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공중초원, 보기 드문 날씨입니다. 햇살을 따라 약 30분 가량 승마를 하고 돌아옵니다! 양떼도 거닐고 풍력 발전기가 멋진 배경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공중초원의 일몰은 환상인데 쾌청한 날씨라면 더욱 화려합니다. 몇번씩 다녀온 공중초원인데 이렇게 붉은 노을로 해가 떨어지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저녁 먹고 폭죽과 함께 한밤의 여운을 즐기는 캠프파이어를 벌렸습니다. 비록 사진에는 담기 어려웠지만 밤 하늘을 수놓은 별의 향연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공중초원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납니다. 8월 15일 광복절 아침 버스를 타고 약 5시간을 이동합니다. 하북성 울현 해발 2천미터 고원에 위치한 초원으로 태행산 자락에 위치합니다. 가는 도중에 이현에 위치한 청나라 황제의 능원 중 하나인 청서릉을 거쳐갑니다. 청나라는 동릉과 서릉으로 나뉘어 황제의 능원을 조성한 역사를 남겼는데 옹정제의 태릉 주위를 가볍게 산책해봅니다. 여우가 넘나드는 협곡을 앞에 두고 그늘을 찾아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비호욕을 드라이브로 지나가노라면 멋진 협곡과 푸른 하늘이 참으로 황홀합니다. 드디어, 공중초원을 들어서면 광활한 풍광과 초원의 빛을 머금은 야생화들로 눈이 즐겁습니다. 황토가 풍기는 비포장도로조차 초원의 경치를 더욱 돋궈줍니다. 초원 산장 주방에 '옷 벗은' 양 한마리..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7] 도교와 황건적의 민란 ② ▲ 도관(도교사원)에서 삼관대제를 봉공하는 삼관전은 아주 많다. 재물신을 모시는 전각과 함께 나란히 배치돼 있을만큼 인기가 좋다. 사진은 북경 백운관 내 삼관전. ⓒ 최종명 도교에 종파가 많은 것은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도교의 발생 시기에 천사도 정일파와 함께 교세를 확대한 태평도가 있다. 오나라 땅 낭야(榔琊, 산동 동남부) 사람으로 도술과 의술로 사람들의 병환을 고치던 중 태행산 동쪽 곡양(曲阳, 하북 보정保定)에서 우연히 신서(神书)를 얻은 우길(于吉)이 도교 경전 을 집필했다. 우길은 절강 소흥(绍兴) 등지에서 민심을 얻자 손책(孙策)의 미움을 받아 살해 당하는 인물로 소설 에도 등장한다. 장각은 을 경전으로 ..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6] 도교와 황건적의 민란 ① ▲ 도교는 노자의 을 종교화했으며 백성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도교사원의 최고 신앙인 삼청전에는 옥청, 상청, 태청이 봉공돼 있다. 이중 태청인 도덕천존은 노자를 우상화하고 있다. 사진은 산서 면산 도교사원 대라궁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지점에 있는 태청 도덕천존의 조각상. ⓒ 최종명 장강은 동쪽으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풍랑에 휩쓸려 영웅은 간 곳 없네.성공과 실패를 허공에 묻겠는가? 청산은 의구하고 석양은 언제나 붉네.백발의 어부와 나무꾼은 은거하며 추월과 춘풍에 젖어가니탁주 한 사발에 주거니 받거니 고금의 온갖 풍상을 웃음 담아 이야기하네. 나관중(羅貫中)은 에서 낭만적인 송나라 곡조인 을 앞세워 영웅의 서사를 암시하고 있다. 120회 마지막..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5] 녹림과 적미, 농민의 야망이 되다 ② ▲ 적미군의 초기 근거지 태산 정상 부근의 석벽 조각. '노신판화상'을 수상한 유명 서예가 라이샤오지(赖少其)의 작품. 약간의 의역을 붙이면 "태양이 환하게 나타나니, 산들이 모두 동요하네. 검을 빼들고 미친 듯 노래하니, 뜻을 세워 크게 나아가리."는 의미이니 참으로 '민란' 정서와 맞다. ⓒ 최종명 에 따르면 신나라의 '법령은 괴로울 정도로 가혹했고, 백성들은 온갖 금지령에 손사래를 쳤으며, 생계를 잇기조차 힘들었다. 노역도 몹시도 고달픈 지경이었으며 논에는 메뚜기조차 가물었으니 부자나 빈자 모두 다를 바 없어 구분조차 힘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왕망이 통치하던 서기 14년, 낭야(琅琊) 군 해곡(海曲, 일조日照) 현성에서 허드렛..
산사나무 아래에서의 사랑 [山楂树之恋] 중국 5세대 감독 장이머우는 6세대적인 감성으로 만든 영화가 있다. 에 이후에 그래도 봐줄만한 영화 하나가 2010년에 제작됐다. ‘산사나무 아래’라고 영화 제목을 번역했지만 이라고 하는 게 더 좋아 보인다. 미국 화교 작가 아이미(艾米)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원작이다. ‘사상 가장 순수한 사랑 소설’이라는 평판을 얻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꽤 알려져 있다. 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 학교를 벗어나 농촌에 가서 일하고 공부하는 ‘개문판학(开门办学)’ 시절에 생겨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가 개봉되자 새로운 여배우 캐스팅에 예리한 눈매를 가진 장이머우의 새로운 머우뉘랑(谋女郎)이 등장했다고 열광했다. 그만큼 앳된 얼굴과 진솔한 느낌으로 여주인공 ..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4] 녹림과 적미, 농민의 야망이 되다 ① ▲ 왕망의 고향 한단의 황량몽 사원. 한단지몽 주제의 벽화.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주공의 나라를 흠모해 개혁을 도모했으나 '하룻밤의 꿈'처럼 허무한 실패의 길을 걷고 있었다. ⓒ 최종명 왕망, 주공을 꿈 꾸다 중국 역사에서 칼부림 없이 황제를 찬탈 또는 선위로 역성혁명을 이룬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왕망(王莽)과 무조(武曌)다. 무조는 당나라 시대 7세기경 주周(역사에서 무주武周)를 국호로 통치한 여성 황제 무측천(武則天)이고 왕망은 1세기경 한나라를 앞뒤로 나누며 신(新)나라를 세워 좌지우지했다. 무측천이 수렴청정의 지위를 이용해 양위를 강제해 나라를 세웠고 권력을 잃고 태상황으로 물러난 후에도 황후로서 장례를 치렀다. 이렇듯 여성이..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3] 진승과 오광의 대규모 기층 민란 ② ▲ 진승 민란군은 수도로 진격했으나 려산의 죄수까지 동원한 진의 마지막 장수 장한 부대와 싸워 패퇴했다. 려산은 한나라를 건국한 후 수도로 정한 장안(지금의 서안)에 있는 진시황 능원과 병마용 뒷산이다. 병마용은 지금 '진시황과 무관하다'는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 최종명 왕을 자처하고 망우초 죽을 먹다 진승과 오광이 봉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가담항설(街談巷說)'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거리나 마을마다 번져 말(言)은 말(馬)보다 빨랐다. 진나라에게 핍박 받던 식민지 땅 중원에 회오리 바람이 불었고 초나라를 중심으로 민족주의의 불길로 번지기 시작했다. 전국시대 6국의 열혈 귀족은 농민군을 규합해 떨쳐 일어났으며 진승의 봉기군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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