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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10] 서주 사자산 초왕릉

▲ 힘차게 뛰어오를 듯한 동상

4월 29일. 취푸(曲阜) 한실호텔에서 육계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10시 경에 치처잔(汽车站, 버스터미널)으로 갔다. 다음 도시가 쉬저우(徐州)인데 그곳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곳 텅저우(滕州)로 가서 갈아 타라고 한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일단 표를 샀다. 중국에서 버스를 타려면 셔우퍄오추(售票处)에서 표를 사고 졘퍄오(检票)하는 곳을 거쳐, 출발할 버스로 가게 된다.

버스에 오르면서 다시 차장에게 표 확인을 받게 된다. 여러 번 표를 꺼냈다 넣었다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다소 중복이긴 하지만 착오가 발생할 여지를 줄이게 된다. 차장이 표를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표에 대한 여러 정보가 프린트가 안 된 것이다. 세상에나.

하여간, 텅저우 가는 거지? 하길래, '어' 했더니 타란다. 12시에 정확하게 도착한 텅저우는 예상과 달리 교통의 요지였다. 온 사방으로 떠나는 버스들이 줄 지어 있었다. 쉬저우 가는 것도 당연히 있겠구나. 

다시 표를 사서 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프린트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내가 외국인 것을 알아보고는 친절하게도 차 번호까지 적어준다. 고마운 일이다.

쉬저우에는 오후 2시 30분에 도착했다. 쉬저우는 산둥(山东) 성과 허난(河南) 성 중간에 쏙 들어와 있는 쟝쑤(江苏)성 서북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자료를 찾다가 쉬저우에 초나라 왕릉이 있다고 해서 계획에 넣었던 도시이다.

버스에서 내려 숙박할 곳을 찾았다. 마침 티에루삔관(铁路宾馆)이 보인다. 호텔 방의 상태를 보러 올라갔다가 와서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여권을 보여줬더니 갑자기 한국인이냐 하면서 숙박이 안 된다고 한다.

작년에 싼시(山西) 타이위엔(太原)에서도 잤는데 무슨 소리냐고 '너 정말 웃긴다'고 했더니 어딘가 전화를 한다. 상관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외국인 여권을 보고 덩지(登记)하기 귀찮아서 그러는 것이다.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쉬저우만 해도 큰 도시인데 호텔 푸우타이(服务台)의 이 아가씨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다.

영어로 써야 하고 여권번호에다가 비자번호, 심한 경우 한국의 주소와 연락처까지 적어야 한다. 외국인을 위한 등록 용지가 있는가 본데 그걸 꺼내더니 적으라고 한다. 일일이 다 적었더니 그걸 보고 다시 자기네 정식 용지에 베낀다. 이 무슨 복잡한 코미디인가.

방에 들어와 곰곰이 생각하니 작년에 갔던 타이위엔은 디엔리삔관(电力宾馆)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타이위엔에 티에루삔관이 없었으면 거짓말 한 셈이 될 뻔 했다. 중국에는 역 앞에 꼭 이 호텔이 있다. 낯선 곳에서라면 이런 곳도 나쁘지 않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철도청이 운영하는 호텔인데 안전하며 평범하다.

부근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택시를 탔다. 쉬저우 시내에 사자산이라는 아담한 언덕 같은 산이 있고 그 곳에 초나라 왕릉이 있다. 그래서 사자산 초왕릉이다.

▲ 말 탄 왕의 동상이 전시관 앞에 버티고 선 모습


입구에 들어서니 말과 함께 웅장하고 날아오를 듯 서 있는 동상이 멋지다. 그래서 초패왕 항우의 동상이라 생각했다. 사자산초왕릉은 유방이 세운 통일국가인 한나라 시대(西汉)의 제3대 초왕(楚王)인 유무(刘戊)의 왕릉인 것이다. 그러니까 약 2100년이 넘는 무덤인 셈이다.

이 왕릉은 1994년에 발굴된 것이라 하는데 그 구조가 독특하고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이전에 보지 못하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무덤에서 나온 출토물에는 금(金), 은(银), 동(铜), 철(铁), 옥(玉), 돌(石) 등으로 된 2천여 점의 유물과 함께 왕의 유골이 발견되어 전시되고 있다.

▲ 많은 유물과 왕 유골이 발견된 초왕릉의 깊고 높은 전경


깊고 좁은 무덤 중앙 길 양 옆 각 석실마다에는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붉고 약한 조명 때문에 자세히 보기가 어려워 좀 지루하긴 했다. 눕혀진 상태로 유골이 있고 가장 안쪽에는 유골을 토대로 복원한 초왕의 동상이 있다. 신장이 1.72미터에 나이는 35~37세로 추정한다고 쓰여 있다.

▲ 무덤 가장 안쪽에 있는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던 고급 악기인 편종


▲ 당시의 유골이라 함

▲ 유골을 근거로 복원한 초왕 유무의 동상

사자산초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재미 있는 것이 있다. 소위 '위빠오(玉豹)의 미스터리'이다. 대리석으로 만든 두 마리의 표범 동상을 말한다.

▲ 초왕릉에서 출토된 옥표(玉豹)


보통 무덤에는 생전에 무덤 주인이 애지중지하던 보물이나 좋아하던 동물의 형상, 또는 사용하던 그릇 등을 함께 매장하는데 표범 동상은 아주 특이한 경우라는 것이다.


동영상 : 사자산 초왕릉의 독특한 능 구조




당시의 왕이나 귀족이 아무런 연고와 이유 없이 묘지에 동물 형상을 매장했을 리가 없는데 사뭇 그 이유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으니 미스터리인 셈이다. 그렇게 큰 무덤은 아니지만 베이징(北京)의 명십삼릉이나 난징(南京)의 명효릉만 봤을 뿐이나 그 독특한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 동상의 뒷모습과 나부끼는 깃발들


무덤을 나오면서 보는 초왕의 말 탄 동상은 영락 없이 항우를 연상하게 한다. 비록 유방에 패해 초패왕의 이름만 역사에 남기고 사라진 영웅이지만 남자답고 씩씩하며 걸출한 인물임에 틀림 없지 않은가. 유방이 숙하, 장량, 한신 3인방의 위대한 스태프의 지원으로 천하를 다시 통일했건만 영웅의 풍모를 가졌다고 하기에는 항우에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노란 깃발이 쉬저우에 있는 초왕릉의 독특한 무덤 구조에 대한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남길 듯하다. 어릴 적에 읽는 전쟁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 바람처럼 연상되는 진군의 깃발만큼 강렬한 느낌도 없을 것이리라.

▲ 비에 젖은 서주의 밤 거리 모습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비가 올 기세다. 게다가 타이산(泰山) 등정과 하산, 취푸(曲阜)에서의 예기치 않던 술자리까지 좀 혹사했더니만 감기 기운이 있다. 샤워하고 약 먹고 누우니 금방이었다.


후기

사실 처음에 별 생각없이 이 왕릉이 항우의 무덤인 줄 알았다. 그렇게 멘트까지 했는데 며칠 지나 자료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전 자료조사를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던 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