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상인이 만나 지혜와 인심이 풍부한 휘주마을[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강서 휘주문화 우위엔 ② 리컹에서 옌촌까지 이학명촌(理學名村)으로 알려진 리컹(理坑)은 1206년 여경양(餘景陽)이 처음 이주했다. 여씨 집성촌이다. 진사 16명, 7품 이상 관원 36명, 문인 학사 92명이나 배출했다. 산골마을에서 많은 인재가 나왔으니 예부터 자칭 '서향(書鄕)'이었다. 시조인 여도잠(餘道潜)은 1118년에 주희(朱熹) 아버지 주송(朱松)과 함께 진사에 등과한다. 두 사람은 모두 우위엔이 고향이다. 푸젠성 여우시(尤溪) 현위로 재직할 때 태어난 주희는 사당이 있는 우위엔(婺源)을 자주 찾았으며 큰 발자취를 남겼다. {계속}
공개강좌 여섯 번째는 "강남 수향"입니다. 북송이 멸망한 후 남송이 남경에 도읍한 이후 장강 이남의 개발이 확산됐습니다. 장강 중하류의 강소 남부, 절강 동북부, 안휘 동남부 일대를 강남이라 부릅니다. '물길 따라 인문의 향기를 맛보는' 문화여행 강의가 될 겁니다. 상해 인근의 수향인 시탕, 우전과 신창을 비롯 쑤저우와 항저우, 루쉰의 고향 샤오싱과 닝보에 이르는 길을 따라 가겠습니다. 12월 15일은 '중국문화여행' 송년회를 겸해서 진행합니다. 강의만 들으셔도 되고 송년회에 참가하셔도 됩니다. 강의자료
풍수 사상으로 물길 막고 지붕 위 담장으로 귀신 막고[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강서 휘주문화 우위엔 ① 훙관촌과 리컹 황산에서 서남쪽으로 2시간을 달리면 저링(浙岭)이다. 동남쪽의 저장성으로 흐르는 신안강(新安江) 수원 중 하나다. 고개를 넘으면 장시성 상라오시(上饒市)에 속한 우위엔현(婺源縣)이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와 초나라를 동서로 가르는 분수령이었고 지금은 두 성의 경계다. 오초분원(吳楚分源) 비석은 청나라 강희제 때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지금 귀퉁이에 반듯하게 서 있는 모습은 아주 오래돼 보이지는 않는다. {계속}
'하루 두 끼' 먹는 습성, 황하 따라 상업으로 성장한 마을[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산시 뤼량 치커우고진 ② 시완촌과 헤이룽먀오 리자산촌(李家山村)에서 만난 가오보(高波) 선생 부부 자가용을 타고 고진으로 내려왔다. 굽이굽이 흐르는 황하, 구곡황하제일진(九曲黄河第一鎭)이라 자랑할 만큼 치커우고진(磧口古鎭)은 예부터 상업이 발달했던 마을이다. 황토가 가라앉은 모래톱 '치(磧)', 황하를 따라 오가는 배들이 부두에 닿을 때마다 왁자지껄했으리라. 동북쪽에서 흘러온 초수(湫水)가 황하와 만나는 강변마을은 상업이 번성했다. {계속}
동티베트 6.5 - 3 거르마촌 바메이八美에서 점심을 먹고 타궁塔公으로 가는 길에 거르마촌各日马村으로 향한다. 멋진 여행을 진행하는 뚱딴지여행의 노근태 대표의 도움을 받았다. 멀리 설산이 빛나고 있어서인지 평온했다. 이곳에는 닝마파(티베트불교 4대 계파 중 홍교)로 보이는 자시사扎西寺가 있다. 여긴 성지다. 산에는 수만개의 깃발이 나부끼고 설산과 더불어 신묘한 풍광을 지녔다. 특히 마니석이 탑처럼 쌓여 있어서 놀라운 장관을 만났다. 마니룬을 따라 도는 티베트 사람들과 함께 돌아본다.
최고의 화가가 칭송한 황토 동굴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1 산시 뤼량 치커우고진 ① 리자산촌 아주 오래된 마을을 고진(古鎭)이라 부른다. 중국에 넓은 영토만큼 셀 수 없이 많다. 산촌이기도 하고 수향이기도 하다. 천년 세월을 버티며 살아온 흔적, 인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오지일수록 고달픈 발품이지만, 여행의 맛은 깊다. 아름다운 풍광과 어울리는 가옥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동네다. 도시생활을 벗어나 여유를 느끼기에 좋은 '고진 여행'을 선호하면서 점점 관광지로 변하기도 한다. 여전히 때 묻지 않은 마을도 대륙 곳곳에 살아있다. 깊이 숨었기에 더 멋진 마을, 치커우고진(磧口古鎭)을 찾는 길도 평탄하지는 않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