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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1편

허난(河南) 성 동쪽 도시 상츄(商丘)를 왜 상업의 발원이라 할까.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상 나라에 이르러 교환의 가치가 생겼다니 벌써 2600여 년 전 일이던가. 상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달기(妲己)와 주왕(紂王)의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나라를 잃었다는 정도.

시 서남쪽에 있는 고성 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무협소설에서나
 듣던 중원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긴 대로를 두고 양 옆은 아이들이 뛰어 노는 골목이고, 살아가던 옛집들로 꽉 들어찬 듯 보였다. 고성이라 이름하는 곳은 대체로 신도시와는 달리 역사와 문화, 서민들의 호흡까지 함께 느껴지니 정말 정겹다. 관광지이긴 하지만 사람들로 북적대고 새롭고 신기한 것과도 늘 만난다.

고성의 골목골목을 훑기 시작했다. 갖가지 길거리 먹거리에 손도 입도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바이지모(白激
)를 파는 아주머니가 양념 국물 속 고기를 건져서 바삐 찐빵 속에 넣고 있다. 중원의 햄버거라 할만하다. 쌀국수로 보이는 미피(米皮)를 파는 가게 앞에는 흰 가운을 입은 총각이 반갑게 눈인사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똥두부인 처우더우푸


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곳은 훈툰(馄饨)파는 가게. 길가에 앉아서 한 그릇 후루룩 비웠다. 우리의 만두국과 맛이 비슷해서 먹는데 부담이 없다. 훈툰은 원래 북방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음식인데 완전 밀봉된 만두 형태라 구멍이 전혀 없다는 의미로 훈둔(混沌)이라 불렀다가 발음이 비슷한 훈툰으로 바뀌었는데 우리는 그저 ‘훈둔’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때 어디선가 천지를 진동하듯 코를 마비시키는 냄새가 나니 일명 똥두부라 부르는 처우더우푸(臭豆腐). 발 냄새 지독하다고 해야 할지, 썩힌 홍어답다 해야 할지 모르지만 익숙한(?) 향이 머리까지 아플 지경이다. 베이징에서 이 상큼하지 못한 녀석에 대한 기억은 많다. 2001년 어느 날 한 호텔 아침 뷔페에 나온 것을 간밤의 술기운 때문에 멋모르고 입에 넣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정말로 다시는 중국에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또 한번은 베이징에서 중국어 공부할 때 학교 정문 앞에 오후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외국학생들을 질리게 한 바로 그 향기. 설마 이렇게 다시 만날 줄 몰랐다. 방금 먹은 훈툰 속에도 이 냄새가 스며들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이미 먹었는데. 어쩌면 훈툰을 먹기 전까지는 너무 배가 고파 코가 제 정신이 아니었던가 보다.

인생종착역


서민적인 가게들도 이방인의 눈 속에는 이채롭다
. 약방, 문신가게, 이발소, 여관, 작명소, 잡화점포, 목욕탕 간판을 기웃거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이 문 밖에서 봐도 한두 평 정도의 자그마한 가게마다 인기척 없이 그저 지나는 사람들 앞에서 펼쳐 있을 뿐이다.

천주교성당이 보였다. 신축 공사 중인지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십자가 탑 솟아있는 건물이 왠지 이곳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바로 옆에 독특한 이름의 가게 하나가 있다. 수의를 파는 가게인데 양끝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고 간판은 '인생종착역(人生
点站)'이다.

막차를 타고 도착하는 역, 긴 삶을 마감하며 포근하게 떠나라는 뜻일까. 간판 아래 ‘세상은 음양으로 나뉘고, 그리움은 마음 속에 있나니(회념재심간(
阳阴两天地, 怀念在心)’라 적혀있다. 인생철학이 서민들의 생활에 묻어있고, 장사에도 활용하는 용기 앞에 옷 매무새 한번 새겨야 하지 않을까.

큰길과 골목길을 헤집고 다녔더니 다시 허기가 찾아온다. 때마침 처우더우푸가 다시 코신경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용기가 필요했다. 다시 결단하고 중국말로 입을 열기만 하면 된다. 중국을 알고자 전국을 무대로 삼아 떠난 발품 앞에 터부와 선입견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 접시 얼마에요? (一碗多少
?)”
“량콰이(两块
), 한 접시 4개”

소스 뿌려? 물어본다. ‘부야오(不要)’ 냉큼 말하고 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하나 먹을 때 코를 막고, 둘 먹을 때 잘 살펴보고, 셋 먹을 때 맛을 음미하고, 넷 먹을 때 이르러 포만감까지 느꼈다. 사람을 사귈 때 동고동락처럼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래 눈 코 입, 온몸으로 익숙해지면 친구가 되지 않을까. 어느덧 중국에서 먹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하니 180일의 긴 중국여행이 더 없이 편안해질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샹츄 고성 입구


샹츄는 삼상의 발원(三商之源)이다. 상족(商族), 상나라(商朝), 상업(商). 상나라 시대 상족의 우두머리이던 왕해(王亥)는 과잉 생산된 물품을 이웃나라와 교역했던 최초의 사람이라 한다. 이 고성 마을 상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그냥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고성 위에 올랐다. 마을이 점점 저물어간다. 시골 장터에서 놀다 보니 해 지는지도 몰랐다. 포근한 정서가 잘 진열된 정감 어린, 역사의 현장에 푹 빠진 하루였다.

    

[동] 화상의 발상, 상업의 기원 샹츄 고성의 옛스러움과 시끌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