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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28] 비쟈산

5월 22일 겨우 5시간 잤는데도 10시간 이상 잔 듯하다. 6시 40분에 일어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침대도 굿인데 아침도 엑설런트. 진저우 삐하오[碧豪] 삔관이다. 체크아웃, 터미널[汽车站]로 갔다.

다음으로 이동해야 할 행선지는 따렌[大连]이다. 미리 표를 확보해야 마음이 놓인다. 표 파는 아주머니가 참 친절했다. 너 한국 사람이지? 3시에 출발하는 표 있어. 어떻게 알았지? 척 보면 안다고 한다. 글쎄 친절한 사람은 사람도 잘 살펴보나?

터미널에서 짐을 맡기려고 둘러보다가 가게 아저씨에게 물건 보관하는 지춘추[寄存处]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맡아주겠다고 한다. 5위엔 주고 단퍄오[单票], 즉 보관영수증 달라니 너 얼굴을 내가 아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한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래도 불안하긴 했다. 가방 안에 돈 있어? 없는데. 그럼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한다.

비쟈산[笔架山] 행 버스가 보였다. 언제 출발하나? 지금 바로. 오늘 타이밍이 나쁘지 않군. 버스는 남쪽으로 계속 달린다. 날씨는 약간 흐리고 조금 춥다. 1시간만에 딱 도착이다. 다시 진저우로 돌아가는 버스도 10분 간격이라고 한다. 오늘 교통편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듯하다.

입장권을 사고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 광장을 지났다. 광장 끝 무렵에 섬으로 이동하는 배가 사람들을 태우고 있는데 다소 위험천만이다. 바다와 육지에 나무토막 계단을 딛고 배에 올라탔다. 12명이 정원인 쾌속정이다. 배는 시동을 걸고 서서히 달리다가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내달린다. 불안할 정도로 빠르게. 덕분에 채 3분만에 섬에 도착이다. 진행방향 오른쪽에 앉았더니 거대한 항구만 실컷 구경했다.

  
비쟈산 입구
ⓒ 최종명
비쟈산

섬은 아담한 느낌을 준다. 국가 AAA급 관광지라 깨끗하게 정돈된 느낌이긴 한데 산을 오르니 주변이 온통 민간종교의 색채가 강하다. 도교, 불교가 혼재가 된 느낌도 준다. 게다가 주역과 보살을 근거로 점을 치는 곳도 곳곳에 있기도 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바다 쪽으로 전망이 확 펼쳐진다.

  
오녀궁 앞
ⓒ 최종명
오녀궁

우뉘궁[五母宫]에 이르니 디엔무[电母], 레이공[雷公]과 같은 불상들이 낯설다. 도대체 도교인 듯한데 정체를 잘 모르겠다. 다만, 민간신앙 색채를 강하게 풍긴다.

  
오녀궁의 전모상과 뇌공상
ⓒ 최종명
오녀궁

산길 한 옆으로 사람 이름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용밍즈줘화[用名字作画]가 있다. 그림 한 장 그려주는데 10위엔 받는다. 중국 아가씨들도 자기 이름을 새기면서 흥미로워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본 기억이 난다. 이름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흥미로운데 사실 그 그림이란 것이 새, 나비, 나무, 해 등등이 들어가고 색채가 영 원색적이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반고가 하늘을 연 곳
ⓒ 최종명
반고

오히려 바다를 배경으로 파란 바탕에 붉은 글씨의 돌 비석이 더 편하다. 그리고 산 중턱 작은 광장에 '반고가 하늘을 연 곳'(盘古改天之处)라는 글씨가 더 멋지다. 반고는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데 신화 속 인물로 천지를 창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오랜 상고시대 혼돈의 시기일 때 문득 반고가 나타나 이곳에 있는 두 섬에 각각 발을 딛고, 마치 두 개의 붓걸이[笔架]처럼 섬 허리를 짓밟는 모습으로, 큰 도끼로 혼돈의 물건을 두 동강 냈다고 한다. 그 하나는 하늘이 되고 하나는 땅이 됐으니 바로 천지를 창조한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반고의 모습을 연상해 지은 섬 이름이 바로 비쟈산인 것이다.

  
삼청각
ⓒ 최종명
삼청각

섬의 중심은 싼칭거[三清阁]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각 층마다 불상들이 원을 그리며 나란히 앉아 있다. 가장 위층에는 역시 반고의 동상이 있는 방이 있다. 도저히 사람의 형상이라 보기 어려운 모습이라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훼손된 것인지 알기 힘들다.

  
삼청각의 반고 상
ⓒ 최종명
반고상

각 층마다 이름도 낯선 따오런[道人], 티엔준[天尊], 티엔쥔[天君]들이 있다. 각각 그 위상이 다를 듯한데 너무도 생경하다. 더 아래로 내려오면 옥황상제가 나타난다. 대체로 위층부터 그 위상이 높다면 옥황상제는 한참 아래인 듯하다. 그리고 가장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미륵불과 함께 석가모니 동상도 있다.

싼칭거 마당 옆에는 태극문양과 팔괘가 있는 작은 정자가 있는데 역사유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정자 안에 걸려 있는 종을 치는데 돈만 내면 된다.

  
삼청각 앞에 있는 정자와 종, 태극과 팔괘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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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각

다시 바다 끝 쪽으로 가면 신성한 거북이가 출현했다는 절벽이 나타난다. 절벽 암석에 션꾸이추하이[神鬼出海] 4글자를 끔찍하게 새겼다. 글자를 가까이 보려고 좀 내려갔는데, 위험해서 되돌아왔다. 아주 가파른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섬 모습이 사뭇 성스럽다. 사선으로 깎은 듯한 절벽이 바다 끝까지 일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인상적인 곳은 더 있다. 바로 리씨엔탕[狸仙堂]이라고 조그맣게 팻말이 꼽혀 있는 아담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 속의 배치나 모습은 절대 아담하지 않고 음산하기도 하고 생경하기도 하다. 팻말이름처럼 너구리[狸] 소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곳에 너구리를 섬기는 전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붉은 리본을 나뭇가지에 걸고 작은 향로에 향을 피우며 민간신앙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다녀가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비쟈산은 참 독특하다. 도교 및 불교의 흔적이 있는데다가 반고의 전설이 있고 신성한 거북이가 출몰하며 너구리 소굴이란 이름의 사당도 있으니 말이다.

서둘러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비쟈산의 야릇한 매력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가야 하니 바쁠 듯하다. 배 타는 곳으로 가기 위해 산을 빠르게 내려오는데 멀리 항구와 바다가 보인다. 언뜻 보니 섬과 육지 사이를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쟈산의 명물이라는 바닷길이다.

  
비쟈산의 조석표
ⓒ 최종명
비쟈산

올라올 때 보지 못한 챠오씨뱌오[潮汐表]를 자세히 봤다. 비록 영어스펠링은 틀렸지만 조수간만의 차를 드러내는 시간은 틀리지 않은 듯하다.

  
바닷길
ⓒ 최종명
바닷길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비쟈산 앞바다의 바닷길이다. 사람들이 벌써 신나게 바다를 걷고 있다. 자갈 사이에 드러난 조개들을 잡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환호성도 지른다. 넓은 길은 아니지만 충분히 양 옆 바다를 바라보며 걷기에 충분하다.

따지고 보면 신기할 것은 아니지만 바닷물이 만든 작은 길이 잠겼다가 나타났다가 한다고 생각하니 이 또한 재미있는 구경거리라 할 수 있다.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시간표를 알고 온 것은 아니니 말이다.

  
바닷길과 비쟈산
ⓒ 최종명
바닷길

바다를 건너 육지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그런데 끝자락까지 가서 자세히 보니 점점 물이 차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쉽지만 돌아가야 한다.

다시 쾌속정을 탔다. 역시 빠르다. 육지 쪽에도 바닷길이 약간 남아 있는지 사람들이 줄지어 바다 위를 걷고 있다. 배가 바닷길 쪽으로 정박한다.

육지와 바닷길 그리고 비쟈산이 한 줄로 서 있는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진저우[锦州]에서 참 색다른 풍경과 만난 기분이 오래오래 남은 듯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진저우 시내로 돌아왔다. 은근히 걱정이 되던 짐을 아무 탈 없이 되찾았다. 따렌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데 약간 하늘이 흐리고 비가 올 태세다. 5월 22일 오후 3시 따렌행 버스에 몸을 싣고 다시 기나긴 중국발품취재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