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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83] 허페이 삼국지 전투와 난징 과거 시험장, 공자 사당

9월 26일 안후이(安徽) 성 허페이(合肥)에서 아침을 맞았다. 북송 시대 청백리로 유명한 정치가인 포청천 포증(包拯)이 태어난 곳으로 그의 사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근대에 이르러 양무파의 우두머리였던 이홍장(李鸿章)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조의 용맹스런 장수이던 장료(张辽)는 단 8백 명의 기마병을 이끌고 10만대군을 이끌고 온 손권에게 돌진해 혼을 빼놓고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 바로 샤오야오진(逍遥津)이 허페이 시내에 있다. 지금은 공원이 됐으니 삼국지의 한 장면을 만나러 갔다.


  
허페이의 샤오야오진 공원의 장료 조각상, 삼국지에서 조조의 장수로 손권의 대군을 물리친 인물이다
ⓒ 최종명
허페이


공원 입구부터 한산하다. 장료의 동상은 그 옛날 천지를 진동하는(威震) 위엄만큼은 아니어도 말에 올라탄 꼿꼿한 모습이다. 호수 옆에는 당시의 흔적 대신에 새롭게 다리가 세워져 있지만 손권이 혼비백산 달아났다는 페이치챠오(飞骑桥) 표시를 바위에 새겨놓기도 했다. 당시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한낮의 더위를 참지 못하고 호수 옆의 작은 정자에 사람 한 명이 누워 잠을 자고 있다.


  
허페이 샤오야오진 공원에 있는 페이치챠오 비석, 오나라 손권이 장료의 돌진에 놀라 도망친 다리
ⓒ 최종명
허페이

어린이 놀이시설 몇 개를 지나가니 장료의 의관총(衣冠冢)이 있다. 10만 대군을 위협한 장수의 무덤치고는 한산하고 평범하다. 이 무덤은 호수 안에 있는 섬에 있다. 그래서 무덤을 보고 돌아 나오는데 곳곳에 잔잔한 호수를 둘러싸고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벤치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새소리 들으며 한참 앉아 있었다. 아주 평범한 시민들의 작은 공원이지만 장수의 역사를 담아서인지 그저 한번 둘러보기만 하기에는 다소 아쉬웠던 것이다.


터미널에 가니 난징(南京)으로 가는 버스가 빈번하게 떠난다. 2006년도에 허페이와 난징을 온 적이 있어서인지 낯설지 않다. 버스는 2시간도 되지 않아 난징에 도착했다.


숙소를 정하고 저녁 무렵까지 쉬었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자마자 밖으로 나섰다. 버스를 타고 공자의 사당이 있는 푸즈먀오(夫子庙)가 있는 거리로 향했다.



예전에 온 적이 있어서 정겹기조차 하다. 이번에는 영상으로 담는다고 생각하니 훨씬 설레기도 한다. 중국에서 가볼 만한 역사풍물거리를 꼽으라면 당연히 난징도 넣어야 한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이 오랜 도시이고 수도였던 곳이니 볼거리가 많다.


문장의 신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 과거 시험장


먼저 장난공위엔(江南贡院)을 찾았다. 공위엔은 옛날 과거를 보던 시험장이다. 입구로 들어가 룽먼(龙门)을 지나면 작은 정원과 양 옆으로 펄럭이는 깃발이 보이는 즈공탕(至公堂)이 나타난다. 앞에는 좌우로 용머리, 가운데는 잉어비늘이 조각된 리위탸오룽먼(鲤鱼跳龙门)이라 부른다. 이걸 넘어야 과거에 급제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즈공탕 안에는 물고기 등에 오른발을 딛고 왼발은 뒤로 젖힌 채 오른손에는 붓을 들고 왼손에는 연적을 든 쿠이싱(魁星) 상이 서 있다. 우두무리 별이라 해 북두칠성의 장방형을 이루고 첫째 가는 별이라 하는데 사실 중국 신화에서 문장의 신이라 불린다.


  
난징 과거시험장 장난공위엔에 있는 문장의 신 쿠이싱
ⓒ 최종명
난징

이 쿠이싱에는 재미난 전설이 있다. 옛날에 한 수재가 있었는데 총명하고 재주가 비범해(才高八斗) 문장을 짓는 것도 탁월했다.


하지만 생김새는 아주 못생긴 곰보였으며 게다가 한쪽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였다. 그는 성장해 향시를 거쳐 드디어 황제 앞에서 직접 과거를 집전하는 자리에서 면접 시험을 보게 됐다.


황제가 그의 용모를 보자 심기가 불편해 건성으로 물었다. '너 그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물으니 '곰보(麻脸) 같은 얼굴은 하늘 모양을 뜻하니 별을 따 바칠 수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황제가 다소 흥미를 느껴 다시 물었다. '너 절뚝거리는 다리는?' '다리 하나로도 용문을 넘었으니 장원급제(独占鳌头)입니다'라고 하자 황제는 그의 대답이 아주 기만하다 여기고 기뻐했다.


다시 묻기를 '오늘날 천하에서 문장 짓는데 가장 뛰어난 자가 누구인지 솔직하게 대답해보라' 하니 그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천하의 문장은 우리 현에 속해 있고, 우리 현의 문장은 우리 향에 속해 있으며, 우리 향의 문장은 아우(舍弟)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아우는 저에게 문장을 고쳐달라고 합니다'라는 문장을 썼다. 황제는 무릎을 치며 기뻐하고 칭찬(拍案叫绝)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 하기에 아깝지 않다(不愧)'고 하며 장원급제의 칙명을 내렸다고 한다.


이 못생긴 수재는 승천해 꾸이싱이 돼 공명(功名)과 봉록작위(禄位)를 주관하게 됐다고 하는데 '괴(魁)'자를 나눠보면 생김이 추하다는 의미를 지닌 '귀(鬼)'자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하는 말(才高八斗)에서 딴 '두(斗)'자의 결합이다.


문장가의 신이자 선망의 대상이라 할만하다. 건물 안에는 과거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장원급제 행렬 모형도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과거의 방을 보고 있는 그림도 있고 급제자의 옷이나 벨트 등도 있다.


  
난징 과거시험장에 있는 과거 급제자의 행렬 모습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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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과거를 거친 역사적 인물 초상화들도 있다. 명나라 시대 화가이면 문장가인 백호(伯虎) 당인(唐寅), 청나라 말기 사상가이며 정치가인 진독수(陈独秀)가 낯익었다.


난징은 원래 진시황 이래 진링(金陵)이라 불렸다. 진시황이 난징에 온 후 배반의 왕기가 느껴진다고 했던 곳이다. 진시황의 측근이 난징의 주위 산의 형세가 금의 기운이 서렸다고 하며 산 곳곳에 구멍을 뚫어서 그 맥을 막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인가, 오나라 손권도 도읍을 이곳에 정했으나 결국 멸망했고 태평천국의 홍수전이나 신해혁명으로 탄생한 공화정을 수립한 쑨원 모두 실패한 혁명가가 됐다.


주원장이 난징에 도읍을 정하긴 했지만 명나라는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 276년을 지속했다. 과거 제도는 왕조의 지혜를 담는 방법이며 열혈 선비들의 비전일 것이다. 천도 후에도 난징에서는 계속 안후이, 장수를 합쳐 강남부(江南府)가 되는 청나라 시대에서 변함없이 이름을 잃지 않고 그 기능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공자의 사당 푸즈먀오


다시 대문을 나와 큰 길로 나가면 온 거리가 다 흥청거린다. 시장에는 먹거리와 옷, 공예품을 팔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서나 풍부하고 다양한 밤거리 문화도 함께 나타난다. 정말 난징에서 가장 옛 풍물이 많은 거리가 된 것은 분명 푸즈먀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징에 있는 공자의 사당 푸즈먀오 대성전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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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즈먀오는 송나라 시대인 1034년에 건립된 공자 사당으로 공자를 가리켜 꽁푸즈(孔夫子)라 한데서 유래했다. 입구로 들어서니 따청뎬(大成殿)이 보이고 그 앞에 양쪽으로 이름난 학자들의 조각상들이 배열돼 있다. 중국에서 가장 크다는 공자의 조각상이 서있다. 높이가 4미터 18센티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난징 공자 사당 푸즈먀오 물항아리에 띄운 촛불과 연꽃 그리고 공자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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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조명이 건물 곳곳을 비추고 있고 공자 상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니 아주 엄숙한 분위기이다. 조각상 양 옆에 있는 화재 대비 물 항아리에 연꽃을 띄웠다.


한가운데는 촛불이 타오르고 빙빙 돌아가는 연꽃의 환상적인 장면에 취해 한참 보고 있으니 사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대여섯 개 더 가져오더니 항아리를 아예 잔뜩 채운다.


그리고는 손으로 한번 휘저으니 꽃들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촛불에 비치고 수면에도 반사되니 오색찬란 그 자체다. 이런 장면을 나를 위해 연출해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 여러 번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건물 안에 있는 공자의 화상(画像)을 보고 지나가면 밍더탕(明德堂) 정원에 시리팅(习礼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속에는 높이가 2.55미터, 무게가 4톤에 이르는 청동 종인 리윈따중(礼运大钟)이 자리잡고 있다.



은은한 종소리를 들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왼편에는 양셩팅(仰圣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높이 2미터, 무게 1톤에 이르는 청동 북인 셩인구(圣音鼓)가 있다.


밍더탕은 <东南第一学(동남제일학)>라 써있는 학당인데, 원래 이름은 밍룬탕(明伦堂)이었는데 원나라가 침공해 왔을 때 남송의 명재상인 문천상(文天祥)이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개명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공자의 사원 내 학당이름이 밍룬탕인데 비해 유일하게 밍더탕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난징 공자 사당 푸즈먀오의 학당인 밍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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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즈먀오 제일 뒤편 준징거(尊经阁)에 재미있는 민간예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커징(刻经)이다. 19세기 중반 불교문화의 보급을 위해 노력한 왕인산(杨仁山)이 목판 불경을 제작한 것이 이 지역 민간예술로 승화된 것이라 한다.


금 조각공예인 진보(金箔)도 있다. 우리말로 금박이라 하는 것이니 금을 도금해 얇은 조각으로 만들어서 작품을 완성하는 금속공예라 할 것이다. 금박을 붙이는 티에진(贴金) 기술이 뛰어난 난징진보는 천안문, 인민대회당, 조어대, CCTV와 동방명주 탑, 라싸 포탈라궁, 소림사 등에 적용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쥘부채인 저산(折扇)을 만드는 노인인 장주루(蒋祖禄)선생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나무와 명주, 뼈를 소재로 정교한 감각으로 부채를 만들고 그 속에 동양적인 감성을 묻어내는 느낌이 참 좋은 민간예술이다.


나무로 만든 커다란 목직기(木织机)도 있고 직조해 만든 윈진(云锦)으로 만든 옷들도 전시돼 있다. 윈진은 1500년 전부터 도입된 직조 기술로 꽃무늬가 도드라진(提花) 귀족이나 왕족 계층이 입던 옷으로 수공으로 만들어진다. 공작새의 깃, 봉황의 날개, 백조의 목덜미 등이 아로새겨진 정말 예쁜 옷이다.


  
난징의 민간예술품들, 왼편 아래부터 '덩차이', '윈진', '진보', '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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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윈진' 옆에는 '친화이덩차이(秦淮灯彩)'가 전시되고 있다. 친화이는 난징을 흐르는 강의 이름이다. 덩차이는 장식 초롱이다. 종이와 금빛 철사를 엮어 만든 초롱이 너무나 반짝거린다. 게다가 온갖 모양이 다 있으니 아이들이 보면 꽤 좋아할 듯하다. 어린 사자 얼굴, 수박을 먹고 있는 저팔계, 병아리처럼 생긴 토끼, 금빛 찬란한 연꽃, 등에 꽃을 실은 코끼리, 연못에서 노는 새우, 하늘 나는 비행기 등 제목만 봐도 귀엽기 그지 없다.


푸즈먀오를 나와 친화이 강으로 가는 길에는 풍물 가게들이 많다. 일반 공예품만 너무 많아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고서, 문방사우도 있으며 찻집도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주 친근하다. 말도 편하게 걸고 부담을 주지 않는다. 가게 주인들은 제기도 차고 귀퉁이에서는 마작을 즐기면서 그저 물건을 살 손님이 자기를 찾기만 기다리는 듯하다.


이나 휘황찬란하다고 말해도 그 표현이 아쉬운 곳이다. 송나라 시대인 1029년 하천에 연못을 만들었으니 공자 사당 앞에 있다고 해 그 이름을 판츠(泮池)라 불렀다. 연못 앞 벽은 전체 길이가 110미터에 이르는 홍장조벽(红墙照壁)이다. 용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 벽은 정말 밤에 봐야 제멋이다.


  
난징 푸즈먀오 앞 용 무늬 벽과 홍등이 걸린 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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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을 단 나룻배들이 하천을 오고 간다. 배를 타고 한 바퀴 밤배놀이를 할 수 있다. 혼자서는 타보기가 너무 외롭다. 벌써 두 번째 이곳에 왔는데 또 눈도장만 찍고 만다. 하천 옆에 누각 하나가 밤이 되니 더욱 푸른 빛을 내고 있고 수면에 비친 용은 그 형체를 잃었지만 세상을 다 환하게 비출만한 기운을 버린 것은 아니다.


놀이 배 한 척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원더챠오(文德桥) 아래를 지나간다. 다리 조명이 총천연색이다. 마치 꿈 속의 동화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처럼 몽환적이다. 다리 옆에는 중국 난징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많은 식당들이 줄줄이 있다. 바이루챠오(白鹭桥)까지 한 바퀴 돌았다. 연두, 하늘, 주홍 3색 조명이 은은하게 다리를 감싸고 있으니 낭만의 밤이 깊어간다.


  
난징을 흐르는 친화이 강의 바이루챠오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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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은 이미 풍족한데 배가 고픈 것은 어쩔 수 없다. 계수나무 불로 익힌 오리를 진공 포장한 꾸이화야(桂花鸭) 한 봉지와 진링스얼밍디엔(金陵十二名点)을 한 통 샀다. 오리고기는 저녁 겸해서 호텔에서 먹었고 12가지 종류의 열매, 과일을 재료로 만든 과자는 두고두고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