 빛나는 조명이 어우러진 꽤 볼 만한 공연이다. 2400만위엔을 투자해 기획 제작된 것이라 하니 꽤 걸작이라 할 만하다.


제목답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형상화한 장면이나 달에 비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 그리고 전통 춤사위에 맞춰 흥겹게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면 다른 민족의 정서를 호흡하면서 이국적인 감상에 젖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따리에서 본 바이족 '나비의 꿈' 공연 장면들
ⓒ 최종명
따리


촬영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로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캠코더로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금지된다. 대신에 DVD를 판매한다. 처음에 많은 중국사람들이 디카로 촬영을 하길래 초반부와 중반부에 조금 촬영을 했는데, 촬영을 못하게 직원들이 일일이 막길래 더 이상 촬영을 하지 못했다.


  
▲ 따리 고성 따리의 고성 내 밤 풍경
ⓒ 최종명
따리

따리는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바이족의 자치가 이뤄지는 곳으로 바이족의 주요 거주지 중 하나이다. 


이곳은 신석기 시대 이래 얼하이(洱海) 호수 부근을 중심으로 문명을 꽃 피우고 난자오(南诏)와 따리(大理) 왕국으로 이어지는 바이족의 터전이라 할 수 있다.


창산부터 바이족 공연까지 함께 다닌 주연씨는 저녁에 2명의 남학생을 데리고 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한 동호회에서 알게 된 친구들인데 우연히 숙소에서 만난 것이다.


우리는 함께 중국 식당에 가서 바이쥬(百酒)를 마셨고 2차로 거리 포장마차에서 양꼬치를 구워 먹었다.


다음날 8월 2일 해가 뜨자마자, 우리 일행은 함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천룡팔부(天龙八部) 영화성(影视城)으로 갔다.


이름에 걸맞게 천룡팔부 현판의 편액 글씨를 작가 김용(金勇)이 쓴 것이라 한다. 천룡팔부는 중국의 위대한 작가로 칭송 받는 김용의 무협소설 중 하나이며 드라마로 제작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곳은 1억 인민폐가 넘는 자금을 투자해 개발한 관광지로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풍물 및 볼거리가 많다.


아침 9시에 성곽의 문을 여는데 입구에서 황제 영접 의식이 거행된다. ‘开城皇帝迎宾仪式’이라 불리는 이 의식은 천룡팔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장수와 병사들, 황제가 등장해 손님을 맞이한다는 컨셉트이다.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성문이 열리고 장수와 병사들이 도열한 가운데, 황제와 황후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 성곽 위에 나부끼는 깃발과 맑은 하늘을 보면서 한껏 과거로의 여행을 즐겨 볼 만하다. 


  
▲ 천룡팔부 성곽 입구 김용의 소설 천룡팔부의 이름을 딴 관광지로 황제가 성문을 나오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 최종명
따리


이곳은 허난성 카이펑(开封)에 있는 문화놀이공원인 청명상하원(清明上河园)을 참고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양한 문화공연이 일정표에 따라 진행되는데, 민간절기를 비롯 서커스와 같은 잡기와 결혼풍습을 재현하기도 하고 범인체포장면, 탈 묘기, 피잉(皮影) 등이 펼쳐진다. (참고 비싼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던 칭위엔)


민간절기(民间绝技)라고 이름을 걸고 하는 잡기, 서커스의 일종인데 고난도이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다. 우산을 이용해 공 굴리기를 하거나, 공이나 곤봉, 원판 여러 개를 양손으로 올리고 받는 묘기를 선보인다. 창 묘기도 있다.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끄는 그런 공연보다는 심플해서 좋다. 하여간, 동그랗게 생긴 물건이라면 뭐든지 다 돌리지 싶다. 특히, 우산을 이용한 묘기를 싼지(伞技)라 하는데 동그랗게 생긴 물건에 불을 붙여 돌리는 장면이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는다.


데릴사위 결혼 풍습을 재현하기도 한다. 이 지역 돤쟈(段家) 집안에 결혼 적령기에 든 아가씨가 있는데 쎠우쳐우(绣球, 공 모양으로 수 놓은 장식물)을 던져 그것을 받은 총각을 데릴사위로 들인다고 한다. 단청을 한 예쁜 2층 차이러우(彩楼)에서 아가씨의 아버지가 나와 이 사실을 발표하면 아래에 있는 총각들은 가슴을 설렌다.


‘단씨 집안의 아가씨가 장식물을 던져 데릴사위를 맞는다(段家小姐抛绣球招婿)’는 옛 이야기 내용을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꾸몄다. 장식을 잡은 총각과 아가씨가 서로 맞절하고 교배 주를 마시면 이 집안의 데릴사위가 된다. 그 옛날 이런 방식의 결혼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꽤 흥미롭다. 아마 이 지역 유지 또는 공친왕 정도 되는 집안의 데릴사위가 된다는 것은 ‘남자신데렐라’일 것이니 사뭇 총각들이 평생 한 번 가슴 설레는 경쟁이 이뤄졌으리라.


  
천룡팔부 성곽의 공연 장면들, 왼쪽부터 서커스, 사자춤, 데릴사위풍습, 피잉
ⓒ 최종명
천룡팔부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이 있다. 사자 탈을 쓰고 가파른 무대 위에서 서로 현란한 탈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이름은 스왕쩡빠(狮王争霸),사왕쟁패이다. ‘황비홍’과 같은 중국영화에서도 간혹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 공연도 약10분 정도 선보이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영화에서보다 훨씬 신기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천룡팔부 영화성에서 즐겨볼 수 있는 또하나는 야경꾼순찰(更夫巡查)과 범인체포(捉拿要犯) 장면이다. 순찰 복장을 한 야경꾼들이 거리를 감시하고 있다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이 나름대로 실감나게 연출되고 있다.


길거리 공연 중 하나인 덤블링 묘기도 있다. 사발을 겨드랑이와 머리에 이고 뛰어내리기도 하고 물이 담긴 물잔을 머리에 이고 뛰어내리는데도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 마지막에 창과 봉을 들고 나와서 무공 시연도 잠시 보여주기도 한다.


피잉(皮影)은 가죽으로 만든 인형으로 무대 위 흰색의 막 위에 그림자놀이처럼 보여준다. 중국 민간예술의 한 형태로서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전래되어 왔다. 장이머우(张艺谋)의 초창기 영화이며 아직도 중국에서는 상영금지작인 <인생>(원제 活着)에서 중국 근대와 현대사를 조명하는데 절묘한 키워드로 묘사된 것이기도 하다. 꼭 한 번 직접 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곳에서 보게 돼 정말 기뻤다.


피잉은 한 사람이 조작한다. 물론 악기연주를 하거나 조명을 맡은 보조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피잉 자체 연기는 혼자 시연하는 것이다. 손으로 보여주는 그림자놀이가 아기자기한 묘기에 가깝다면 피잉이야말로 예술의 경지라 할 만하다.


  
천룡팔부 성곽 내 거리
ⓒ 최종명
따리


따리(大理) 천룡팔부 영화성에서 재미난 공연을 참 많이 봤다. 피잉(皮影)도 좋았고 덤블링 서커스를 비롯해 사자탈춤도 인상적이었다. 윈난(云南) 성 따리는 역사적으로 그 전통이 오래된 민족국가가 있었던 곳이다. 비록 천룡팔부 영화성에 그 진한 맛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번 찾아보면 좋을 그런 곳이다.


영화성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하다. 성곽도 멋지지만 성밖에서 바라본 호수와 하늘은 정말 멋지기 그지 없다. 성 밖에는 가볍게 말을 타고 돌아다닐 수도 있다. 말을 타고 따리고성(大理古城)까지 돌아갈 수도 있다. 맑은 하늘에 깃든 이국적인 느낌, 여행은 그렇게 기분 상쾌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