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천안문 광장 남쪽, '치엔먼'(前门) 부근에 고급스런 공연장소인 (老舍) 차관이 있는데, 필자의 오랜 단골이다. 경극, 잡기, 곡예, 상성, 변검 등 각종 공연이 어우러지는 곳이기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 공연을 본다는 즐거움에 2002년부터 줄곧 다녔으니 말이다. 차이나TV도 이 공연을 카메라에 담아 방영했기도 하지만 외국에 꽤 많이 알려진 곳이어서, 공연때면 발딛을 틈 없이 사람들이 꽉 차곤 한다. 외국 원수들에게 중국전통문화를 보여주기에 안성마춤인가. 부시(아버지)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지도자들이 많이 방문해 관람했다. 입구에 전 세계 지도자들이 방문한 사진들이 즐비한데 '한국인'는 아직 없다. 옛날 청조 말 시기에 이르러, 낮에는 차를 팔고 저녁이면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북경 날씨가 7월로 접어들자 점점 덥다. 다행히 '인공우' 덕분인지 자주 천둥번개가 동반한 비가 내려, 공기는 이전보다 상쾌해 북경여행하기가 전보다 훨씬 좋은 느낌이다. '인공우'라니? 사실이다. 궁금하신 분은 한국신문에도 기사화됐으니 찾아보시길... 천안문광장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고궁입구에는 모택동 사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이라면, 오른쪽 동쪽으로 조금 걸어 '창푸허'(菖蒲河) 공원을 거닐어도 좋을 듯. 일반인에게 공개된 지 얼마 안되는 공원으로 지난 5월경, 원자바오 총리가 중국을 공식방문한 독일여성총리와 함께 산보해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천안문광장을 꿰뚫고 지나는 큰 대로인 '창안지에'(長安街)에서 광장 바로 옆 북쪽 방향으로 '난츠즈..
남봉을 '기러기가 내려온 곳'이라 해서 '낙안'(落雁)이라 부른다 했다. 중국사람들은 의 서봉을 '연화(蓮花)라 부른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꽃에 비유하는 걸까. 동봉은 '해뜨는 아침'을 비유해 '조양'(朝陽)이라 하며 북봉은 '구름'을 비유해 '오운'(五云)이라 하며 중봉은 '여자'를 비유해 '옥녀'(玉女)라 한다. 모두 산봉우리에 어울릴 만하지 않은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상의 형세나 자태를 연상하고 또 비유하길 좋아하나 보다. 동서남북 방향보다는 문학적 비유법이 훨씬 사람들의 심정을 울릴 수 있으리라. 위치에 대한 구체성보다는 이런 추상법이 반드시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의 봉우리를 이름짓던 사람들의 멋진 기교가 떠올라 기분이 좋긴 하다. 남봉에서 바라본 서봉인데, 온통 바위로 형성된 봉우리인..
서안에는 중국 5대 명산 중 하나라는 이 있다. 중국사람들은 5대 명(名)산이라고도 하고 5악(岳)이라고 부르는데, 5대 명산으로 딱 규정된 말은 찾아보기 힘든 거 같다. 다만, 5대 악산이라고는 분명히 기록에도 많이 있다. 동악,서악,남악,북악,중악으로 부르면서 대접해 주는 것이다. 이중 서악이 바로 섬서성 화음시의 이다. 동악은 산동성 태안시에 있는 남악은 호남성 장사시에 있는 북악은 산서성 혼연현에 있는 중악은 허남성 등봉시에 있는 시내에서 약 2시간 30분 차로 달려야 하니, 꽤 먼 편이어서 300위엔을 내고 일일투어를 따라갔다. 300위엔에는 교통비, 입장료, 케이블카 사용료가 다 포함된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산 입구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라 하더니 20여분 이동차량을 다시 타고 케이블카 입구까지..
서안 시내 고루(鼓樓) 서북방향에 가 있다. 는 이슬람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찰이니, 중국에 널리 퍼져 있는 도교사원이나 불교사찰과는 다소 다르다. 가는 길에는 지금도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회족 시장골목이 있다. 회족은 중국소수민족 중 하나이지만, 인구가 900만 명에 육박하니 소수민족 중에서는 다수민족이라 하겠다. '고루' 북쪽으로 넘어서면 바로 시장이 형성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종합시장으로 음식점과 가게 등이 꽤 길게 퍼져 있다. 오토바이, 자전거와 사람이 뒤엉켜 복잡한 편이기도 하다. 하얀 모자를 둘러 쓴 사람은 분명 회족일 것이다. 모택동 사진을 비롯, 공산당혁명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으니 아이러니이긴 하다. 회족 역시 중국인일지니, 또 대수롭지도 않을 지 모르겠다. 한족과 동화되어 '하..
서안에는 중국 역사 상 유래가 없는 독특한 사건인 의 고장이다. 국민당의 장개석이 모택동 군대를 압박하던 시기에 발생한 은 일명 '12.12사변'(双十二事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936년 12월12일, 동북군벌인 장학량이 서북군벌인 양호성 군대와 함께, 에 있던 장개석 공관을 습격해 체포한 사건이다. 당시, 장개석은 장학량과 양호성을 압박해 공산당 홍군 토벌에 나설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장개석은 반일투쟁을 지양하고 오로지 홍군 토벌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나 장학량과 양호성은 선 반일투쟁을 주장하고 있었다. 민족주의자들인 두 군벌은 의기투합하고 경계에 유리한 의 '오간청'에 머물던 장개석 공관으로 새벽2시 100여명의 군사와 함께 직접 작전에 나섰던 것이다. 는 유명한 온천지이면서, 양귀비와 당 현종이..
[중국발품취재48] 둔황 모까오 굴과 밍사산 자위관(嘉峪关)에서 312번 국도로 따라 안씨(安西)를 지나는 길은 정말 사막 한복판을 달린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저 황량한 벌판뿐. 다시 안씨에서 서남쪽으로 두 시간 더 달리면 둔황(敦煌)이다.둔황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정말 ‘이 멀리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에 감회가 새록새록 피어난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 찬란한 교류를 꽃 피우고 실크로드라는 반짝이는 이름까지 얻게 된 곳. 둔황이야말로 실크로드의 상징이 아닌가.쉼 없이 흩날리는 사막 모래는 여전히 그 옛날 영화를 기억하고 있을까. 버스 차창에서 바라보노라니 이런 황폐한 토지 위에서 사람들이 살아왔다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 싶은 상념에 젖었다. ▲ 국도에서 둔황 시내로 들어가는 톨게이트 ⓒ 최종명 둔황..
[중국발품취재47]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 새벽에 도착해 잠을 자고 나니 오후 1시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냉큼 쉬엔비(悬壁) 장성(长城)으로 달려갔다. 명나라 시대 만들어진 서쪽 끝 장성이다. 물론 한나라 시대 서쪽 끝 경계는 위먼관(玉门关)이 있긴 하지만,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군사적 개념의 명나라 장성은 이곳에서 끝이 난다. 최근 중국정부가 만리장성의 길이를 정확하게 새로 재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영토의 개념, 정치적 의도가 명백히 있는 듯하다. 아마도 동북의 하얼빈 및 만주벌판부터 위먼관 너머까지 성곽을 쌓은 흔적을 모두 포함시킬 듯하다. 그래서, 만리장성의 길이를 4천 킬로미터가 아닌 6천7백 킬로미터라거나 심지어 1만 킬로미터 이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만리장성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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