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한족 정권 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의 능이 난징에 있다. 명나라는 난징을 수도로 정했으나 베이징으로 천도한다. 그 이유는 바로 정난의 변을 일으킨 주체(朱棣)가 베이징을 중심으로 2대 건문제로부터 가까스로 정권을 탈취한 후 주 무대로 옮긴 것이다. 이 효릉을 제외하고 모든 명나라 황제 능은 베이징 인근 명십삼릉으로 남아있다. 명나라는 모두 16명의 역대 황제가 있었는데 이곳 명 홍무제인 주원장의 효릉과 정권을 탈취 당한 2대 건문제, 7대 경태조는 함께 하지 못했다.
안후이성 우후에서 베이징까지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니 딱 10시간이 걸리네요. 2006년 가을 찍은 사진입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시속 110킬로미터로 하루종일 달렸습니다. 장수성을 거쳐 산둥성, 톈진을 거쳐 가는 길입니다. 중국은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한 지역을 지날 때마다 있어서 매번 요금을 받습니다. 한 스무번 정도는 거친 듯합니다. 출발하자마자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가로수들이 흩날리는 게 오히려 운치가 좋았습니다. '졸지 말라'는 교통표지판도 재밌고 화물차들은 의무적으로 번호판과 별도로 크게 써서 붙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주유소에도 가끔 들렀습니다. 고속도로에 올라와 이동하는 사람들도 목격했으며 화물차들이 서로 '손잡고' 가니 추월도 못합니다. 아니 아주 위험해 보입니다. 민둥산에..
창쟝(长江)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들은 대체로 창쟝따치아오(大桥)가 있다. 우후시 역시 멋진 다리가 있는데, 꽤 멋있다. 우후시는 안후이 성에서 경제규모로는 가장 큰 도시에 속한다. 일찍부터 도시 개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후시 기차 역 주변 허름한 동네, 나름대로 화려한 식당거리 등을 둘러봤다. 안후이 성도인 허페이(合肥)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우후로 가는 길이다. 마침 하늘과 구름이 잘 어울려있어서 보기 좋다. 중국은 고속도로를 까오쑤꽁루(高速公路)라 한다. 국도는 궈따오(国道), 같다. 장강대교가 머지 않아보인다. 양옆 도로 변으로 조명등이 길게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이 아주 수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여기만 그렇지는 않겠지만 ...
뜻있는 중국인들은 라오베이징(老北京)의 쓰허위엔(四合院)과 후통(胡同)의 변화, 소멸, 그리고 파괴를 안타까워 한다. 리여우리창(琉璃厂) 역시 점점 도시화, 특히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베이징 시정부의 정책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변모할 것 같다. 환경과 문화 올림픽을 지향해 전통을 잘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기를 기대해 본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무관심한 것보다는 중국의 전통거리도 동양의 숨결이 숨었다 여기고, 또 우리의 정서와도 이어져 있으니 까짓것 '중국의 문화도 우리들의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13억 중국인들보다 더 즐겁게 맛보자. 그러니, 이곳도 아주 멋지게 보존되길 빌어본다. 보석처럼 보이나 비싼 보석은 아니다. 이쁜 귀걸이, 팔찌 등도 싸게는 30위엔부터 바가지를 써도 100위엔 정도면 산다. ..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뉜 리여우리창(琉璃厂)은 4계절 어느 때라도 마음 편히 갈 만한 곳이다. 다만, 중국의 공예품들에 관심이 있어야 더욱 재밌을 것이니, 그렇다고 아무나 갈 곳도 아닌 듯하다. 골동품은 옛말이고 갖가지 공예품이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곳이 됐다. 서편으로 가면 입구 왼쪽에 책방이 하나 있다. 중국 고서들을 주로 팔지만 눈으로 볼만하다기 보다는 머리로 봐야 하니 좀 답답하다. 그래서, 갈때마다 슬쩍 둘러보지만 선뜻 들어가서 훑어보기가 좀 어렵긴 하다. 길 중간에 다시 좁다란 길들이 높아, 햇빛도 가린다. 자전가 겨우 다닐만한 좁은 길 안으로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살리라. 자전거 유람. 중국에서 아주 자주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처음엔 출렁이는 느낌이 좋더니 요새야 그저 편하다는 ..
처음 유리창이라고 들으면 야릇하다. 베이징에 유리창문을 파는 곳인가. 그런데 관광지라니 이상하다. 지금이야 리여우리창(琉璃厂)이란 말을 들으면 금방 베이징 명물 관광지이면서 골동품을 파는 거리. 이렇게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그런데, 원래 이곳은 황궁의 기와를 만들던 곳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황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이다. 원나라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나 실제로는 명나라가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 영락제 시대부터 활성화된 공장지대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곳은 기본적으로 황궁을 위한 곳이었기에 궁이 다 만들어지고 나서는 존재의 이유가 약해진 것이다. 황궁을 다시 짓지 않으면 말이다. 세월이 흘러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유리기와 공장은 거의 생산이 중단된다. 청나라는 강희, 건륭을 거치며 평화로운 ..
베이징은 나에겐 늘 그리운 곳이다. 중국생활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치엔먼에서 따스란 거리를 둘러보고 이어 리여우리창(琉璃厂)까지 걷는 재미가 가장 좋다. 차이나TV PD랑 중국대표와 함께, 다시 그 길을 걷고 즐겼다. 따스란의 세계청년의 집, 리여우리창 가게들, 인력거 유람, 찻집, 맛있는 저녁 이렇게 다시 베이징 여행을 떠나보련다. 지난 9월 어느날이다. 가을 하늘은 정겹기도 하지만 베이징의 고풍과 어우러지면 말로 표현 못할 감동도 준다. 베이징은 가을이 최고임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푸른 하늘이 꼭 있어야 한다. 자주 본 치엔먼(前门)이지만 공사 중이라 왠지 낯설다. 건너편 신호등 아래에서 바라보니 역시 현대 중국의 심장부임을 느낀다. 티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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