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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20] 핑야오 고성에서 쌍림사까지

▲ 쌍림사 가는 길
ⓒ 최종명

5월 10일. 아침에 일어나 짐을 싸고 자전거를 빌렸다. 하루에 5위안. 바퀴에 바람이 튼튼해야 한다고 주인이 여러 대 있는 자전거 중에서 하나를 골라 준다. 주인은 핑야오구청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솽린쓰(双林寺)라는 오래된 불교사원이 있다고 적극 추천한다.

한적한 동네니 자전거 타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취재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지도를 보니 찾기 쉬웠다. 기차역으로 가서 표지판이 보이면 계속 직진만 하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표지판이 사라졌다. 삼거리 길이 나오고 환다오가 보인다. 물어볼 사람도 없다.

환다오 앞에 보니 표지판이 보인다. 문제가 이 표지판이었다. 화살표 방향으로 열심히 바퀴를 굴리고 또 굴렸다. 10분이면 도착할 듯한데 영 감감 무소식이다. 뭔가 이상할 때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헉~ 잘못 왔다.환다오에서 다시 삼거리로 가서 전혀 차량 흐름이 없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게 뻗은 길. 그나마 맑은 공기와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길에서의 여유를 푹 즐기는 찰나.자전거 앞바퀴에 펑크가 났다. 힘주어 애써도 이전 속도가 나오지 않아 살펴보니 어느 새 바퀴가 공기를 달란다.

이 맑은 공기가 무지하게 많은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이때부터 고역의 시작이다. 펑크가 난 자전거도 굴러는 간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지만.사실 시간이 몇 배 더 들었다. 천천히, 약간 덜커덩거린다. 그래도 도로 주위 가로수와 부는 바람이 상쾌하다. 서두를 일도 없으니 마음을 비우게 되고 펑크 난 자전거 여행도 별미다.

▲ 쌍림사 안에서 본 입구
ⓒ 최종명

솽린쓰는 북제(北齐)시대 서기 571년에 보수된 사원으로 1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아주 유구한 사원이다. 솽린스란 사원의 이름은 북송시대에 이르러 개명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 입구에 전시된 쌍림사 천수천안관음상을 모방한 가짜
ⓒ 최종명

천축승경(天竺胜境)이라 쓰여 있는 티엔왕디엔(天王殿)은 아예 쇠창살이다. 창살 사이로 본 불상은 그 역사의 무게가 느껴질 정도로 낡아 보이지만 자태를 미루어 볼 때 꽤 훌륭한 예술성이 엿보인다. 명나라 때 다시 세워진 건물인데 안에는 사대천왕과 팔대보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창살에 가로 막힌 불상
ⓒ 최종명

스지아디엔(释迦殿)은 석가모니 불상이 주인이다. 좌우에 문수(文殊)와 보현(普贤)이 보좌하고 있다. 벽면에는 불교를 전파하던 20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꾸며져 있다. 마당에는 종루와 고루가 여느 사원처럼 좌우에 배치돼 있기도 하다. 따시옹빠오디엔(大雄宝殿) 동쪽에 티엔포디엔(千佛殿)과 서쪽에 푸사디엔(菩萨殿)이 나란히 서 있다. 특히 푸사디엔에는 그 유명한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观音)이 있다.

멀리서나마 찍은 사진을 보더라도 학생들이 들어가는 곳 앞에 창살이 있고 안쪽에 관음상이 보인다. 이곳은 주로 명나라 때 건축된 유물들이라 한다.


▲ 보살전에 있는 진짜 천수천안관음상
ⓒ 최종명

솽린쓰에 학생들이 엄청 많다. 물어보니 여행 가이드 양성학교 학생들이 실습을 나온 것이다. 웅성웅성 모여 외우고 틀린 곳 서로 지적하고 웃고 떠드는 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솽린쓰를 소개 좀 해달라고 하니 한 학생이 적극 나섰다. 그러니 학생들이 모여든다.

이제 20살인 치엔웨이씽(钱卫星)은 멈추지도 않고 계속 이 사원을 설명하고 있다. 그만 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이 친구에게 준비해 간 한국전통문양의 책갈피를 주니 다른 아이들도 떼를 쓴다. 다 줄 수도 없고. '안녕하세요'를 가장 잘 따라 하는 사람에게 하나 더 주겠다고 했더니 10여 명의 학생들이 한마디씩 했다. 한 학생에게 주고 얼른 돌아 나왔다.

앞으로도 5개월 동안 책갈피를 나눠주려면 모자란다.밖으로 나와 다시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맡기는 데도 5위안을 받는다. '이 자전거 타고 가기 힘들다'고 계속 수리하라고 하는 걸 모른 척했다. 덜컹거리며 갈 거야. 곧 후회하기는 했다. 그 이후 일주일 동안 엉덩이가 아파서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하여간 펑크 난 자전거 타지 마세요. 1시간이나 걸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어제 못다 본 곳을 갈 생각이다. 자전거 때문에 고생 많았다고 엄살을 좀 세게 부렸더니 다른 자전거로 바꿔준다.


▲ 복원되도 여전히 복원해야 할 것 같은 천주교당
ⓒ 최종명

핑야오에 천주교 성당이 있다. 지금의 성당은 1987년에 다시 만들어 복원한 것이라 하는데 이전에는 이탈리아 사람이 세운 성당이었는데 문화혁명 때 다시 완전히 훼손됐다고 전한다. 이어 자전거를 타고 한가운데만 아스팔트가 나 있는 가파른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핑야오에 있는 가장 큰 도관(道观)인 칭쉬관(清虚观)에 도착했다.


▲ 원래 이름인 '태평흥국관' 현판
ⓒ 최종명

칭쉬관은 원래 이름이 타이핑관(太平观)으로 당나라 때인 657년에 만들어졌다. 이후 송나라 때인 106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원나라 때에는 타이핑씽궈관(太平兴国观)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가 청나라 때에 다시 칭쉬관으로 바뀌었다니 우여곡절이 많은 사원이다. 사원의 이름은 그 시대의 통치관과 밀접하니 미루어 짐작이 간다.

칭쉬관은 핑야오 현 박물관이라 간판이 걸릴 정도로 지역의 문화재가 많다. 당나라 시대 이후 조각상, 비석들이 꽤 많다. 흥미를 끈 것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유행했다는 샤꺼씨런(纱阁戏人)이다. 천으로 만든 무대의상을 입은 모형들이 각 상자마다 연결돼 있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공연인 셈이다.

상자 안에 의상을 비롯해 종이, 진흙, 나무, 가죽, 헝겊 등을 재료로 한 수공예와 회화, 조각 예술이 일체된 민간 예술이니 지금 공연 장면을 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 민간예술 샤꺼씨런
ⓒ 최종명

청나라 말기인 1906년에 이르면 모두 36개의 씨런(戏人)이 제작됐는데 상자의 크기는 70mm, 씨런은 50mm 정도의 크기라 한다. 지금은 28개의 씨런이 보존돼 있다고 한다. 칭쉬관을 나와 어제부터 꼭 보려던 후이우린(汇武林) 무술관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여느 퍄오하오와 그다지 달라 보이지는 않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무술을 연마하던 흔적이 역력하다.


▲ 회무림 내부 훈련장
ⓒ 최종명

태극무늬가 있는 팔괘장을 비롯해 각 무술 파벌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도 되어 있다. 뒷마당으로 가보니 한가운데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고 팔괘가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무기들도 전시돼 있고 벽에는 무술을 연마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다시 숙소인 '하모니'로 돌아왔다. 토마토와 계란을 함께 요리한 지단차오씨홍스(鸡蛋炒西红柿)와 양저우차오판(扬州炒饭)을 주문해 배불리 먹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주인아저씨, 아주머니와 인터뷰도 하고 벽면에 다녀간 흔적도 남기며 잠시 쉬었다. 떠나려는데 한 가지 궁금했던 것이 생각났다. 핑야오 곳곳 식당 유리창마다 써있는 글자가 도대체 무엇인지.

어제부터 내내 저게 도대체 병음은 뭐고 무슨 뜻일까 궁금해 물어본다는 게 이제야 생각이 난 것이다.그것은 소위 지어 부르는 말이라는 주어웨이위(作谓语)이다. 여러 가지 한자를 하나로 합쳐 쓰고 부르는 말. 짜오차이진빠오(招财进宝)를 하나로 합쳐 쓴 글자가 핑야오 유리창마다 붙어 있다. 그 뜻은 중국사람들이 '돈 많이 버세요'라고 자주 쓰는 말인 꽁시파차이(恭喜发财)와 비슷하다. 핑야오에서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것을 배웠다.


▲ 招财进宝, 네 글자를 합쳐 하나가 된 글자
ⓒ 최종명

이런 글자들로는 푸뤼셔어싼씽(福禄寿三星)도 있다. '푸'는 '푸(蝠)'와 '뤼'는 '뤼(鹿)와 음이 같은 씨에인(谐音)이고 여기에 셔우션라오(寿仙老)라는 3명의 선인을 합쳐 장수의 상징이니 곧 '오래 오래 살라'는 뜻이라 한다. 주인이 인공비가 온다고 한다.

그렇다. 중국은 인공비를 내리게 하고 있다. 비를 맞으며 남문으로 나와 차를 타고 핑야오 기차역 앞에서 타이위안(太原)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내리는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고 있다. 베이징에 있을 때 우리는 인공비를 '후진타오의 비'라고 불렀다. 저녁 때만 되면 비가 오니 나가서 놀기가 불편해서 '후진타오가 저녁 먹다가 기분이 나빠 명령했다'는 농담을 담아서 말이다.

하여간 핑야오를 다 구경했으니 씨에씨에주씨(谢谢主席)!타이위안에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부근 음식점에서 아주 맛있는 걸 발견했다. 물론 잘 적응이 안 되는 사람이 많겠지만 내 입맛에 딱 맞는, 양고기를 넣은 순대국 비슷한 자거지아러우(杂割加肉)라는 음식. 후후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