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5] 양산박 송강과 방랍 민란의 송나라 ② ▲ 신중국 초대 문화 부총리 곽말약, 송나라 민란 방랍을 기념해 그가 사망한 동굴에 기념 친필을 썼다. 사진은 곽말약의 친필인 자금성 후문 '고궁박물원' ⓒ 최종명 북경 십찰해(什刹海) 부근 후통 골목에 곽말약기념관을 가면 문학가이자 역사학자로서 엄청난 저작을 남기고 간 그의 공적에 감탄한다. , , 에 두루 능통하고 시, 소설과 희곡 작품은 물론이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도 탁월해 번역서도 많다. 중국 최초의 유물사관에 따라 집필한 나 , 등은 그의 천재적 지식인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공산주의자인 곽말약(郭沫若)은 1949년 신중국 정부에서 중화전국문확예술회 주석으로 선임됐으며 중국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를..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4] 양산박 송강과 방랍 민란의 송나라 ① 사천을 예로부터 천부지국(天府之国)이라 한 까닭은 비옥한 토지, 풍부한 자원으로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지녔기 때문이다. 성도(成都)에서 서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는 기원전 진소왕(秦昭王)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로 세계문화유산인 도강언(都江堰)이 자리잡고 있다. 평원과 분지로 이뤄진 지형에 천연의 수리시설이 형성돼 있어 축복 받은 땅이라 할만하다. 빈부 격차가 너무 커 마음이 너무 아프니, 지금 내가 너희를 위해 빈부를 공평하게 하리라.- "吾疾贫富不均,今为汝均之" 청성(青城, 도강언)의 농민 출신 왕소파(王小波)는 차 판매로 생계를 잇고 있었으나 송(宋) 조정은 차, 비단, 무명의 국가독점을 실시하자 살 길이 막막해졌다...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3] '계림'과 '황소'로 인해 망한 당나라 ② 소금업자 황소는 왕선지 봉기에 호응해 조주(曹州, 산동 하택菏泽)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황소의 고향 원구(冤句)는 진나라가 현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지만, 역사 기록마다 위치를 정확하게 비정하지 못해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다. 염상(鹽商) 가정에서 태어난 황소는 승마와 활 솜씨가 뛰어났으며 필묵에도 도통했다. 송나라 역사가인 장단의(张端义)가 집필한 당송 시대 인물에 대한 기록인 에 따르면 겨우 5세에 이미 시 짓는 재주가 뛰어났다. 몇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거듭 낙방하고 수도 장안을 떠나며 시 한 편을 남겼다. 이니 과거 낙방 후 자신의 마음을 국화에 빗댄 것이다. 이 시는 마치 그의 운명을 '예언'처럼 노래..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2] '계림'과 '황소'로 인해 망한 당나라 ① ▲ 당나라 말기 절강 섬현에서 사염 밀매로 생계를 유지하던 구보는 상산에서 살신의 정신으로 민란을 일으켰다. 사진은 구보의 고향과 아주 가깝고 20세기 국민당의 장제스의 고향이기도 한 절강성 계구 마을의 시장. ⓒ 최종명 "당(唐)은 황소(黄巢)로 인해 망(亡)하고 그 화(祸)는 계림(桂林)에 있다." - 당나라 말기 최대 농민전쟁인 황소 민란이 일어나기 전 그 화근이 된 사건을 계림에서 봉기한 방훈(庞勋) 민란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방훈보다 10년 앞서 절강 일대에 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구보(裘甫)가 있었으니 당나라를 침몰시킨 진정한 화근이자 최초의 항거였다. 당나라 말기 혼란, 피 끓는 전쟁의 서막이다. 당나라 말..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1] 수나라 민란 장백산과 와강채 ② ▲ 하북 지역에서 민란을 일으킨 두건덕의 고향은 고성으로 서커스로 유명한 오교 부근이다. 사진은 오교의 시장 모습. ⓒ 최종명 두건덕(窦建德)은 장남(漳南, 하북 고성故城)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약속을 천금처럼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빈곤한 동네에 살며 사람들이 부모 상을 당하면 밭을 갈다가도 즉시 달려가 장례를 도왔으며 필요한 물품을 내주기도 해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이런 성품 덕분에 마을 이장을 하기도 했는데 두건덕의 부모 장례식에 천여 명이나 찾아와 예물을 주려고 했으나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생각해 모두 사절했다고 에 기록돼 있다. 오늘날에도 본받아야 할 인품이다. 고구려 침공에 대한 전국적 반발이 거세지고 홍수가 발..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0] 수나라 민란 장백산과 와강채 ① ▲ 중국은 그냥 산이라고 하는 것도 산맥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장백산은 협의로는 백두산이지만 백두산을 포함한 기나긴 산맥을 광의로 장백산이라 부르는 것일 뿐이다. 산동의 장백산은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계획으로 인해 발발한 민란의 근거지이다. ⓒ 최종명 백두산, 중국은 장백산(长白山)이라 부른다. 장백산이라 불린 것은 12세기경 여진족의 금나라가 중원을 장악하고 있을 때부터였다. 북위 때에는 도태산(徒太山)이었고 당나라는 태백산(太白山)이라 불렀다. 서안 남쪽 진령산맥(秦岭山脉)의 주봉을 태백산이라 한다. 우리나라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과 이름이 같다. 당나라 시대에는 지금의 백두산이 태백산이기도 했다. 산 이름만 놓고 보면 역사 이야..
북경 자금성, 고궁박물관에 들어가면 늘 천안문광장을 가로질러 오문을 통과해 신무문까지 일직선으로 달린다.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의 웅장함에 질리고 건청궁, 교태전, 건녕궁의 정교함에 탄성을 지르고 어화원의 나무와 정자 그리고 가짜로 만든 산을 둘러보고는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그렇게 빠르게 1시간을 보내고 고궁을 다 봤다고 한다. 고공을 설명하기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 중국 인솔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그만큼 설명을 듣자면 할말도 많고 적어도 명나라 이후 역사와 황실문화에 대해 해박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정작 고궁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 중 한 곳을 그냥 지나치고 만다. 바로 구룡벽. 아홉마리 용을 새긴 화려한 벽을 보려면 옆길, 즉 건청문 앞에서 오른쪽(동쪽)으로 빠져야 한다. 경운문(景运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