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품취재76] 푸젠 성 푸저우와 저장 성 원저우 9월 11일 푸젠(福建) 성 푸저우(福州)의 아침을 맞았다. 터미널에 가서 다음 행선지인 원저우(温州) 행 티켓을 예매했다. 역사문화 도시라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지도를 보고 궁리를 해도 별로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핸드폰 배터리가 고장 났으니 새로 살 겸 시내 번화가 근처의 '삼방칠항(三坊七巷)'에 가자고 결정하고 도로 표지판을 보며 걸었다. 우이루(五一路), 우쓰루(五四路), 빠이치루(八一七路). 보기에도 벌써 역사적 사건이 떠오른다. 도로 이름이 '3.1운동', '4.19혁명', '5.16쿠데타'처럼 사건과 관련됐다고 보면 된다. 기억하기 좋을 것이라고 해서 붙인 것인가, 역사의 교훈으로 정한 것인가. '五一'는 국제노동절, '五四'는..
[중국발품취재75] 장저우 문묘, 마조묘, 자란먀오 푸젠(福建) 성 남부 도시, 국가역사문화도시(国家历史文化名城)이기도 한 장저우(漳州)에 왔다.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화루(新华路) 거리에는 ‘원창(文昌)’이라는 팻말이 붙은 누각이 서 있다.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하루 밤을 보냈다. 중국정부는 2007년 9월 전국에 있는 110개 도시를 국가가 관리하는 역사문화 도시로 선정했는데 그 중 한 곳이 장저우이다. 간저우(赣州), 차오저우(潮州)도 선정됐다. 최근 남방의 문화도시를 계속 여행하는 중이니 참으로 행복하다. 장저우 역시 낯선 도시이나 문화도시의 풍모가 곳곳에 남아있어 기대가 크다.다음날인 9월 10일 아침, 역사 문화 거리를 찾아 나섰다. 지도를 살피면서 거리를 걷는데 ‘도관고금(道冠古今)’..
지난번 진저우(锦州) 취재 이야기에서 만난 적이 있는 융밍즈줘화(用名字作画)를 시닝 기차 역 앞에서 다시 보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까지는 아마도 이런 길거리 모습이 있었던 듯하다.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림 속에는 꽃, 새, 물고기, 곤충 등의 형상들이 서로 꼬매 듯 엮어지고 서서히 이름을 드러낸다. 붓(笔)은 보통 금속으로 만드는데 다양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 그 사이에 스펀지를 끼워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스펀지가 바로 형형색색, 변화무쌍한 그림의 마술인 것이다. 그리고 종이 윗면에는 거의 중화이슈(中华艺术)라고 쓰여 있다. 아랫면에 써 있는 글씨는 찡핀즈화(精品字画). 자세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민간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민속예술의 하나라고 보여진다. 하나 그리는데 약 5분..
청해성의 성후이(省会)인 시닝(西宁) 중심가 시먼(西门) 부근에 있는 공예품도 팔고 갖가지 먹거리도 파는 수이징샹(水晶巷) 시장이 있다. 공예품은 중국 전역 어디서나 비슷비슷하니 특별한 것은 없지만 역시 중국 서북쪽에 처음 오니 실크로드, 쓰루(丝路)와 둔황(敦煌)을 떠오르게 하는 분위기가 좋아 시장 이곳 저곳을 즐겁게 돌아다녔다. 양으로 만든 순대인 셈인 양창(羊肠) 한 접시를 사서 먹었다. 살아있는 닭 파는 것은 자주 봤지만 비둘기 파는 곳은 드물다. 비둘기 고기가 꽤 맛있다는 것을 아는지. 중국에서 처음 비둘기 요리를 먹고 이렇게 맛 있는 것을 왜 안 먹지?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시닝 기차역 뒷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서서히 하루 해가 저문다.
[중국발품취재74] 차오저우 성벽, 자띠샹 골목, 당나라 시대 사원 9월 8일 아침 8시 30분 버스를 탔다. 간저우(赣州)에서 광둥(广东) 성 차오저우(潮州)까지, 대충 봐도 지도로는 5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다. 그런데 10시간이나 걸렸다. 교통사고가 나서 길이 막힌 것도 아니고 버스가 고장이 나지도 않았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고 그야말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가니 빨리 달릴 수가 없다. 게다가 중간에 정차하는 곳은 왜 그리 많은지.간저우 시내부터 중간 정류장을 거치더니 국도를 지나면서는 마을이란 마을은 다 서는 듯했다.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타고, 완전 완행 버스다. 신펑(信丰)을 지나고부터는 도로 사정이 아주 열악하다. 안위엔(安远)을 지나면서 가파른 산길들로 접어들더니 성 최남단 도시인 쉰우(寻乌)..
황하에 놓인 철교는 1907년 서양사람들이 건설했다고 합니다. 총 길이 233.33미터, 넓이 7미터인 이 철교는 처음에 란저우 황하철교라고 불리다가 1942년에 중산교로 이름을 바꿨다 합니다. 중산교 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러 나와 있습니다. 해가 지자 란저우시 중심을 흐르는 황하의 모습이 점차 변합니다. 흙탕물이던 색깔이 노을에 비쳐 점점 붉어지더니 어느덧 사라지고 맙니다. 황하를 질주하던 쾌속정들도 조용해지니 멋진 밤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란저우 시내 한가운데 황하가 흐릅니다. 황하 북쪽 강변에 작은 산이 있고 그 정상에는 원나라 시대 만들어진 백탑(白塔)이 있는 공원이 있습니다. 작고 아담한 듯 하지만, 의외로 계단이 가파르고 높습니다. 게다가 오를수록 황하의 진면목이 점점 드러나 그 전망이 아름답기도 합니다. 백탑은 원나라 시대 칭키스칸(成吉思汗)이 시장(西藏) 승려를 위해 처음 세웠다 하고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 각각 중건되어 지금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올랐는데, 산 정상 부근에서 물 한 병을 마시고 황하를 바라보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저녁 먹었냐 물어보더니 점심도 안 먹었다니 놀라면서 밥 한 그릇에 채소 반찬 하나를 내어주었습니다. 정말 맛있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
영화 가 대박이다. 우리나라 관중 2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 중국 스촨 지역에서 상영이 금지됐다는 보도를 보고 영화가 보고 싶었다. 에 대해 중국언론의 시기와 질투가 예사롭지 않다. 인민일보는 최근 23일 문화면 기사 에서 중국 고유의 '문화 원형(原料)을 약탈해서 우리(중국)의 문화 보루(壁垒)를 넘어 문화식민(文化殖民)를 도모한다'고 흥분하고 있다. 자신들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인 쿵푸와 팬더의 매력을 빼앗아 간 것을 '1840년 이후의 굴육적인 아픔(1840那以后的屈辱的痛)'이라고까지 한다. 바로 아편으로 인해 발발한 영국과의 전쟁 이후 '세계의 문화 중심인 중국이 중화 사상에 입각한 창의적인 감각을 서양인들에게 탈취 당했다'는 감정을 중앙 관영 신문사가 토로할 정도로 대단한 영화란 말인가. 중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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